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5월 1일 0

박계리의 스케치北 | 백두 혈통 우상화의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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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18 | 백두 혈통 우상화의 신호탄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 Ⓒ연합뉴스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 Ⓒ연합뉴스

 무산지구 전투는 김일성이 1939년 5월 22일부터 23일까지 함경북도 무산군(지금의 양강도 대홍단군)에서 일본군과 벌였다는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북한은 1971년 5월 이곳에 높이 35m의 탑과 김일성의 사진을 새긴 부조 등으로 이뤄진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을 건립했었다. 그런데 2000년에 김정일이 현지지도를 통해 이 기념탑을 선군시대에 맞게 다시 만들 것을 요구하자 2002년 5월 23일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일에 맞춰 새롭게 증축되었다. 바로 이 점이 오늘 이 작품을 주목하는 이유다. 이 기념비미술의 구성과 형식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결국 선군시대를 표상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커다란 변화는 기념탑이 총대탑으로 변모되어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총부지 면적 1만1천㎡에 증축된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의 구성은 맨 앞에 김일성 동상이 설치되었고, 그 뒤의 총대탑, 오른쪽에 길이 35m, 높이 4.1m의 대형부주제군상, 왼쪽에는 길이 12m, 높이 4m의 혁명사적비가 놓이도록 구성되었다.

 선군시대의 기념비적 미술로 변모시키면서 가장 부각되는 조형은 역시 총대탑이다. 현재 북한에서 강성대국 건설의 근본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총대중시 사상에서도 드러나듯, 선군정치를 표상하는 핵심 이미지는 ‘총’이다. 특히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에서는 원래 있던 탑신의 윗부분에 총창을 형상화하여 결합한 것을 알 수 있다. 1971년에 세웠던 탑신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탑의 형식을 변형시키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변모된 탑의 높이를 무산지구 전투 승리일이라고 이야기하는 1939년 5월 23일에 맞춰 39.523m로 조성했다. 물론 건축 구조에 특정 날짜를 결합시키는 방식은 북한 미술계에서 흔히 쓰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 방식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 개조된 구성에서 눈에 띠는 점은 기본주제와 부주제의 결합방식에 있다. 부주제군상이 부조로 길에 늘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동상을 부주제군상들과 간격을 두면서 크게 형상화 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이 기념비미술을 보게 되면 김일성 동상과 총대탑만이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특히 동상은 앞이 탁 트이게 조성된 공원 안에 놓여짐으로써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동상 뒤의 부주제군상은 인물만으로 꽉 채운 것이 아니라 벌판, 수림 등 환경 묘사를 잘 활용해서 화면에 공간적 깊이를 조성함과 동시에 여백의 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글씨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서예적 형식과의 결합을 시도하여다는 점 또한 눈에 띤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러한 구성 방식은 ‘우리민족제일주의’의 부각과 더불어 고조된 전통 미술에 대한 관심이 조형적 형식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판단된다.

30여 년 만에 증축 … 선군시대 이미지 고스란히 담겨

 특히 최근 김정은 시대를 맞이하여 서술된 글에는 이 기념비미술에서 김일성 동상을 20대의 청년장군 모습으로 형상화해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김일성이 일본군을 무찌르며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나이가 실은 20대였음을 부각시켜냄으로써, 현재의 젊은 리더의 나이와 선군시대를 이끄는 리더의 이미지가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가 내포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혁명적 기념비라는 것은 수령의 기념비를 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미술계에서 기념비미술 성공의 핵심은 ‘수령의 혁명업적을 얼마나 폭넓고 깊이 있게 조형예술화 하였는가’에 달려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 기념비미술이 주목되는 것은 1971년 제작된 무산지구 전투 승리기념탑이 재건축되면서 탑이 표상하고자 하는 것이 김일성의 혁명업적이 아닌 백두산장군들의 혁명 업적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백두산 장군은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김일성의 아내이며 김정일의 어머니인 김정숙을 일컫는다. 새로 제작된 부주제군상 앞면에는 김일성 부대에서 함께 활동하였다고 전하는 김일성의 아내 김정숙의 당시 정치활동을 형상화한 부조들과 전투장면을 새긴 것이다. 또한 부주제군상 뒷면에는 김정일의 친필서한뿐만 아니라 무산지구 전투가 벌어졌던 당대의 상황과 더불어 이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함께 형상화함으로써 김정일 업적을 함께 기록하고 있다.

 이에 대해 북한 미술계는 항일운동 때부터 지금까지의 총대중시 사상, 선군 사상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작품을 철학성에 있어서도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기념비로 혁명적 기념비조각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은 작품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김일성만을, 또는 김정일만을 우상화시키는 작업보다는 백두 혈통이라는 이름 아래 ‘백두산 3대 장군’ 모두를 함께 우상화하는 작업이 보다 활성화되지 않을까 예측해보게 한다.
 
 
박계리 / 한국전통문화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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