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3월 1일

기획 | 중·일, 달 탐사 본격 추진 … 우리의 과제는? 2013년 3월호

기획 | 나로호 자력발사 성공 … 우주개발 본격화

중·일, 달 탐사 본격 추진 … 우리의 과제는?

지난 1월 30일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한국형우주발사체(KSLV-1)사업은 2002년도에 시작하여 첫 발사를 시도할 때까지 7년이 걸렸으며, 그 후 3차 발사 시도에 성공하기까지 3년 6개월을 더 기다렸다. 발사대를 떠난 나로 발사체는 1분이 채 되지 않아 시야를 벗어났고, 9분 만에 나로 과학인공위성을 정확에게 궤도에 올려놓으면서 임무를 마쳤다. 고속성장을 거치며 빨리빨리에 익숙한 국민들이 10년 넘게 기다리고, 10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 준 성과에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적인 비전과 리더십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런데 필자가 항공우주 과학기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로 인공위성의 발사 성공에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것은 오래 기다린 만큼 기대 수준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투입된 예산과 시간에 비해 우리나라가 얻은 독자적인 기술성과가 부족하고, 주변 국가들에 비해 늦은 감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찮게도 한반도 주변의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일본은 모두 오래 전부터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배치하였거나, 군사용으로 전용 가능한 민간용 우주발사체 기술을 갖고 있다.

먼저 미국과 구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개발한 V-2 로켓기술을 기초로 50년대부터 군사기술로의 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우주개발경쟁을 시작하였다. 1957년 10월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대륙간 탄도 미사일 R-7에 실어서 저지구궤도에 올렸고, 충격에 빠진 미국은 우주개발 전담기구 NASA를 창설하였다. 소련은 지구궤도를 넘어 1959년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켰으며, 1961년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을 지구궤도에 올렸다. 여기에 다시 충격을 받은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폴로 계획을 추진하였고 분위기는 서서히 역전되었다.

일본, 2017년까지 달에 탐색차량 보낼 계획

문제가 발생하면 철저하게 해결하는 미국과 달리 소련은 제한된 인력으로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신뢰성을 간과하였고, 1966년 책임자 세르게이 코를레프가 사망한 후 완성된 로켓이 폭발사고를 일으키며 달 탐사 계획은 취소되었다. 미국은 V-2 로켓 개발의 핵심인물이었던 폰 브라운(1912-1977) 박사에게 우주 발사체 개발의 전권을 맡겼으며, 신뢰성 높은 대형 클러스터 로켓인 새턴5 로켓을 완성하여 1969년 역사적인 유인 달착륙과 안전한 복귀에 성공하였다. 1964년 이미 상용화에 성공한 지구정지궤도 통신위성을 이용하여 착륙 과정 TV 영상을 그대로 지구 전역에 생방송하였는데, 필자도 껌벅거리는 흑백 TV에서 계속되는 달착륙 영상이 무척 지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70년대 1차 오일쇼크를 겪으며 달 탐사 계획을 중단한 미국과 소련은 태양계 행성 탐사와 저지구궤도 상의 우주실험실 개발에 주력하여, 금성탐사(베네라 7호, 소련, 1971), 화성착륙(바이킹, 미국, 1976) 등의 업적을 남겼다. 미국은 1976년 태양계의 끝 명왕성까지 탐사할 목표로 보이저 1,2호를 보냈는데, 현재까지도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탐사를 계속하고 있다.

불꽃 튀기던 미국과 소련의 경쟁 구도는 전략미사일 감축협상 합의와 함께 양국의 우주선이 지구궤도에서 도킹하여 나눈 화해의 악수로 끝나게 되었다. 우주개발 비용을 절감하고자 미국은 스페이스 셔틀을 개발하여 1982년부터 2011년까지 운용하였다. 공산주의 소련이 1992년 무너진 이후, 우주개발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러시아의 우주탐사 계획은 국제우주정거장 참여를 제외하고 대부분 정지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원유 수출에 힘입어 경제가 살아나면서 화성탐사(2011 발사실패), GLONASS 완성(2013), 달 탐사(2014) 등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GPS 인공위성 망 교체, 태양계 행성 기지건설 탐사선 Opportunity(2003), Curiosity(2011) 등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또한 화성에 기지 건설 계획 등이 예정되어 있으며, 인공위성 발사비용 절감을 위한 1단 궤도진입 발사체도 개발되고 있다.

2012년 6월 16일 우주 도킹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우주선 선저우 9호의 발사를 앞두고 우주비행사 류양, 류왕, 징하이펑이 손을 흔들고 있다.

2012년 6월 16일 우주 도킹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중국의 우주선 선저우 9호의 발사를 앞두고 우주비행사 류양, 류왕, 징하이펑이 손을 흔들고 있다.

