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5월 1일

영화리뷰 |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 ‘그만하면 잘했어’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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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위플레쉬>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 그만하면 잘했어’

CS_201505_76우리나라에서 한동안 재즈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중음악의 장르가 점차 다양해지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당시에 음악 좀 안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재즈가 사랑을 받으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헤비메탈 역시 음악 좀 듣는다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던 시기였다. 대형서점이나 번화가 길거리 바에서는 재즈선율이 삼삼하게 들리곤 했다. 이 영화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는 ‘카라반’은 가장 위대한 재즈뮤지션으로 손꼽히는 듀크 앨링턴과 후앙 티졸이가 작곡한 곡이고 영화 <위플레쉬> 역시 재즈곡의 이름이다. 원 뜻은 ‘채찍질’인데 감독은 영화의 제목을 뽑으면서 중의적 의미를 부여한 듯 싶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감독인 다미엔 차젤레의 자전적 경험에서 따왔다고 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작명이다.

‘채찍질’ 최고의 경지로 질주하는 두 천재

영화 <위플레쉬>는 음악명문 세이퍼 대학의 재능있는 신입 드러머와 음악적 열의를 넘어 광기로 가득찬 플렛처 교수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앤드류는 명문 재즈음악학교에서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고 있다. 그의 집안은 보수적이고 허영적인 식구들뿐이고 아버지만이 앤드류를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주는 우군이다. 대체적으로 예술적 천재들은 사회적 관계가 매우 서툰 일면을 갖고 있는데 주인공 앤드류 역시 그렇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혼자다. 연애도 늘 자기중심적이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 앞에 더욱 더 반사회적인 성향의 플렛처 교수가 등장한다.

주인공인 앤드류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플렛처 교수는 정말 ‘꼴통’을 넘어선 ‘깡패’같은 인물이다. 인생 자체에 연습실과 공연장 밖에 없는 인간이다. 하지만 음악실력 하나로 명문 음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는 인물이다. 음악 수업중인 연습실을 노크도 없이 박차고 들어가는가 하면 집기를 집어던지고 모욕적인 욕설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보편적 매너의 경계를 여지없이 허문다. 그에게 있어서 음악 이외의 것들은 의미가 없는 듯 보인다. 시계가 9시 0초를 가리키자마자 칼같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괴성을 지르는 장면 등은 흡사 해병대 교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관객들은 플렛처의 모습에서 마에스트로의 천재적 독선과 카리스마의 양면성을 본다. 그래서 플렛처는 주인공인 앤드류보다 더 큰 존재감을 보여준다. 플렛처 역을 맡은 J.K. 시몬스는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악덕 편집장 J. 요나 제임슨 역을 맡았었다. 하지만 영화 <위플레쉬>에서의 연기력이 놀랍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이나 기타 영화에 출연했던 인물임을 간파 하기 쉽지 않다. 역시나 2015년 미국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를 비롯한 40여 개 영화상의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의 반전은 마지막에 있다. 감독은 재즈천재 찰리파커의 일화를 위대한 재즈뮤지션으로 발전하게 되는 계기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했다. “찰리 파커가 조가 던진 심벌즈에 맞고 ‘버드’가 된 건 알고 있지?” 플렛처가 앤드류에게 관심을 보이며 던진 대사다. 플렛처는 음악의 천재들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보다는 ‘완벽함(PerfectJob)’을 요구했다.

‘Good Job’ 아닌 ‘Perfect Job’ 추구

<위플레쉬>는 명연주자를 꿈꾸는 앤드류와 명연주자를 만들어내기를 열망하는 플렛처의 2인극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광기의 변주곡이다. 영화에서는 몇 번의 반전과 위기가 찾아온다. 이것은 일견 천재 재즈연주자의 일화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플렛처의 돌발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은 영화적 긴장감을 극도로 상승시킨다. 특히 초반부에 플렛처는 주인공을 비롯한 드럼 주자들에게 ‘더블 타임 스윙’ 주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양손을 사용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두드리는 기법인데 대부분의 드럼주자들이 플렛처로부터 면박을 당한다. 실제 이 주법은 ‘위플레쉬’ 곡이 아니라 마지막의 ‘카라반’ 중반부에 나오는 주법이다. 마지막 장면에 앤드류가 ‘카라반’을 연주하면서 분노를 머금고 광기의 스트로크를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이 ‘더블 타임 스윙’이다.

이 영화는 비교적 단순한 배경과 무대를 기반으로 17일 만에 제작되었다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쫀쫀한 재미를 전달한다. 플렛처는 싫어하겠지만 ‘그만하면 잘 만들었다(Good Job)’는 수준은 넘는다.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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