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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31| “우는 척 하느라 죽을 맛” 2012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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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31|”우는 척 하느라 죽을 맛”

요즘 한반도가 김정일 사망이라는 메가톤급 이슈에 묻혀있다. 언론의 관심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다. 그렇다고 북한에 직접 가볼 수도 없는 기자들은 연일 탈북자단체들의 문을 두드리는 데 여념이 없다. 정부에서도 예측하지 못한 김정일의 사망을 북한의 발표가 있기 전에 확인한 것이 그나마 탈북자단체라는 사실에 그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그만큼 북한은 알기 어려운 곳이다. 게다가 폐쇄정치가 극에 달한 북한은 김일성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외국의 조문단은 받지 않기로 했다. 지금 언론은 북한매체의 보도만으로 북한 상황을 분석, 진단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북한주민들의 조문 모습에 대해서는 보이는 그대로 해석하고 있다.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얼핏 보면 김일성 사망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주민 표정, 김일성 때와 질적으로 달라

그러나 그 시절 북한에 살았던 탈북자들은 그것이 김일성 사망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고 있다. 김일성 사망 시에는 북한주민들이 진심으로 목 놓아 울었다. 김일성은 곧 ‘신(神)’이었고 신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때까지는 굶어죽는 사람도 없었다.

출신성분에 의해 핍박 받던 사람들이나 사회적 감각이 유난히 뛰어난 극소수 사람들을 제외하면 김일성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김일성의 권력을 이어갈 김정일에게 대를 이어 충성으로 따르겠다는 혈서를 쓴 사람도 많았고 추모행사 기간에는 자기 부모가 사망해도 장례식을 하지 않고 당일로 산에 가져다 묻었다. 그것이 신의 죽음에 대한 도리라고 여겼다.

당시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이 사망한 책임도 자신들에게서 찾았다. 김일성이 만수무강 하지 못하고 겨우 83살밖에 못 산 것은 인민들이 수령을 잘 모시지 못하고 뜻을 잘 받들지 못해서라고 여겼다. 당시 그런 모습을 두고 북한의 한 시인은 “사회를 깨끗이 정화시키고 가신 수령님의 마지막 길”이라고 표현했다. 마치 기독교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찬양하는 것과 비슷했다.

당시 내가 살던 고향에는 식량배급소에서 싸움을 잘해 소문난 여인이 있었다. 당시에도 식량이 부족해 배급 날짜가 밀리는 현상이 많았다. 그러므로 배급소에 들어오는 식량이 모자라 먼저 가서 타려고 줄서기 싸움이 잦았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가도 쌀이 얼마 남지 않은 낌새가 나면 밀기 시작했고 앞줄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여인을 누구도 당하지 못했다. 남편 없이 혼자 아이 4명을 키우고 있어 그 기(氣)가 장난이 아니었다. 배급소에만 나타나면 호랑이었다. 그가 배급을 못타는 날엔 배급소가 무너지든가 일이 날 것을 각오해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별명이 ‘왕드살’이었다.

그러던 그가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어진 양으로 돌변했다. 그가 다니던 직장 노동당 조직에 그가 쓴 글이 제출되었는데 거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저는 어버이 수령님께 불효막심한 딸입니다. 우리들을 먹이고 입히느라 한 평생을 고생하시는 수령님 생각은 하지 않고 제 살 궁리만 한 배급소 싸움대장 ‘왕드살’입니다. 내가 왜 그렇게 철이 없었을까, 죄스러워 못 견디겠습니다.”

그 후 여인은 배급소에서 남에게 자기 순서도 기꺼이 양보해주는 모범생이 되었다. 물론 석 달만에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김일성 사망 당시 주민 동향은 이러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주민들의 얼굴에 눈물 가물이 들었다. 그냥 울려고 애쓸 뿐이다. 몸부림치며 우는 것 같은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울어보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특히 엘리트 계층의 조문 모습이 가장 어색하다.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로 우는 사람들은 가장 소외받는 계층이다.

옷차림과 얼굴색을 보면 얼마나 고생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있다. 지옥 같은 생활에 대한 불만은 크지만 그 이유가 김정일의 지시를 잘 집행하지 않는 중간 간부들에게 있거나 외부의 위협과 봉쇄에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뿐이다.

“눈물 안 나와 손수건에 물 적셔 간다”
북한에 있는 지인들과 통화해 보았다. 사람들이 우는 척 하느라 죽을 맛이란다. 하루 세 번 이상 의무적으로 분향소에 가라기에 나오지 않는 눈물 때문에 손수건을 물에 적셔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입심 사나운 한 친구는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묻는 필자의 물음에 “어떻게 되긴? ‘똥싸개’가 죽었으니 ‘오줌싸개’가 다 해먹겠지.”란다.

김정일이 없으니 김정은이 다 해먹을 거라는 얘기다. 북한의 진짜 민심이 이렇다. 김일성 사망 때 진짜로 우는 사람이 9할이면 가짜로 우는 사람은 1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짜가 5할, 무심한 사람이 3할, 진짜로 우는 사람은 많아야 2할로 보인다.

김일성 사망 때처럼 애도기간이 몇 달 더 연장될까봐 걱정하는 눈치도 짙다. 당장 솥에 들어갈 쌀이 없는 사람들에겐 오래 울 시간도 없는 것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김정은의 행보가 앞으로 어떨지 지켜볼만한 일이다.

 

도명학/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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