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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소풍날 201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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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5 | 마냥 웃을 수만 없는 소풍날

북한의 어린이들이 평양의 공원으로 봄소풍을 나와 반별로 원을 그리고 앉아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어린이들이 평양의 공원으로 봄소풍을 나와 반별로 원을 그리고 앉아 있다. Ⓒ연합뉴스

세상의 온갖 꽃들이 자기만의 화사함을 한껏 뽐내고 따스한 햇볕에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5월, 학생들은 교실을 떠나 소풍가는 생각에 들떠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소풍을 원족 혹은 등산이라고 한다. 이맘때쯤이면 북한의 학교들도 원족 준비에 여념이 없다. 소풍가는 날 아이를 위해 정성스레 김밥을 싸주시던 엄마의 모습이 점차 친구들과 점심을 사먹도록 용돈을 건네주는 모습으로 남한의 세태가 바뀌었듯이, 북한의 원족 세태도 바뀌고 있다.

부담스러운 情의 문화

북한에서도 소풍날이면 도시락을 싸와 친구들과 선생님과 나누어 먹는 모습이 보편적이다. 도시락은 주로 밥, 반찬 등을 싸오는데 일부는 떡이나 김밥을 싸오기도 한다. 1990년대만 해도 북한에서 김밥은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일부 조총련 귀국자들이나 도시락으로 싸오고는 해서 소풍 당일 메뉴를 보면 그 집의 재력이나 계층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필자가 있었던 양강도에는 바다가 없어 김이 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과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소풍날 김밥을 싸오는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북한의 김밥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조금 다른데 소금, 식초, 설탕으로 간을 하고 계란, 당근, 파를 넣어 약간 시큼한 맛이 일품이다.

북한도 남한처럼 담임선생님의 도시락을 함께 준비하는 것을 정(情)의 문화로 여긴다. 학급 임원인 경우 청년동맹 비서와 학교장의 점심까지 준비하고 일부 학생들은 영어,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 선생님들의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식량난에 허덕이면서 이마저도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여 소풍은 마냥 즐거운 날일 수만은 없게 되었다. 특히 한 가정에 아이가 2~3명일 경우 소풍이 연달아 있다면, 대략 10개의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소풍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늘면서 가정, 사회에서는 원성이 높아졌고 시 교육부에서는 학교별 소풍일을 통일하기 위한 회의까지 열리고는 했다. 북한 영화 <한 여학생의 일기>에도 이러한 단편이 드러난다. 담임교사가 점심 도시락을 잘 싸온 아이를 칭찬하는 모습을 보고 엄마에게 투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북한 영화에서 이런 문제를 처음 다룬 장면인 듯하여 기억에 남는다. 정(情)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도를 넘어선 관행이 된 분위기가 북한 영화에까지 반영된 것이다.

어른들의 이러한 풍경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소풍은 마냥 즐거운 일이 아닐까. 친구들과 모여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을 먹은 후, 소풍을 위해 준비한 장기자랑이나 가벼운 경기를 한다. 북한 당국에서는 기타를 치며 단란하게 모여 합창하는 모습의 선전용 소풍 장면을 보여주지만, 실상은 북한 학생들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나들이를 즐기느라 정신이 없다.

식량난, 보물찾기 앗아가

소풍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보물찾기’다. 하지만 북한의 소풍에서 보물찾기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미리 숨겨둔 종이 쪽지에 적힌 약초, 꽃, 곤충 등을 찾아오는 학생에게 공책, 수첩 등을 주었다. 학생들은 모두 이 순간을 기다렸고, 너나 할 것 없이 열심히 보물찾기에 매진했다. 하지만 식량난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산이 민둥산으로 변했고 이야기는 달라졌다. 쪽지를 숨겨두던 나무는 다 베어 없어졌고, 약초나 꽃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으며, 곤충들도 민둥산에서는 살 곳을 잃어 채집할 식종은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식량난이 보물찾기까지 앗아간 것이다.

산에 나무도 없는 데다 그나마도 온통 밭으로 개간하여 아이들이 놀만한 공터가 없으니 소풍으로 갈 수 있는 장소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따라서 소풍 당일이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생님들은 고학년 남학생들을 곳곳에 선발대로 보내고는 했다. 당연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없는 산에서 학교의 명예 아닌 명예를 건 남학생들의 자존심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민둥산이 늘어나며 소풍 장소는 줄어드는데 날짜를 통일하라는 지시가 내려올 경우 학교별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결국 장소가 마땅치 않아 다른 날로 지정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시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시내 중심가의 강으로 가거나 학교 운동장으로 소풍을 가는 웃지 못할 풍경도 벌어진다.

졸업학년 학생들은 소풍 외에도 답사를 떠난다. 답사를 남한식에 비유하자면 수학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학여행이란 말은 북한에서 잘 쓰이지 않아 탈북자들에게 묻는다면 대다수가 머리를 갸우뚱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잘 사용하지는 않아 필자도 김일성의 유년시절을 다룬 장편소설에서 일제시대 때 그가 수학여행 간 것을 묘사한 부분 정도 기억날 뿐이다. 필자가 살던 혜산에서는 주로 백두산답사를 떠났다. 혜산에서 백두산은 가깝기 때문에 1박2일 혹은 2박3일 일정으로 백두산, 삼지연 일대를 방문한다. 김정일은 백두산 정기를 받아 양강도 삼지연군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일대에는 고향집을 복원하여 전시하고, 과거 장수봉이라 불리던 곳에 ‘정일봉’이란 글자를 크게 새겨 넣어 두었다. 프로그램은 주로 관광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답사를 통해 김일성·김정일의 생가(백두밀영), 혁명전적지, 사적지 답사, 명승지 혹은 평양 등을 방문하고 혁명 사상을 교육받는 것이다. 이때 휘발유, 차량 대절 등의 비용을 학생들이 지불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남한에서는 소풍, 수학여행 경비를 개개인이 부담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겠지만 사회주의 의식이 남아있는 북한에서 이는 아직도 생소한 개념이다. 아니, 부당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에는 학교와 교육부에서 지원을 해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함께 답사를 떠날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이 개인의 부담으로 이어지니 북한에서는 수학여행 한번 못 가본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그나마 탈북 청소년들은 북한에서 맛보지 못한 수학여행의 즐거움을 남한에서 누리고 있다.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다 허물어진 요즘, 아이들은 여전히 소풍을 생각하며 들떠 있겠지만 가난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세태 변화 속에서 소풍을 보내야 하는 대부분의 북한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현실적인 부담감에 울적해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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