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그래도 “남조선 꽃제비”는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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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43 | 그래도 “남조선 꽃제비”는 살만하다?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13번 출구에서 열린 무료급식 배식 봉사활동 행사에서 아름회(슈퍼모델 수상자들의 모임) 회원들이 노숙이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13번 출구에서 열린 무료급식 배식 봉사활동 행사에서 아름회(슈퍼모델 수상자들의 모임) 회원들이 노숙이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북한에 살 때 남한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했고 생활수준도 높다는 정도는 알았다. 그렇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생리가 만연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거지가 되어 거리를 헤맬 것이라 짐작했다. 북한당국이 늘 그렇게 선전했기에 믿었다.
 
“남조선, 약육강식 자본주의에 온 나라가 거지판?”
 
 외부소식에 목말라 몰래 듣던 남쪽 방송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 생활난으로 자살한 사실, 악덕업주가 임금을 주지 않은 사실, 조직폭력배의 횡포와 생계형범죄 사실,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노숙자 등의 처지가 보도되는 것을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자본주의 아닌가? 살인적인 경쟁으로 남을 딛고 올라서는 따위로 발전하는 것이 자본의 본성이라고 배웠는데 그것이 사실로 믿어졌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발전하는 것이 경제가 파탄돼 굶주리고 자유를 억제당하는 북한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거지라도 서울 거지는 쌀밥만 먹는다’는 속담대로 잘 사는 사람이 많으면 그 밑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많을 거라 여겼다. 외국에 나갔다 온 사람들을 통해 “서방에선 거지가 공원에서 커다란 빵을 베고 누워 코카콜라를 마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래선지 남한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도 별로 두려움이 없었다. 굶어죽을 걱정만큼은 없을 거라는 배짱이었다.
 
 남한 생활은 자본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었다. 굶어죽을 걱정이 없다는 것만 맞고 나머지는 달랐다. 정작 부딪쳐 본 남한 사회는 무질서와 약육강식만 있는 정글이 결코 아니었다. 자본이 무소불위, 안하무인으로 횡포를 감행하는 것이 아니라 법치주의, 민주주의가 제어하고 있는 사회였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권력이 많아도 죄를 졌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
 
 경쟁에서 패한 자에겐 재기의 기회를 주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 있고 계속 보완해 간다. 장애인 보호시책으로 오히려 멀쩡한 사람들이 눈치를 볼 정도다. 장애인에게 잘못했다간 큰코 다친다. 청소 아줌마, 택시 기사도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난 2011년 12월 15일 서울 봉래동 서울역지구대 옆 지하보도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날부터 운영한 응급대피소는 8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노숙인들은 전기패널이 깔린 응급구호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지난 2011년 12월 15일 서울 봉래동 서울역지구대 옆 지하보도에 마련된 노숙인 응급대피소에서 노숙인들이 잠을 청하고 있다. 서울시가 이날부터 운영한 응급대피소는 8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노숙인들은 전기패널이 깔린 응급구호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북에서 듣던 자본주의 나라의 거지, 그게 여기서 보니 노숙자였다. 북에선 ‘꽃제비’에 해당한다. 굶주리는 것은 물론이고 겨울에도 구멍 뚫린 솜옷마저 없어 덜덜 떨다 얼어 죽거나 어느 석탄 보일러 칸에라도 숨어들면 다행인 것이 ‘꽃제비’다. 역전의 대합실에 들여 놓지 않아 쫓겨 다니는 꽃제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나는 “남조선 꽃제비”들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었다. 시간을 내어 서울역에 노숙자가 있다기에 일부러 작정하고 갔다. 서울역 광장 한쪽에 줄을 서는 노숙자들이 보였다. 무엇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옆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겠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노래하세”라며 찬송가를 불러 준다.
 
“북한, 멀쩡한 사람 수백명이 굶어 죽었다는데”
 
 옆에 있던 분에게 “저건 뭐하는 겁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분의 말에 의하면 그들에게 무료로 먹을 것을 공급하는데 그것을 받느라고 줄을 선 것이었다. 본래 하루에 밥을 세 번 주었는데 요즘엔 그들이 더 달라고 항의하여 5번을 준다고 했다.
 
 그리고 날씨가 차가워지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오리털 이불과 솜옷을 두 번이나 공급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것을 어디다 팔아 술을 사먹고는 또 추워서 못살겠다고 이불과 솜옷을 달라고 소리 지른다는 것이다. 잠잘 곳을 달라고도 항의하여 서울역 광장 건너편에 숙소도 크게 지어 주었으며, 정상적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조건도 보장해 준다고 했다. 또 병이 나면 무료로 고쳐 준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잘해 주니 일하기 싫어할 수밖에 있겠는가, 북한에서는 멀쩡한 사람들이 수백만이나 굶어 죽었다는데 저 사람들을 거기에 보냈으면 속 시원하겠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물론 그 중에는 본의 아니게 기업이나 투자가 망하여 빚을 지고 나앉은 사람들도 있지만 그 생활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지 않고 “난 지금이 좋네.” 식으로 사는데 습관된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래도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만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남한이다. 국가는 국가대로 대책을 세우지만 종교단체들을 비롯한 민간단체들이나 개별적 기부자들도 소외된 최하층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각도 차디찬 북방의 찬바람 속에 떨고 있을 북한의 꽃제비들을 생각하면 남한을 약육강식의 생지옥이라고 선전하는 북한 당국의 행태가 너무나 저질스럽고 비열하다. 하루 빨리 북한에도 인민을 섬기는 민주사회가 도래하여 특권층들만이 아닌 모든 소외받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아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도명학 /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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