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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모내기철 … 밥술 뜨는 사람은 모두 동원 2013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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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6 | 모내기철 … 밥술 뜨는 사람은 모두 동원

모내기철 북한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기동예술선전대가 일꾼들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모내기 전투 노래 혹은 유행하는 노래를 부른다. 사진은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협동농장에서 모내기하는 농장원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모습 Ⓒ연합뉴스

모내기철 북한의 대규모 농장에서는 기동예술선전대가 일꾼들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모내기 전투 노래 혹은 유행하는 노래를 부른다. 사진은 평양시 낙랑구역 정백협동농장에서 모내기하는 농장원들을 위해 노래 부르는 모습 Ⓒ연합뉴스

‘전당, 전군, 전민이 모내기전투에로!’, ‘모든 힘을 김매기전투에로!’ 5~6월 영농기에 북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구호다. 신문, 방송 TV와 같은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농촌 마을과 밭머리, 들판 여기저기에 널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1958년부터 50여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먹는 문제가 당적, 사회적, 제도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북한에서 제 손으로 밥술을 떠먹는 사람이라면 이 시기에는 누구라도 총동원이다. ‘부뚜막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북한의 표현처럼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투입되는 바쁜 모내기철에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동원 빠지려고 가지각색 핑계 쏟아져

모내기는 4월 말 혹은 5월 초부터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논에 직파하지 않고 한 달 전부터 우리의 비닐하우스에 해당하는 온실이라는 곳에서 곡종별 종자를 심어 키운다. 이것을 영양단지라 하는데, 기존 직파하던 것을 70년대 초부터 김일성의 주체농법이라고 실시하게 되었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북한의 쌀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함남 이남의 지역에서는 4월 말, 5월 초가 제철이며, 날씨가 찬 북쪽 지역에서는 5월 말 6월 초에 모내기를 비롯한 파종이 한창이다.

규정상 농촌 동원은 성인들과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중학교 5~6학년 학생들이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소학교 3~4학년생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 때 농촌지역 학생들은 대체로 자기 집 근처의 농장에서 일하지만, 5~6학년 학생들은 집을 떠나 다른 농장에 가기도 한다. 도시의 중학교 학생들은 몇 십리 혹은 몇 백리 떨어져 있는 농촌으로 간다. 내 자식 힘든 일시키고 싶지 않은 것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매한가지일터. 모든 학생들이 농촌 동원에 투입되어야 하지만 이 기간에는 유독 몸이 아파 수술한다는 학생, 부모의 장기출장으로 집을 지켜야 한다는 학생 등 가지각색의 핑계가 쏟아져 나온다. 이 많은 이유 중 유일하게 합법적인 것이 있으니 바로 예술소조이다. 학교마다 대체로 예술소조가 있는데 전국경연 준비를 핑계로 여기 학생은 대체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예술소조는 그야말로 있는 집 자식들이 대다수라는 것이 문제다.

어린아이까지 동원 … 아동 인권 유린 소지

새벽 4시면 확성기가 온 마을을 깨운다. 4시 반이면 얼추 작업준비를 마치고 논으로 나가 일을 시작한다. 모를 심기도 하고 사용할 모판 작업을 하며 하루 내내 진행된 작업은 밤 9시가 되어야 끝난다. 본디 규정에 따르면 중학생들의 연간 농촌 동원 기간은 20일, 대학생들은 40일이다. 그런데 해마다 당에서 봄철 모내기 총동원령이 떨어지면 농촌동원지휘부에서 각 학교마다 동원 인원수를 배당한다. 대체로 도 인민위원회 농촌동원지휘부에 등록된 고학년 학생 수를 기준으로 작업량이 결정되는데 인원수에 노동량을 곱하여 배당한다. 여기서 노동량이라는 것은 학생 한 명이 해야 하는 하루 과제량으로 중학생 기준 하루 30평이다. 동원 기간을 채웠건 못했건, 지휘부의 지시에 따르기 위해서는 어차피 보통 한 달 가량 집을 떠나 농촌에서 일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주어진 노동도 고되지만, 힘든 것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인분이다. 화학 비료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보통 1년에 두 차례 학교마다 인분을 걷는다. 추운 겨울에는 얼어 있는 인분을 걷고, 5~6월에는 체에 거른 마른 인분 10~20kg을 걷는다. 이맘때는 온 학교, 마을에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간혹 1인당 연 500kg을 제출하라고 하는데 먹는 것이 열악한 실정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양이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제출량을 맞추기 위해 인분을 훔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농촌 동원에서 가장 골치 아픈 일은 도시와 농촌 간의 문화적 차이다. 북한의 농촌 집들에는 아직 바퀴벌레, 빈대가 득실득실하고 목욕할 곳이 없어 머리와 몸에는 서캐와 이가 많이 있다. 도시의 집들에도 이런 것들이 있긴 하지만 농촌에는 유독 많다. 게다가 많은 아이들이 몇 십 명씩 몸도 씻지 못하고 한 달 정도 함께 생활하다보니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농촌 동원을 갈 때면 낡은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상식이다. 동원이 끝나면 집에 돌아와 바로 버릴 수 있는 속옷들도 함께 준비한다.

한편 북한은 남한과 달리 아직 농촌의 기계화가 덜되어 있다. 기계가 있다고 해도 기름이 부족하여 기계화가 정착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때문에 각 마을마다 아직 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농업의 근간인 소를 잡아먹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학생들은 농촌의 소중한 일손이다. 미성년자는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농사일에 동원되는 것은 북한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일이다. 하지만 학생들이 농촌에 모두 투입되는 것은 일종의 아동 인권 유린의 소지가 있다. 물론 북한에 있을 때는 이러한 의문을 갖지 못했다. 한국 땅에 있는 지금에야 일제시기 소년노동의 부당함을 배웠던 당시의 상황이 굉장히 모순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학생들을 어려서부터 노동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무장시켜야 한다는 당의 교육정책에 온전히 세뇌되었던 듯하다.

지금 이 시각도 초여름의 햇볕에 논과 밭에서 북한 학생들은 힘들게 일하고 있을 텐데, 남쪽 땅 자기 또래 친구들은 농촌 동원이라는 걸 모르고 지내는 현실을 알면 그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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