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건 기질인가? 환경인가? 2012년 1월호
영화리뷰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건 기질인가? 환경인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연구방법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실험실의 존재 유무다. 원래 과학에서는 항상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결과 값을 확인할 수 있어야 ‘사실’로 인정받는다. 이것이 사회과학을 ‘과학’이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사회에는 항상 동일한 조건이 있을 수 없고 투입-산출의 결과도 항상 다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인간을 실험실에 넣고 조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욕이 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에 의해 인간의 심리에 대한 다소 ‘실험적인 실험’이 실제로 진행되었다. 1971년 스탠포드 대학의 심리학자 짐바르도는 평범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수감자와 교도관의 역할로 나눈 다음, 낯선 환경과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가를 실험했다. 이른바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Stanford Prison Experiment)’이다.

무엇이 수용소 간수를 악마로 만들었나?
실험은 예상과 다르게 참가자들의 역할 적응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면서 6일 만에 중단되었다. 참가자 전원이 중산층 이상의 평범한 대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첫날부터 마치 진짜 수감자와 교도관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가 이루어졌고 방법도 점점 악랄하게 변해갔다.
이 실험의 내용이 35년 만에 공개되었고 영화 <엑스페리먼트>로 재구성되었다. 첫 작품은 2001년 독일에서 제작되어 개봉했으나 큰 반향을 불러오지는 못했다. 이 후 2010년에 유명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프로듀서 출신인 ‘폴 쉐어링’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감옥과 죄수를 소재로 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익숙한 감옥영상과 긴장감이 영화 <엑스페리먼트>에 재현되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인간의 본성이 환경에 따라 다른 여러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 본성의 폭력성과 그 악마적 모습이 잘 연출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트래비스(애드리언 브로디)는 히피풍의 실업자다. 돈을 벌기 위해 우연히 발견한 모집광고를 보고 무작정 프로젝트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그 실험은 일반인으로 구성된 지원자들을 간수와 죄수그룹으로 나눈 다음 2주간 가상의 감옥 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모두들 실험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 만 실험 2일째 식당에서 발생한 사소한 다툼으로 간수그룹과 죄수그룹은 자신이 처한 가상환경을 조금씩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들은 실험 시작 전에 폭력 행위 등이 나타날 경우 빨간 등에 불이 들어오며 모든 실험이 중지되고 받기로 약속된 급여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사소한 폭력이 행사되고 있음에도 빨간 등이 들어오지 않자 폭력의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간수그룹인 배리스 집단은 서서히 죄수그룹에 대한 억압을 즐기기 시작한다. 괴롭힘의 방식도 점점 교활하게 변해간다.
하지만 실험 5일째, 첫 번째 살인이 발생하면서 가상의 실험은 점차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진다. 억압하려는 간수그룹과 생존하기 위한 죄수그룹 간의 목숨을 건 싸움으로 확대된다. 서로를 죽이기 위한 폭력이 난무하는 가운데 빨간 등의 불이 켜지며 실험이 종료된다.
이 실험의 자세한 내용은 <루시퍼 이펙트(악마효과), 2007>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도 국내에 소개되었다. 메시지는 누구나 처해진 환경에 따라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이라크 전쟁포로를 벗겨놓은 채 그 옆에 해맑게 웃으며 서 있던 작은 여군병사의 사진을. 이 사진의 유출로 당시 미군 포로수용소의 인권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었다.
결국 이 영화의 소재인 ‘스텐포드 교도소 실험’은 ‘악한 사람은 그 개인적 기질에 원인이 있다’는 일반 사회통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본연의 성품과는 달리 바뀐 환경 하에서 순식간에 악마로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저자인 짐바르도는 그것을 ‘환경의 힘’으로 표현한다. 개인의 기질도 ‘환경에 힘’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기질, 환경에 의해 얼마든지 변해
미군 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학대 군인이나 뉘른베르크재판에서 유대인 대량학살을 자행한 나치전범의 진술을 종합해 보면 그저 다들 그렇게 했고 나도 따라서 그렇게 했을 뿐이란 말을 반복한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지배-피지배의 역할분담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배욕의 원초적 측면을 보여준 것일 수 있다.
영화 <엑스페리먼트>속에서 악마적 모습을 보인 간부그룹의 리더 배리스의 모습에서도 그것이 발견된다. 순박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힘없는 평범한 가장이 지배자인 간수의 위치에 올라서자 서서히 엄격한 독재자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룰에서 벗어나면 간수의 지위가 박탈되기 때문에 점점 심하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는 가해자들의 진술. 반면 수용소 출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악마’로 비쳐진 간수들. 자, 이제 우리는 한 가지 고민에 빠진다. 수감자를 괴롭힌 간수를 벌해야 하는가? 간수를 악마로 만든 환경을 벌해야 하는가?
서유석/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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