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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 “남한으로 유학 온 셈이에요” 2015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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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2

“남한으로 유학 온 셈이에요”

 처음 탈북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정말 궁금한 게 많았다. 그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별 생각 없이 묻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놓고 말하길 꺼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호기심이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로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대하게 되었다.

유난히 키가 작고 깡마른 철이를 볼 때도 그랬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글쓰기 시간임에도 철이는 수업 시간에 늘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분명 사연이 있을 것 같지만 물을 수는 없었다. 수업 시간에는 고개를 들라고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었다. “온몸이 째서(아파서) 고개를 들 수 없슴다.” 내 말에 철이는 귀찮다는 듯 이 말을 툭 던지고는 다시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저리 키가 작은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집네다”

어느 날, 교무실에 들어갔더니 ‘떡 파티’가 열렸다. 날렵한 몸매, 머리에 유난히 힘을 준 아주머니가 일일이 선생님들에게 떡을 나눠 주고 있었다. “우리 철이 잘 부탁함네다. 애가 아직 아무 것도 모릅네다. 고저 선생님들만 믿겠습네다.” 미용사인 철이 엄마가 휴가를 내서 떡을 준비해 온 것이었다. 교무 주임 선생님이 나를 소개하자 철이 엄마는 내게도 떡을 한 덩이 선사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백설기였다. 따끈한 떡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철이 어머니는 내게 떡을 건네며 묻지도 않은 말을 실타래 풀듯 술술 풀어놓았다.

“우리 철이가 세 살 때 남편이 병으로 죽었어요. 그 땐 옥수수 죽도 제대로 먹일 수 없었슴다. 할 수 없이 핏덩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갔지요. 그것도 마땅치 않아 나 혼자 한국으로 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어요. 오직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서였지요. 브로커를 통해 철이를 데려오고 나니,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요. 한창 먹어야 할 나이에 굶어서 키도 제대로 못 크고, 결핵도 앓았어요. 몸이 성치 않으니 여기 와서도 영 골골 합네다.” 그제야 비로소 늘 책상에 엎드려 있던 철이가 이해되었다. 그 밖에도 철이 어머니는 북에서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못 먹어서 저리 키가 작은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집네다.” 이 말을 하며 눈물을 훔치는 철이 어머니를 보니 나도 울컥 했다. 철이 어머니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맛있게 떡을 먹는 모습에 고무되었던 것 같다. 한층 더 편안해진 얼굴로 다음 말을 이었다. “이제 아들을 만났으니 더 바랄 것이 없슴네다. 아들이 몸 좀 잘 회복한 후, 대학에 들어가 맘껏 공부하는 모습 보는 것 뿐임다. 선생님들이 우리 철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 너무 고마워 떡 쪄 왔으니 많이 드시라요.”

철이 어머니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철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맛있게 먹은 백설기가 단순한 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의 떡, 소망이 담긴 떡, 아들의 미래를 향한 어머니의 간곡한 기도로 빚어진 떡이 아닐까……’ 싶었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불현듯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보릿고개가 한창인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자, 엄마는 선생님에게 무엇을 대접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키운 토종닭이 낳은 계란을 짚으로 짠 꾸러미에 정성껏 넣어 드리며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했다. 그 날 곤란해 하면서도 기뻐하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북에서 온 철이의 어머니가 백설기를 쪄 온 심정이나, 시골 오지에서 딸을 학교에 보낸 내 어머니의 심정은 같았을 것이다. 내 자식만을 잘 봐달라는 뇌물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사랑의 선물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눈물의 떡’에 담긴 엄마의 사랑

그 후로 철이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니며 검진도 받고, 약도 먹으면서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갔다. 밥도 잘 먹고,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갔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회복 되어 가는 것을 보며 마음이 놓였다.

얼마 전에 하나원에서 금방 나온 신입생의 말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엄마가 저만이라도 자유의 나라에 가 원하는 공부하면서 살라고 브로커를 통해 보내줬어요. 저는 북한에서 남한으로 유학을 온 셈이지요.”

내 자식만은 좋은 환경에서 맘껏 공부를 하길 바라는 마음은 남과 북 모두 같은 것 같다. 그렇기에 철이 어머니의 백설기 속에 담긴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부디 철이 어머니는 물론 남한에 유학 보내는 심정으로 자식을 보냈다는 북한 부모들의 마음이 이 땅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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