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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 ‘여보’가 된 돼지? 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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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23 | ‘여보’가 된 돼지?

북한주민들이 제일로 즐기는 명절은 아마도 설날일 것이다. 민족최대의 명절이라 일컫는 4·15(김일성 생일)나 2·16(김정일 생일) 등은 정중성을 기해야 하는 만큼,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민속명절인 1월 1일이라 하겠다.

설과 관련해 공급되는 물자도 ‘위인’의 생일 명절과 비슷하고 또 생일 때와는 달리 설에는 술 마시고 실수해도 생일에 실수하는 것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민들은 공급소나 직장에서 배급되는 식품 외에도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해 찾아오는 지인들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함께 즐긴다.

신정이 오면 바삐 돌아가는 것은 역시 주부들이고, 그에 못지않게 동분서주하는 것은 바로 술꾼들이다. 북한에서는 1월 1일부터 2~3일간 설 명절 휴식을 선포하는데, 명절 아침이면 꽁무니에 술 한 병을 찬 술꾼들이 작업반장부터 시작해 웃간부들 집을 차례로 찾아다닌다.

설 명절, 술꾼에겐 천금같은 기회?

물론 새해 첫 아침에 올리는 인사치레이긴 하지만 속 깊은 곳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기 위한 ‘활동’이라고 봐야 한다. 명절이 아닌 평일에는 귀한 술이어서 마시고 싶어도 못 마시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명절이기에 찾아오는 손님이 반가워 상을 차려 대접하는데 먼저 가지고 간 술을 인사로 붓고 다음은 집 주인이 부어주는 술을 받는다. 10분 정도 몇 잔 마시고는 다른 간부의 집을 찾는다. 그렇게 여러 집을 순방하며 마시고 나면 얼큰해질 수밖에 없다. 흥에 겨우면 바로 노래가 나오는데 주정꾼들의 흥타령 소리에 거리와 마을은 비로소 사람 사는 마을 같이 보인다.

간부집이어도 취해서 찾을 때는 평소처럼 깍듯한 예의는 없고, 스스럼없는 동무처럼 허물이 없다. 큰 명절이 오면 일반 노동자나 농민보다 한 자리 하는 간부집이 더 복잡해지고 음식도 많이 준비해야 한다. 명절이 지나면 “누구누구 집은 참 깍쟁이더라.”는 평판을 듣지 않기 위해서다.

“여보, 내가 왔소” … “꿀~ 꿀~”

저녁이 되면 동료나 지인의 집을 찾는다. 마시다가 술이 떨어지면 이번엔 너희 집, 그 다음엔 내 집 하며 모여 앉은 사람 순서로 빠짐없이 찾아들어 준비해 둔 술을 마신다. 명절 휴식이 2일이든 3일이든 이렇게 술로 보내는 것이 북한 남자들의 명절 쇠는 모습이다. 명절 전날 저녁 술병차고 집을 나간 사람이 3일 후에야 그래도 출근은 하겠다고 아침에 집에 찾아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명절이 끝나면 별의별 희귀한 사례들이 부지기수로 입담에 오른다. 필자의 친구 한 사람은 한밤중에 취한 상태로 제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남의 집 돼지우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바닥엔 주인이 설을 맞아 돼지에게 깔아준 보드라운 짚 검불이 쌓여 있었는데, 그걸 이불로 착각했는지 주섬주섬 걷어내고 옷을 벗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자던 돼지가 꿀꿀거렸다. 그쯤 되면 놀라서 나와야 정상인데 이 친구가 척 드러누우며 한다는 말이 “여보, 내가 왔소. 나그네 없이 그리 달게 자다니 이거, 섭섭한데.” 하며 엎드린 돼지를 안았다.

돼지는 사람을 보자 또 죽 생각이 났는지 “꿀~ 꿀~” 하고 일어나서 억센 주둥이로 침입자를 이리저리 굴리는데 그런데도 이 친구는 그냥 돼지를 안으려 부산을 피웠다. 손님치레를 하고나서 찌꺼기 음식을 주러 돼지우리에 나온 주인이 그걸 보고 처음엔 도둑으로 착각했다가 노는 꼴이 하도 우스워 일장 폭소를 터트렸고, 다음 날 소문을 내는 바람에 필자의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것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길가 전봇대를 부둥켜안고 “형님 내게 그러는 게 아니오. 섭섭하오.” 뭐 이러며 실랑이질하고 심지어 눈 속에 머릴 틀어박고 자다가 동상을 당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웃기면서도 서글픈 풍경이다. 어려운 사람살이라 술만 마실 수 있다면 백릿길도 서슴지 않는 북한 남성들, 그들이 설 명절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술 때문일 것이다. 없으면 더 귀하고, 그래서 간절해지는 그 맛 때문 아닐까.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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