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3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전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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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15 |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 전선을 향해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정종여, , 종이에 수묵담채, 145×523cm, 1958년

정종여,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 종이에 수묵담채, 145×523cm, 1958년

 북한 정부수립 초기 미술 분야에서도 자신들의 체제에 맞는 미술 작품을 창작해내기 위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진행되었다.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월북 미술가들은 매우 주요한 역할을 해냈다. 그러나 자신들의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한 꿈의 땅이라고 믿고 향했던 이들 월북 작가들의 대부분은 논쟁들이 정리되고 북한의 미술 정책이 수립되면서 그들의 꿈과 함께 사라져갔다.

 반면 그 중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역사의 중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작가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정종여(1914~1984)다. 1914년 경상남도 거창군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33년 일본에 있는 오사카미술학교 동양화과에 입학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학생활이라는 버거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정종여도 아침이면 일어나 신문을 돌리고 자전거나 전구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림을 배우며 화가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미술전람회였던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연달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해방 직후 조선조형예술동맹, 조선미술동맹에서 활동하다가 9·28 서울 수복 때에 월북한다. 이후 북한 최고의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로 활동하며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수여 받았다. 1984년 12월 그가 죽었을 때 신문 <민주조선>, <평양신문>에서 그의 부고를 알렸으며, 1986년 그를 기념하는 전시가 대대적으로 열린 것만 보아도 북한 미술계에서의 그의 위치를 상상하긴 어렵지 않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가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다. 1958년 제작된 이 작품은 국제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전선으로 탄약과 음식을 운반해가는 노인과 여인네들의 모습을 담았다. 화면은 소와 함께 이를 끌고 가는 지팡이를 든 노인에게 시선이 먼저 꽂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탄약을 싣고 있는 소를 한손으로 끌어당기며 길을 재촉하는 노인의 표정엔 긴장감과 함께 결의에 차있다.

지필묵 활용 전통미술 대가, 월북작가 정종여

 화면 가로의 길이가 523cm나 되는 큰 화면을 여백과 먹만으로 내용의 서술성을 웅장하게 전달하고 있다. 여백 처리의 강약, 기운이 생동하는 기백 넘치는 선의 흐름이 대형 화폭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사람의 얼굴만 채색을 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보다는 인물의 사실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는 이러한 구성은 그가 대가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한다.

 화면 오른쪽에 놀라며 머리를 높이 쳐든 말의 표정과 고삐를 잡아채는 군인의 꾹 닫은 입과 눈빛만으로 전선이 매우 가까이 있는 급박한 정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노인들의 형태를 잡아낸 강한 먹선만으로도 긴장된 상황 속에서의 신념화된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그림을 감상하는 조형적 즐거움은 지팡이의 강한 먹선 뒤에 옅은 먹을 우려내어 고운 여인의 눈, 코, 입을 표현한 먹의 섬세함과 같은 세부 묘사를 감상하는 것이다. 각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뿐만 아니라 말과 소의 눈동자만으로도 대상의 감정이 함축되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드러나듯 지필묵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는 정종여는 1960년대 후반 유화에 치중되어 발전하고 있는 당시 북한의 미술계를 조선화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할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1970년대 초 조선노동당의 방침에 따라 유화, 출판화 부분에서 활동하던 미술가들 수백 명이 조선화로 전환할 때 이들에 대한 조선화 실기강습을 조직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이후 북한 내에서의 위상이 더욱 강고해졌다.

 특히 봉건착취 계급의 미술 장르로 척결의 대상이 되었던 문인화 장르가 ‘몰골형식’이라는 이름으로 복권되었을 때에도 몰골에 대해 교재를 만들어내면서 사군자를 가르친 인물이기도 했다. 물론 이 교재에서 사군자를 배우는 이유는 먹과 붓을 다루는 테크닉을 연습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군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월북 이전 그가 배웠던 전통미술에 대한 영향 때문이었다고 판단된다. 당시 북한이 전통을 복권하고자 할 때 전통을 절름발이로 학습하기 이전 세대가 북한 미술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종여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박계리 /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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