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4월 1일

기획 | ‘아세안 중심성’ 내세워 미·중 사이 세력균형 추구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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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글로벌 파트너, ASEAN을 주목하라!

‘아세안 중심성’ 내세워 미·중 사이 세력균형 추구

아세안 국가들은 2011년 중국과 함께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 선언’을 채택했지만 최근까지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 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남중국해 영해 분쟁과 관련해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난 모습

아세안 국가들은 2011년 중국과 함께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 선언’을 채택했지만 최근까지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 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1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남중국해 영해 분쟁과 관련해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난 모습

아세안은 1967년 출범 후 유럽연합(EU)을 제외하고 가장 모범적인 지역협력기구의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그 동안 수많은 대내외 환경변화와 도전에 직면하면서도 2015년 말 아세안공동체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아세안의 성공에는 특유의 외교전략이 한 몫 하고 있다. 약소국으로 구성된 아세안은 1990년대 말부터 전개되는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구도 속에서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을 내세우며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아세안+3 정상회의(APT),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 등 동아시아 역내 다층적·다기능적 협력체 형성을 주도하면서 전략적 이익추구에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등 대화상대국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아세안을 지지하고 있다.

아세안, 역내 다층적 협력체 형성 주도

‘아세안 중심성’이란 동아시아 지역협력체계 구축에 있어 아세안이 추동력을 가지고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아세안의 핵심 관심사항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 지역협력체 운용에 모든 아세안 회원국이 참가하고, 아세안 의장국이 지역협력체 의장국을 겸임하면서 의제 선정의 우선권을 확보해 자신들 중심의 지역협력 구도를 유지한다는 의미다. ‘아세안 중심성’ 개념은 2011년 채택한 ‘범세계 공동체 속의 아세안공동체에 관한 공동선언’인 ‘발리협약 III’에서 나타나게 되었지만 아세안은 이미 이런 원칙을 오래전부터 적용해 왔다.

이 같은 원칙을 통해 아세안은 중·미·일 사이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삼고 중국과 일본, 중국과 미국 간의 세력균형을 이루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추진 과정을 들 수 있겠다.

2004년 말레이시아와 중국이 EAS 조기 출범을 시도한 것 은 양국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 외 교적 이니셔티브를 취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원래 EAS 는 기존의 아세안+3 체제로는 한·중·일이 강한 소속감을 갖기 어려워, 3국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그 개최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었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의 이니셔티브에 대응해 아세안은 기존 아세안+3 정상회의와는 별도로 일본이 제안한 아세안+6 국 가들(한·중·일과 호주, 뉴질랜드, 인도)이 참여하는 또 다 른 형태의 EAS를 만들기로 했다. 이는 아세안 국가 사이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겠으나 아세안+3 국가들 외에 호주, 뉴질랜드, 인도를 추가로 참여시켜 중국을 견제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인도 끌어들여 중국 견제

이후 2011년 미국이 EAS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중국 견 제 필요성을 절감했던 미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공통의 전략 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2009년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 하기 위해서 ‘아시아 중시정책’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호응해 2011년 아세안 의장국이었던 인도네시아는 중국과 아세안 국가들 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해결에 유리한 고지 를 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국을 EAS에 끌어들이는 데 앞장섰다.

남중국해는 중국과 일부 아세안 국가들(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간의 오랜 분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남중국해에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중 국은 이곳의 도서들이 모두 중국 영토의 일부이며, 그 주변 해역의 자원도 모두 중국에 속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각 도서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온 아세안 국가들은 1992 년 외무장관회의에서 ‘남중국해에 관한 아세안 선언’을 채택 한 이래, 2011년에는 중국과 함께 ‘남중국해 문제를 해결하 기 위한 행동 선언’을 채택했지만 최근까지 중국과 아세안 회원국 간 갈등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과 2012년 EAS에 참여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미국 의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중국을 견제하고 아세안을 외교 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역내 경제통합을 위한 자유무역지대 결성을 놓고도 아세 안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아세안 중심성’을 실현시켰 다. 2005년 EAS가 개최된 후 동아시아 국가들은 향후 동아 시아 차원의 자유무역지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두 고 중국이 선호하는 아세안+3 국가들 중심의 동아시아 자유 무역지대(EAFTA)와 중국의 부상을 경계했던 일본이 제안 한 아세안+6 국가들 중심의 동아시아포괄적경제파트너십 (CEPEA)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2010년을 전후해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의 협상은 아세안에 새로운 도전이 됐 다. 아세안 회원국 중 일부만이 TPP 협상에 참여해 아세안 내부의 균열요인이 될 우려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무역개방을 목표로 하는 TPP 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구나 미국 주도의 TPP는 사실상 중국의 참여를 배제해 대중국 견제구도의 일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아세안은 2011년 말부터 아세안과 양자 간 FTA를 이미 체결한 한·중·일 3국은 물론 인도, 호주, 뉴 질랜드 등과 새로운 다자 FTA틀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구상을 제안해, 2012년 아세 안 정상회의에서 이를 공식 확정하였고 2015년까지 완료한 다는 일정을 제시했다. 이는 일본이 제안한 아세안+6 중심 의 CEPEA와 유사한 듯하지만, 아세안은 아세안 중심의 다 자 FTA 구도라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미국 주도의 TPP와 한·중·일 3국 FTA 가능성에 대응해 자신이 주도하는 역 내 경제통합 구도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역정체성과 통합주체 모호성 해결해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아세안이 동아시아 지역협력체계 구축에 있어 추동력을 가지고 중심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아세안 중심성’을 구현시키는 데 성공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외교전략은 지역협력과 통합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애초 2002년 동아시아연구그룹(EASG)을 통해서 한국이 제안한 아세안+3 중심의 EAS는 역외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하고 회원국 수도 당초보다 훨씬 늘어나 지역적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지역통합의 주체가 아세안+3인지, EAS인지도 불명확해졌다. 아세안+3 중심의 EAFTA가 무산되고 아세안이 추진하는 RCEP은 내부적으로 한계가 존재해 그 효과성에 의문이 남는다. 결국 아세안+3가 주축이 된 동아시아 지역통합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아세안 중심성’ 외교 전략의 효과성을 아직까지 평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중·일, 중·미 대립이나 경쟁에서 어느 한 쪽을 편들지 않고 도리어 강대국들이 ‘아세안의 중심성’을 인정하게 만들도록 노력하는 외교전략은 미·중·일의 이해관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국 외교가 본받을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김홍구 / 부산외대 동남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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