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겨레말 | “공부하기 바쁩니다, 아니 힘듭니다” 2015년 5월호
알쏭달쏭 겨레말
“공부하기 바쁩니다, 아니 힘듭니다”
바쁘다. 바쁜 일상이다. 맞벌이 부부에게 아침만큼 바쁜 시간은 없다. 애들 깨우고, 씻기고, 옷 입히고, 밥 먹이고…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려면 이 모든 일들을 일사불란하게 후다닥 해치워야 한다. 여기서 조금만 틀어지면 그날은 100% 지각이다. 회사에 오면 또 바쁘다. 이래저래 쌓여 있거나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고 정신 사나울 정도로 업무 시간이 후딱 가버리고 어느새 퇴근 시간이다. 퇴근 후 집에 와도 바쁨은 떠나질 않는다. 애들 저녁밥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려고 애쓰다 보면 두세 시간이 훅하고 지나간다.
이상이 ‘바쁘다’에 담겨 있는 기본 의미이다. 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북의 사전 모두 ‘일이 많거나 또는 서둘러서 해야 할 일로 인하여 딴 겨를이 없다’는 의미로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바쁘다’의 북쪽 용례를 찾아보면 남쪽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용례들이 나온다.
아래 용례들을 읽어보면 앞서 말한 ‘바쁘다’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채택한 ▲몹시 급하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 딴 겨를이 없다 ▲어떤 행동이 끝나자마자 곧의 뜻을 나타낸다 중 어느 것 하나 북쪽 용례에 해당하는 의미가 없다. 즉 북쪽 용례에 있는 ‘바쁘다’의 의미는 남쪽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동차 기중기로 25도까지 들어준 상태에서는 권양기의 힘으로 들 수 있습니다. 다만 한계점을 극복할 때까지 권양기를 세우지 않으면 됩니다. 권양 제동기가 견디어 내기 {바쁘니까요}. <최성진 : 높이 솟은 탑>
-그는 힙겨웁게 일하는 옥이 쪽으로 다가 와서는 “{바쁘지} 않아요?”하고 물으면서 옥이의 삽자루에 손을 내밀었다. < 허춘식 : 노래>
남쪽 화자들에게 낯선 ‘바쁘다’의 의미를 확인하려면 ‘바쁘다’ 대신에 ‘힘들다’를 넣어서 읽어보면 된다. 그러면 의미가 명확하게 와 닿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북쪽은 남쪽과 달리 ‘바쁘다’를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 북은 ‘힘들다’에서도 의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남과 북의 수험생들에게 아래와 같은 동일한 질문을 하면 같은 의미이지만 서로 다른 표현의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요즘 공부하는 것 어때?
남쪽 학생의 답 : 공부하기가 힘듭니다. 북쪽 학생의 답 : 공부하기가 바쁩니다.
김완서 /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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