중국, 2017년 달 탐사 … 2020년 자체 GPS 구축 추진

우주기술의 상용화에서는 미국의 통신위성 상용화(1964)를 시초로 1990년대 이후 디지털 통신기술의 성숙에 따라 다양한 음성/데이터/영상 통신용 정지궤도 인공위성이 운용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과거 보유했던 ICBM를 기초로 신뢰성 높은 발사 서비스를 제공하여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최근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우주개발은 공산화 이전 미국에서 공부한 후 로켓, 제트 추진 분야의 선구자로서 CalTech 교수로 재직하다 공산화 이후 중국으로 귀환한 첸쉐썬(천학삼,1911-2009) 박사로부터 시작되었다. 탄탄한 이론과 실제적 경험을 기초로 핵무기, 로켓, 인공위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소련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된 1958년 이후 미사일 개발부터 시작하여 1970년 미사일을 개조한 발사체로 인공위성 둥팡홍 1호를 궤도에 올렸다. 등소평의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우주개발 인력과 예산도 확대되었다. 현재 우주 개발에만 3만명 이상의 연구인력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 무인우주선 선저우 1호, 2003년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성공에 이어 2007년 달 탐사위성 창어 1호 임무수행에 성공했다. 2011년에는 우주정거장 텐궁 1호에 유인우주선 선저우 8호가 도킹에 성공하였다. 2013년에는 태양탐사 우주선 발사를 계획 중이며 2017년 달 착륙, 2020년 우주왕복선과 자체적인 GPS 인공위성 망을 개발할 계획으로 있다.

우리와 이웃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로 우주기술 개발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 및 제트엔진의 개발 경험을 쌓은 이토카와 히데오(1912~1999)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고체연료 로켓 연구를 시작하였다. 1954년 펜슬로켓부터 시작하여 1960년 고도 200km까지 올라간 고체연료 카파6형 로켓의 성공에 이어서, 정치적 제약조건에 맞추어 유도 장치 없는 4단 고체연료 로켓을 이용해 1970년 저지구궤도에 인공위성을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1985년에는 핼리혜성 탐사기 스이세이를 고체로켓으로 발사하여 지구 중력권을 이탈하는데 성공했다. 경제규모의 성장에 따라 고체연료 과학로켓을 개발하는 ISAS와 상용 액체로켓을 개발하는 정부 출연기관 NASDA가 설립되어 1970년 초반 자체 액체 로켓기술 개발을 추진하던 중, 일본의 군사기술 개발을 우려한 미국은 군용 델타 로켓 1, 3단을 제공하여 기술개발을 통제하려 하였다. 일본은 이를 이용한 발사체 N-1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2단 로켓엔진을 자체개발하였고, 1975년 정지궤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소형 액체로켓 엔진의 자체 개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액체연료 1단 로켓 H-2 개발에 착수하여 1994년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이후, 발사비용과 신뢰성을 향상시켜서 2001년 부터는 발사 성공률 95.1%를 보이고 있다. 2007년에는 달 탐사 우주선 세레네가 달표면을 촬영하는데 성공했으며, 2011년에는 국제우주정거장에 무인우주선을 도킹시켜 보급물자를 운반하였다. 일본의 통합 우주개발 기관인 JAXA는 2017년까지 자체기술로서 달표면에 무인 착륙선과 탐색차량을 보낼 계획으로 있다.

북한, 경제력·산업기술 결여 … 밑 빠진 독?

마지막으로 북한의 우주개발은 핵무기 운반수단으로 개발한 대륙간 탄도탄을 민간 로켓으로 위장하여 궤도진입 및 이탈기술을 확보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으로부터 1975년 공여받은 둥펑 미사일을 기초로 스커드C 미사일, 노동 미사일, 대포동 2호 미사일, 광명성 2호 미사일 발사에 이르기까지 30여 년 동안 미사일 기술을 쉬지 않고 개발하여 왔다. 작년 12월 소형인공위성을 태양동기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한 은하3호는 노동 미사일 로켓을 4개 묶어 1단을 만들고 2단으로 스커드 미사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엄청난 숫자의 대륙간 탄도탄과 수소폭탄을 보유하고도 민생경제를 해결하지 못해 무너진 러시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경제력과 산업기술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밑 빠진 독처럼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재원을 쏟는다면 북한 민생경제는 파탄으로 내리달릴 것이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우주기술 개발 과정을 정리하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다재다능한 실무형 리더십이다. 소련의 세르게이 코를레프, 미국의 폰 브라운, 일본의 이토카와 히데오, 중국의 첸쉐썬 등은 모두 유체역학, 추진공학과 관련된 탄탄한 학문적 배경을 기초로 항공기와 엔진을 개발한 경험을 통해 실무에 능한 리더들이었으며 기술적으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타고난 멀티플레이어로서, 로켓 발사체와 같이 복잡한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기술적인 문제점들을 어려운 제약 가운데서도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독자적인 기술개발이 가능하도록 실무형 리더에게 장기간 전권을 실어 주는 정책적 지원과 기술개발 자체에는 정치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도록 독립성을 보장한 점이다. 세 번째는 독자적 기술개발을 향한 국가적인 의지가 정권이 교체되어도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나로발사체 (KSLV-1) 개발에는 이러한 공통점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진행 중인 KSLV-2 개발을 통해서 독자적인 1단 발사체 기술을 확보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며, 로켓 개발에 비전을 가진 과학 기술인들이 날개를 힘차게 펴 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존 / 세종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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