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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엄마를 모셔 오는 거예요” 2015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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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내친구 3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엄마를 모셔 오는 거예요”

탈북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궁금한 게 있으면 별 생각 없이 말했다. “너는 혼자 왔니? 가족과 같이 남한에 왔니?” 등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말하기를 꺼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왜 아이들이 가족에 대한 질문을 피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같이 내려 온 가족이 남한살이에 힘들게 적응하고 있는 이야기를 하기 싫었고,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해서는 죄책감 내지는 그리움 때문에 더욱 말하기를 꺼렸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절대 가족 이야기를 묻지 않게 되었다. 남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학습태도가 영 불량한 남철을 보며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지만 쉽게 가족사를 물을 수 없었다.

남철은 내 수업의 첫 시간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황당했다. 어떻게 선생님이 들어왔는데 잠을 잘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철의 사정을 알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남철은 힘겹게 두만강을 넘어 중국에 가 고생을 많이 한 학생이다. 남한에 와보니, 대학을 안 나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늦깎이로 검정고시를 통해 대입반에 들어온 것이다. 힘들게 대입반에 들어왔으면 수업만은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잠만 자는 남철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안쓰러우면서도 나를 향한 무언의 시위를 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 수업이 지루한가? 내가 너무 어려운 주제를 놓고 가르치는 건가?’

“많이 피곤한가 보다. 어디 아프니?”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일부러 남철이 누워있는 곁에 가서 작품을 낭독하기도 하는 등 흥미를 불러 일으켜 보려 애썼다. 소용이 없었다. 수업을 마칠 때까지 남철은 책상에 엎드려 정신없이 잠을 잤다. 깨워서라도 말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전교생이 근린공원에 나가 백일장을 갖게 되었다. 나는 그 날 특별강사이자 심사위원으로 행사에 참석했다. 푸르른 이파리들이 앙증맞게 얼굴을 내미는 봄날, 야외에 나온 아이들은 소풍 나온 듯 들뜬 모습이었다. 봄볕 내리 쬐는 공원에 앉은 아이들에게 ‘진정성이 넘치는 자세야 말로 좋은 글을 쓰는 밑거름’이라는 말로 강의를 끝낸 뒤, 글제를 주었다. 홀로 구석 의자에 앉아 글을 쓰는 아이도 있고, 그림을 그려가며 시를 쓰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백일장에 임하는 모습이 예뻤다.

그런데 남철만은 야외에 나와서도 병든 닭처럼 앉아 여전히 졸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안 되겠다 싶었다. 슬며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많이 피곤한가 보다. 어디 아프니?” 그제야 남철은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민망한지 양손을 비비며 씩 웃었다. 악의는 없어 보였다. 오히려 순진한 눈망울에 잠을 깨운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밤에 공부하느라 잠을 잘 못 자니?” 상황을 직접적으로 물으면 상처받을까봐 에둘러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잠을 못 자요.” “늦게까지 하니? 조금 일찍 끝나는 아르바이트는 없어?”

“죄송해요.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내 질문에 남철의 눈가가 젖어 들었다. “북에 계신 엄마 얼른 모셔 오려면 일을 많이 해야 해요.” 남철은 내가 묻지도 않은 가족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남철은 고난의 행군 시절 아버지가 배고파 돌아가시고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고 한다. 중국으로 혼자 돈 벌러 왔다가 남한까지 온 이야기를 하는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얼마 전에 조선족 브로커를 통해 엄마와 통화까지 했어요. 그렇게 전화 통화하는 데도 돈 드는 거 모르시죠?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제 삶의 목표가 생겼어요. 엄마를 꼭 대한민국으로 모셔 오는 거예요. 지금 제게는 대학보다 돈이 우선이에요.” 비록 남철은 중국에 가 돈 한 푼 못 받고 일만 해주다 결국 좋은 선교사님을 만나 대한민국에 왔지만 브로커 비용을 벌려면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만 했다.

탈북한 친구들 중에는 남철처럼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그러느라 정작 공부하고 싶어 온 학교에서는 부족한 잠을 자느라 바빴다. 그들은 남한에 와 외롭고 힘든 시간을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데려 오면 보상을 받을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돈을 모으는 것이다. 나였어도 사랑하는 내 가족이 북에서 고통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북에 살고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브로커’ 라는 익명의 매개자를 통해야만 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웠다.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을 아이들이 피눈물 흘리며 감내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가슴이 먹먹해질 따름이다.

박경희 / 하늘꿈학교 글쓰기 지도교사

Q.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가족에 대해 물어요. 저만 한국에 와 있고, 나머지 저희 가족은 아직 북에 있어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A.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상대의 가족을 궁금해 하곤 합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형제자매는 몇이나 있는지 등등 자연스럽게 질문이 오고가죠. 대부분의 남한사람들은 탈북과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북에서 온 친구들의 가족 형태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가족 모두가 탈북해 남한에서 함께 살고 있지 못하고, 때로는 혼자 남한에 왔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좀 더 친해지려 질문하는 것이라고 짐작됩니다. 그리고 아직 북에 가족이 있는 경우 이런 질문에 대해 대답하기가 곤란하고 당황스러운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 묻느냐에 따라 가족에 대해 대답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조금은 대답할 수 있기도 하겠죠? 마음에 부담과 상처가 되지 않는 만큼 자연스럽게 설명하되, 친구처럼 북에서 온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가족에 대한 질문하기에 앞서 친해지고 마음을 열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가족에 관한 질문뿐만 아니라 북에서의 생활에 대해 많은 질문과 대화가 오고 갈 텐데 그때마다 고민하고 당황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

전지현 / 화성시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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