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4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계급착취 투영된 농민생활 조명 201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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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16 | <딸> 계급착취 투영된 농민생활 조명

민병제, , 캔버스에 유채, 154×200cm, 조선미술박물관 도록

민병제, <딸>, 캔버스에 유채, 154×200cm, 조선미술박물관 도록

작품 <딸>은 한참을 들여다보게 하는 그림이다. 화면 오른쪽에 허름한 이불을 끌어올려 덮고 있는 병색이 완연한 아들의 눈빛, 화면 중앙의 분노를 가슴에 품는 저 어머니의 눈빛, 화면 왼쪽 마름의 눈빛들이 화면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복잡한 심리적 움직임이 화면을 바라보는 우리까지 긴장하게 한다. 이 그림은 빚을 못 갚아, 어린 딸마저 지주에게 빼앗기지 않을 수 없게 된 한 소작인 가정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미술 작품은 서사적인 이야기를 형과 색채로 감상자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것도 정지된 한 컷으로. 평면 작품도, 입체 작품인 조각도 결국은 한 컷이다. 내레이션이 있는 이야기를 정지된 한 컷에 다 담아내는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예를 들어 최근에 많은 사람들이 영화로 보았던 <레미제라블>을 혹시 책으로나 영화로 또는 뮤지컬로 보았다면 각자 스스로 화가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각자 머릿속에서 <레미제라블> 내용의 본질을 한 컷의 화면으로 그려보자. 어떤 장면을 그렸는가? 너무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면 안타깝지만 한 컷으로 구성을 정리해야만 한다. 정지된 한 화면에 <레미제라블>의 그 긴 내용의 본질이 함축적으로 드러나도록 구성해낼 수 있는 것, 좋은 작품의 시작이다.

어린 딸을 지주에게 빼앗기는 사연을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딸이 끌려 나가고, 엄마가 울면서 아이를 붙잡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한 구성이 가장 직접적이고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이라 공감도 쉬울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화가 민병제의 <딸>은 그러한 격렬한 장면과는 다른 긴장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주목된다.

화가 민병제, 탄탄한 데생력 … 심리묘사 탁월

<딸>에서 작가는 인물들의 눈빛, 표정과 포즈, 화면에 흩어져 있는 사물들을 통해 숱한 사연들을 녹여내고 있다. 왼쪽 화면의 마름은 신발을 신은채로 문턱에 걸터앉은 무례한 포즈와 반짝이는 구두, 노란 금시계와 반지로, 지주를 대신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던 마름의 계급을 드러내고 있다. 마름 앞에 놓여 있는 가방에 삐져나와 있는 주판, 그 앞에 가지런히 펼쳐져 있는 장부는 교활하고 능글맞은 마름의 표정과 함께 화면 인물 중 유일하게 입술을 벌려 이야기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감언이설로 순박한 어미와 어린 자식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화면 가운데에는 정삼각형 구도와 탄탄한 덩어리감으로 간고한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다. 엄마 곁을 떠나기 싫어서 어미의 허리를 움켜쥐고 엎드려 우는 딸아이의 등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팔, 또 다른 한 손은 자신의 얼굴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갓난아이를 강건하게 끌어안고 있다. 그녀의 모습은 촉촉이 젖어있는 그의 눈이 운명에 순응하는 연약한 여성의 눈빛이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고개 숙이지 않고, 허리 굽히지 않고 강건한 팔로 두 아이를 감싸고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무언의 저항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구석에는 병색이 완연한 기운 없는 아들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분노와 절망 사이에서 웅크린 고양이처럼 눈을 치켜뜨고 있다.

이처럼 어머니와 마름, 어머니와 딸, 아들과 마름 간의 복잡한 심리적 움직임을 그려 당대 사회의 계급적 착취가 투영된 농민들의 일상생활을 개성감 넘치게 그렸다는 점에서 북한 미술계는 이 작품을 주목하였다. 전람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여, 조선미술박물관에 국보로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을 그린 화가 민병제(1923~?)는 황해남도에서 출생하여 해주동흥중학교를 다니다가 1942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가와바타화학교에서 미술공부를 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탄탄한 데생(dessin)력이 이 시기 교육을 통해 다져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 유학까지 가서 미술혼을 불태우던 그의 북한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 미술계에서도 그의 또 다른 작품 <분노>와 함께 “혜성처럼 밝게 빛났다가 소문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고 언급하고 있어서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간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던 민병제. 그의 심리를 추적하고 기록해야할 과제는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것은 아닐까.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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