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일천만, 이제는 만나야 한다 | 이용진·손영섭 할아버지 “그 때 어머니 손 잡지 않은 순간, 세상 떠나는 날까지 후회” 2013년 4월호
2013 IPA&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공동캠페인 | 힐링일천만, 이제는 만나야 한다 3
이용진·손영섭 할아버지
“그 때 어머니 손 잡지 않은 순간, 세상 떠나는 날까지 후회”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 백령도, 하지만 그 곳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60년 전 살던 고향집 지붕 위에는 함석을 올려뒀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니 지금도 집 위에 그대로 있나 보다. 이렇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도 가볼 수는 없으니 안 보이는 것보다 더 답답함을 느낀다.
이용진(82) 할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남도 장연군 해안면. 백령도에 맞닿아 있는 장산곶(현 황해남도 용연군)이다. 홀로 고향을 그리워하던 차, 20년 전에서야 동향 모임을 알게 되었고 그 후 매년 친구들과 백령도를 찾아 북녘 땅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랬다. 처음 백령도를 찾던 날, 고향 땅이 지척에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동틀 무렵 조용히 혼자 나가 장산곶을 바라보았다. 저 눈 앞에는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끓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를 외치며 절규했다. 지금까지 버텨왔던 그리움이 폭발한 것이다. 그 소리에 놀란 백령도 해병대원들이 뛰쳐나와 자초지정을 설명한 일도 있었다.
어릴 적 단짝 친구 40년 만에 만나
고향을 찾는 모임도 처음에는 30명이 넘는 동행자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함께 백령도를 찾던 그 친구들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이제 몇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용진 할아버지 곁에는 든든한 친구 손영섭(82) 할아버지가 있다. 둘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단짝 친구였다. 학교 운동회를 할 때면 항상 짝을 이루어 2인3각 달리기에 참여하였고, 그 누구도 환상의 콤비를 따라오지 못했다. 학용품이 귀하던 당시 공책과 연필은 늘 둘의 차지였다. 그러던 중, 그들은 갑작스런 전쟁으로 헤어졌다가 40년이 지나서야 동향 모임을 통해 만나게 되었다. 함께 뛰놀고 꿈을 키우던 청년들은 이미 환갑의 노신사들이 되어 있었지만 옛 모습 그대로인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 야속한 누나
1950년,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인민군들이 마을 10리 앞까지 왔다는 소식에 이용진 할아버지의 식구들은 피난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홍역을 앓고 있던 막내 동생의 병세가 악화될까봐 어머니와 두 동생은 집에 남았고, 아버지는 아들 셋만 이끌고 백령도와 장산곶 중간의 달래섬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며칠 후, 아버지는 남은 식구들 걱정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아버지의 모습에 어머니는 너무 놀라 도리어 빨리 돌아가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그 다그침에 아버지 홀로 발길을 돌렸고 그게 기약 없는 이별의 마지막이 되었다. “아버지는 그 때 어머니의 손을 잡지 않은 순간을 세상 떠나는 날까지 후회하셨고, 그게 자식들에게도 서러움이 됐지.” 병을 앓던 막내 동생이 건강히 살아있다면 지금쯤 63세가 되었을 것이다. 이도 다 나지 않은 동생이 집 앞에 심어 두었던 옥수수 대를 잡고 통째로 물어뜯던 모습에 모두가 웃고는 했는데, 이제 그 동생의 얼굴도 희미해져 간다.
같은 마을 장산곶에 살던 손영섭 할아버지의 가족은 친구네보다 먼저 고향을 떠났다. 가족들은 백령도로 향하는 배에 올랐는데, 그 이후로 오랜 시간 백령도에 터를 잡았다. 눈앞에 있는 고향을 바라보며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고,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무엇보다 고향 땅에 남겨두고 온 누나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누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었고, 꿈에서라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야속하게도 누나는 꿈에서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생전에 누나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지만 헛된 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이산가족상봉 행사에 신청은 해보았는지 여쭤 보았다. 두 분의 답변이 달랐다. 이용진 할아버지는 “행사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신청했는데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 하나, 둘 상봉하고 가족을 만나는데 도통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 연유를 알아보니 북측 가족이 상봉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재 북측 가족의 생사도 알 수 없지만, 살아 있다고 믿으며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남북 당국이 이에 대한 해결책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어 더욱 애만 탄다.
반면 손영섭 할아버지는 상봉신청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상봉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60년을 떨어져 단 며칠을 만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회포 한번 풀 겨를 없이 형식적인 이야기만 나누어 그것 또한 한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신청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생사조차 알 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한 번이라도 만나고 그리워 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당사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분단의 최대 피해자인 이산가족에게 부여해야 할 최소한의 권리이자 예의가 아닐까.
“통일돼서 죽기 전에 내 동생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이오.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갑자기 통일이 될지 누구도 모르지 않소?” 현재 4년째 골수암 투병 중이라던 이용진 할아버지는 애써 덤덤한 척 했지만, 가슴 속 그리움이 새카맣게 타버렸다는 것을 훤히 알 수 있었다. “남한에 연고 하나 없이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지금의 좋은 세상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가면 통일이라는 더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데 왜 그리들 무심히 먼저 가는지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네.” 손영섭 할아버지가 덧붙였다.
그들은 함께이기에 다른 누구보다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동시에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그들은 서로의 갈 수 없는 고향이자, 비극적인 현대사 속 삶의 증거였다. 둘에게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서로의 곁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날, 그들은 또 다시 함께 백령도를 방문할 것이다.
선수현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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