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5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남북 돌잔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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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0

남북 돌잔치 이모저모

아이가 태어나 한 해가 되면 돌잔치를 해주는 것은 남북이 같다. 친척들과 이웃, 지인들을 초청하여 아이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함께 즐기는 것도 같다. 아이 앞에 상을 차려놓는 것도 같고, 상 위에 여러 가지 물건을 놓고 무엇을 손에 쥐는가 보면서 부자가 될 팔자라느니, 공부를 잘하겠다느니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북한 돌잔치에선 큰 사발에 쌀을 담아 놓는다. 아이가 쌀을 쥐면 ‘배를 두드리며 잘 살 팔자’라고 환성을 지른다. 지폐도 여러 장 놓는다. 돈을 쥐면 “와~ 돈 많은 부자가 되겠네.”한다. 실타래도 놓는다. 실타래를 잡으면 “어이구~ 건강하게 오래 살겠군.” 한다. 연필도 놓는다. 연필을 쥐면 “공부 많이 해서 출세하겠구나.” 한다. 장난감 권총도 놓는다. 그걸 잡으면 군인이나 경찰이 되겠다고 좋아한다.

북한 부모들이 선호하는 돌잡이 물건?

부모들은 아이가 연필이나 돈을 쥐면 제일 좋아한다. 오래 전 배급이 정상이고 월급도 꼬박꼬박 나와 살아가던 시절엔 돈을 쥐면 “앗, 저거 돈벌레가 되자는 게 아니야?” 했지만 지금은 연필보다도 돈을 쥐면 더 흐뭇해한다. 경제난이 빚어낸 현상이다.

남한에 와보니 아이가 쥘 물건이 돈, 마우스, 청진기, 판사 망치, 마이크 같은 것이었다. 돈만 제외하면 북한과 달랐다. 연필을 마우스가 대신한 것을 보고 디지털 시대임이 실감났다. 청진기와 판사 망치를 놓은 것을 보니 돈 잘 버는 의사와 명예를 가진 판검사 등이 각광 받는 직업임이 확연했고 마이크를 놓은 것을 보니 연예인의 인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공통점은 어느 직업이나 다 돈 잘 버는 직업이었다. 한국 사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물질지상주의가 지나치게 팽배한 사회라는 사실을 돌잔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남과 북이 다 자녀가 돈 많이 벌기를 바란다는 점은 같다. 역사적으로 너무 가난하게 살아온 민족이다 보니 그럴 만도 하다. 남한이 좀 잘 산다고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여전히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해야지 한가한 상황은 아니다.

아기 돌상도 좀 다르다. 남한에선 탑처럼 생긴 케익과 꽃, 과일모형 등 장식품을 놓지만 북한 돌잔치상은 음식이 위주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상에는 케익 대신 긴 사탕타래를 빙빙 돌려쌓아 올린 축탑이 중심에 있다. 이것을 함흥 지방에선 “옥충탄”이라고 불렀다. 사탕이 없으면 떡으로 탑을 만들어 올린다. 축탑 중심으로 주위에 과일, 떡, 통조림, 해산물 등 좋다는 음식은 다 놓는다. 한편 오래전엔 없었던 현상도 생겼다. 돌잔치에 아기 옷을 선물로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옷들을 상 앞에 쭉 전시한다. 그걸 보면서 ‘저 옷은 누가 가져왔다’, ‘이 옷은 엄청 비싼 옷이다’ 하고 은근히 비교하면서 으쓱해하거나 기가 죽는다.

잔치가 끝나면 여자 손님들에겐 잔치 음식을 나누어 싸서 보낸다. 포장지가 필요한데 대개 <노동신문>을 구입해 뒀다 쓰면 좋다. 부조를 많이 한 손님에게 더 좋은 걸 싸주어도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이 모른다. 하지만 남한에서처럼 손님들에게 세면수건 같은 것을 골고루 선물로 주는 일은 없다. 상을 요란하게 차리는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도 있다. 돌잔치가 끝나고 나면 사진밖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고 훗날 그 때 ‘이만하면 잔치를 잘 했네’, ‘좀 섭섭하게 됐네’ 하고 추억한다.

상 위에 소나무 올렸다가…

상차림 말을 꺼낸 김에 북한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던 이야기를 하겠다. 어느 집 돌잔치에 갔을 땐데 상 위에 어린 소나무가 올라있었다. 숱한 돌잔치를 가봤지만 상에 나무를 놓은 건 처음 봤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그 가문에선 아이들이 병에 걸려 죽는 현상이 빈번했다. 하도 안타까우니까 집안의 어르신이 점쟁이를 찾아갔다. 점쟁이는 바위틈에 용케 뿌리내린 소나무를 찾아내 화분에 담아 상에 올리라고 말했다. 소나무처럼 아이가 굳세게 자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몇 달 후 병에 담긴 양잿물을 마시고 그만 죽었다. 화가 난 어르신은 다른 점쟁이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다른 점쟁이는 죽은 사람 묘지 옆에도 소나무가 있으면 뿌리가 관을 뚫고 들어간다고 뽑아버리는데 살아있는 아이 옆에 소나무를 놓다니 어느 돌팔이 점쟁이가 그따위 짓을 시켰냐며 떠들었다. 그 일로 두 점쟁이가 대판 싸우다 미신행위를 한 사실이 보안기관에 알려져 둘 다 산골로 추방되고 말았다. 정말 웃지도 울지도 못할 희비극이었다.

남북의 돌잔치에서 또 다른 점은 남한은 웨딩홀이나 큰 식당 같은 연회장에서 하는데 북한에선 보통 집에서 한다는 점이다. 남한에선 직원이 나와 잔치를 주관하며 아이와 손님들을 즐겁게 하려고 퐁당퐁당 뛰면서 쇼를 한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낯선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알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온갖 몸짓을 다하며 땀 흘리는 것이 고맙긴 한데 과연 ‘정말 즐거워서 저럴까’, ‘돈을 버느라 저러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동정심도 느꼈다. 그래도 그 덕에 잔치를 편하게 치를 수 있는 점은 좋다. 그러나 북한은 집에서 하기 때문에 일손이 달리고 부산스럽다. 특히 여인들이 죽을 고생이다. 남자들은 술 마시고 룰루랄라 논다. 여인들이 힘들어하던 생각을 하면 아마 통일 후엔 자연스레 북한 돌잔치도 남한과 같아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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