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김정은 정권이 걸어갈 세 개의 길 2013년 2월호
기획 | 2013년 김정은 정권 정책방향은?
김정은 정권이 걸어갈 세 개의 길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를 육성으로 직접 발표하였다. 1994년 이후 19년만의 일이다. 그동안 북한은 당보·군보·청년보의 신년공동사설 형식으로 신년사를 대신해 왔다. 북한의 선전‘일꾼’들은 이러한 회귀적 변화를 통해 나름대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첫째, 북한은 ‘살만했던’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여 김일성과 김정은의 동일시를 추구하였다. ‘김일성 따라 배우기’의 일환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고단했던 김정일 시대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김정은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대외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한 선택이다.
절박성보다 자신감 … ‘선군’보다 ‘당적 영도’
둘째, 북한은 김정은의 직접 발표형식을 통해 신년사를 교시화 함으로써 전체 사회에 대한 구속력을 강화하였다. 올해 신년사는 이전의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표현보다는 완곡하고 추상적 표현방식을 취했고 분량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것은 전체 사회에 대한 구속력이 강화된 만큼 책임에 대한 부담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올해 신년사는 과거 신년공동사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박성보다 자신감이 바탕에 깔린 느낌을 준다. 아마도 김정은의 권력승계가 제도적으로 완료되고 지난해 12월 12일 강행한 ‘인공위성’(장거리 로켓) 발사의 성공에 따른 축제분위기가 반영된 탓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신년사 곳곳에서 “우주를 정복한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경제강국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자!”와 같은 ‘인공위성’과 관련한 대목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일의 유훈관철 성공 및 과학기술강국 달성이라는 자축 분위기를 연장하여 인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를 김정은 체제 공고화에 활용하려는 의도로 파악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창조적’ 작업 서막 열려
한편, 올해 신년사는 ‘선군’보다 ‘당적 영도’를 강조하고 있어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군에 대한 당적 통제 움직임과 분위기가 깔려 있다. 실제로 올해 신년사에서 ‘선군’에 대한 언급빈도가 현격히 감소하였다. 2010~1012년 사이에 14~17회에 걸쳐 언급되던 ‘선군’ 빈도가 올해는 6회에 불과하다. 물론 신년사의 분량이 축소되다보니 자연스런 감소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언급 빈도의 축소 폭이 과도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아울러 이런 ‘선군’ 감소현상이 혁명적 영군체계 확립과 더불어 정규전 능력 강화와 같은 군대의 본업을 독려하는 내용과 병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올해 신년사는 2013년을 “김일성·김정일 조선의 새로운 100년대의 진군 길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해”로 규정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바로 ‘창조’다. 김정은은 자신의 독자권력을 구축하기 위해서 반드시 김정일을 혁명역사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난해 김정은이 김정일 동상을 세우고 ‘금수산태양궁전’을 개건하는 사업을 추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은 김정일에 대한 혁명역사화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시대에 맞는 ‘창조’적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창조적으로 해석한 자신의 통치이념과 노선을 확립해야 한다. 김일성 사망 이후 ‘나에게서 0.001mm의 변화도 기대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던 김정일은 유훈통치기간을 거치면서 김일성에 대한 혁명역사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을 마친 다음, 김정일은 자신의 시대에 맞는 ‘선군노선’과 ‘선군사상’을 제시하였고, 이에 맞춰 국가체계를 국방위원회 체계로 변화시켰다. 바야흐로 김정은 시대에 맞는 ‘창조’적 작업의 서막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에도 북한의 정치는 김일성 시대의 모방, 김정일 시대의 혁명역사화, 그리고 김정은 시대의 창조라는 세 개의 길을 걸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일성 시대의 모방은 인민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는 성공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김정은의 이미지로 각인하는 차원에서 진행될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혁명역사화는 김정일의 업적을 기리는 대규모 사업들을 신설·개건함으로써 김정은 권력의 정당화 및 공고화에 활용하는 방향에서 추진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은 시대의 창조는 통치이념, 권력구조, 그리고 정책노선에서 조심스럽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구될 것이다.
어떤 길을 가든 그 목적지는 인민생활 향상이어야 한다. 세 개의 길을 동시에 가다보면 자칫 목적지를 상실할 수도 있다. 길을 잃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만, 목적지를 잃으면 돌아와도 허사다. 목적지를 잃지 않는 방법은 세 개의 길이 모두 국제사회와 우호관계를 맺고, 한국과 평화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가며, 인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신장시킬 수 있는 이정표를 올바로 직시하는 것이다. 북한 스스로 자부하는 ‘우주정복’의 길이 국제사회의 평화를 파괴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제재에 직면한다면, 그 길은 올바른 인민생활 향상의 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기동 /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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