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북한사회, 양극화와 수탈경제에 뿌리 흔들려 2013년 5월호
기획Ⅰ| 북한의 오판 … 경제·핵무력 병진?
북한사회, 양극화와 수탈경제에 뿌리 흔들려

북한의 사회주의 구조가 와해되며 시장화가 확대됨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왼쪽 사진은 2011년 7월경 제2차 평양제1백화점상품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 오른쪽은 비슷한 시기 지역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 Ⓒ연합뉴스
경제와 핵무장 병진노선의 공개천명에도 불구하고 핵미사일을 활용한 무력시위를 제외한 북한 경제의 의미있는 변화들이 관찰되고 있지 않다. 소위 ‘6·28방침’이 북한 경제회생을 위한 개혁과 개방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으나 구체적인 성과와 조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 내 개혁과 개방에 관한 실질적인 움직임은 미약하며, ‘6·28방침’은 1978년 중국의 방식보다 강도가 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정은의 집권 이후에도 경제위기는 지속되고 있으며, 장기간 위기에 따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배급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공식경제의 와해는 음성적 시장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는 북한 당국의 암묵적 묵인과 통제라는 이중적 사이클 속에서 주민들의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식경제의 와해와 음성적 시장화 확산은 북한사회의 새로운 사회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최근 북한사회 갈등의 특징은 사회주의 공식경제 구조의 와해와 시장화의 확대에 따라 빈부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문제들이 점차 구조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화는 사회주의적 평등구조의 변화와 아울러 새로운 유산계급의 형성을 수반한다. 북한의 경우 상대적으로 평등한 계급·계층구조의 변화와 아울러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축적의 정당성이 결여된 정경유착형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갈등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소규모 상업 증가 … 정경유착 재벌도 등장
2002년 7·1 경제개선 조치는 시장화와 관련된 의미있는 변화들을 야기했으며, 이후 북한 내에 비공식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결국 2009년 시도된 화폐개혁의 배경은 시장화 확산에 대한 북한당국의 우려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시장화에 따라 소상품 생산관계를 통해 소규모 상업계층이 급속도로 증가한 것으로 보이며, 정경유착을 통한 재벌형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개인 자산이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북한사회에 회자되고 있으며, 이들은 친인척관계 및 권력과의 유착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사회의 경제위기는 새로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라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일부 특권층을 제외하고 상대적으로 평등체제를 유지했던 과거와 달리 북한의 계급·계층구조는 분화하고 있으며, 이는 불평등 구조의 심화를 동반하고 있다. 문제는 신흥 부유층들의 부의 축적이 정당한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정경유착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시장의 음성적 성격상 권력층의 비호 없이는 축적의 규모 확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흥 부유층의 형성과 기아의 위협에 시달리는 대다수 주민들의 간극은 내적인 사회갈등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경우에 따라 북한 사회변화의 촉발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경제위기가 북한 사회갈등의 지형으로 작용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수탈경제적 성격이다. 1990년대 시작된 경제위기 이후 북한 당국은 경제정책에 있어 일종의 이중구조 전략을 채택했다. 경제의 이중구조 전략은 국가가 국민경제 전체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생존에 필요한 특수경제와 엘리트를 포함한 핵심 지지세력의 유지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을 의미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7·1 조치는 이중구조 전략을 공식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의 보호망에서 밀려난 일반 주민들은 자력으로 비공식적, 음성적 시장을 통해 생존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으며, 국가는 시장활동을 묵인했다. 이 같은 과정은 중층적 의미의 수탈경제구조를 동반함으로써 사회갈등의 소지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 주민들이 자원 분배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은 국가에 의한 일차적 수탈을 의미한다. 핵심지지층에 대한 자원의 우선적 분배는 일반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한 수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수탈구조는 자생적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다. 경제위기의 심화로 축적 메카니즘이 계획경제에서 시장으로 전환되었다는 점은 국가가 시장에서 형성되는 잉여에 대해서 수탈구조를 형성한다. 북한 당국은 시장에 대해 조세 및 준조세 등 다양한 수탈의 방식을 적용해 잉여 자원들을 흡수해 가고 있다. 2011년 전격적인 화폐개혁은 시장에 축적된 잉여를 국가가 강제로 수탈한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아울러 시장의 음성적 성격을 이용한 관료 및 보안세력의 지대추구행위와 뇌물, 보호세 등도 수탈적 성격을 지닌다.
중층적 수탈경제, 근본적 국가 불신 야기
북한당국의 경제에 대한 이중구조 전략과 수탈 경제적 성격은 국가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내면에서부터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다. 특히 화폐개혁은 북한 주민들의 국가에 대한 근본적 불신을 야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시장에 강제적이고도 전격적인 개입과 몰수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집합심리학적 좌절감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시장은 더 이상 북한 당국에 대한 정책적 신뢰를 보내지 않을 것이며, 시장활동은 국가가 관리하기 어려운, 보다 음성적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핵과 미사일, 재래식 도발 위협을 통해 체제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김정은 체제의 이면에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불신, 그리고 사회갈등 구조의 형성이라는 북한 사회변화의 잠재적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북한 경제회생을 위한 특단의 조치와 분명한 개혁·개방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경우 북한 사회의 내적인 균열이 커질 것이며, 이는 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동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동구사회주의 붕괴와 재스민 혁명의 경우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신뢰감 약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조한범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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