자세히보기 2014년 10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끝나지 않는 전쟁을 추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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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 끝나지 않는 전쟁을 추모하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학생들과 국장 의례와 미술문화에 대해 수업을 진행했다. 마침 그 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면서, 수업 시간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집에 가서 TV를 켜도 죽음, 학교 수업 시간에도 죽음을 다루는 사이 마음은 점점 우울해졌다. ‘죽음 앞에서 미술이라는 문화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묻고 또 물었던 것 같다. 죽음을 ‘애도’ 할 때, 미술의 호소력은 보다 커진다며 확신에 차 이야기 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왜 죽음을 애도하고자 할까? 왜 죽음 앞에 꽃을 올리고, 향을 피우며, 고개를 숙일까?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의 조형물 ‘영웅들의 넋’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의 조형물 ‘영웅들의 넋’

 죽음을 바라보는 마음은 남과 북이 같을까? 지난해 7월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준공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이 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 ‘열사묘’ 중앙에 자리 잡은 ‘인민군열사추모탑’이었다. 거대한 크기의 총 때문이다. 이 거대한 총 옆에는 3년간의 전쟁을 상징하는 1950과 1953이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총탑은 총대와 북한의 공화국기를 하나로 결합시켜 형상화 해냈다. 덕분에 우리는 한 눈에 이 기념탑이 김정은의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임을 감지할 수 있다. “전쟁 시기 인민군들이 총대로 내 조국을 지켰으며, 후대들도 그 넋을 이어받아 어머니 조국을 총대로 지켜나가자.”는 선언이 날카로운 총탑의 형상으로 우뚝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죽음을 ‘총’으로 애도할 수 있을까? 총을 보는 순간 우리는 바로 ‘적’을 떠올리게 된다. 총으로 상징화된 감정은 ‘분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을 가져본 사람들은 안다. 분노의 감정을 내려놓지 못할 때, 우리는 결코 죽은 자를 내 곁에서 떠나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죽은 자를 죽음의 공간으로 보내지 못하는 애도가 총탑에서도 전해진다. “신체적으로는 죽었으나 정치적 영역에서는 영생한다.”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김정은의 총대정신 승계 형상화

북한 인민군장병들과 각계층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들이 건군절을 맞아 지난 4월 23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참전열사묘’를 방문했다고 이 보도했다.

북한 인민군장병들과 각계층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들이 건군절을 맞아 지난 4월 23일 ‘조국해방전쟁(625전쟁)참전열사묘’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정은 시대를 맞이하여 준공된 이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에는 관을 형상화한 조형물도 전시되어 있다. <영웅들의 넋>이라는 제목의 이 조형물은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라는 의미인 ‘영구’ 위에 전쟁에서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하는 공화국기가 덮여 있다. 그 위엔 전쟁 중에 싸우다 전사한 군인을 상징하는 군모와 기관단총이 놓여있다. 묻히지 못한 영구는 지속되는 전쟁을 암시하는 듯하다. 시체가 땅 속에서 잘 썩어 다시 대지로 돌아가 다른 삶의 모습으로 윤회하기를 바라는 전통적인 죽음의 의례에서 보면 땅 위에 놓인 관은 차마 죽지 못하는 기구한 운명을 역설하는 듯 보인다. 끝나지 않는 전쟁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번에 준공된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 외에도 북한에는 ‘혁명열사능’이 조성되어 있다. 이 묘는 김일성이 조성하면서 혁명 1세대의 지위를 강화한 바 있다. 이후 김정일은 이 혁명열사능을 개축할 때 김정숙 동상을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어머니인 김정숙을 빨치산 부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기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 바 있다.
 
 이어 김정은 시대를 맞이하며 준공된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를 통해 김정은은 조국해방전쟁의 총대사상을 오늘날에 이어받을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이 총대정신은 항일운동의 상징이자 김일성, 김정일, 김정숙 즉 백두 3대 장군의 이른바 ‘백두산총대사상’에서 이어받은 것임을 다시 한 번 대내외에 선포한 것이라 판단된다.
 
 죽음은 어떻게 애도되는가? 곧 전쟁이 일어날 듯한 북한의 목소리가 자극적일 때도 우리 사회는 사재기조차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놀라워하는 외신의 보도가 기억이 난다. 우리들은 왜 전쟁의 공포에 이토록 태연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것은 집단적인 망각 현상이지 않을까? 망각하고자 하는 방어기재의 작동처럼 보인다. 우리는 누군가와 서로 총을 겨누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잊는다. 잊고 살고 싶어 한다. 죽음을, 분노를 망각하고자 하는 것. 또는 총을 높이 들고 끊임없이 죽음을 적과 함께 분노로써 기억하고자 하는 것. 이러한 ‘망각’과 ‘분노’ 사이에 죽음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한반도가 있다. 우리의 트라우마도 그 곳에 있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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