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11 | 또 누굴 죽이나…? 2012년 1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11 | 또 누굴 죽이나…?
여행증명서 제도가 북한에 생긴 것은 1967년 9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서였다. 1968년 초부터 전국에서 발효됐는데 이때부터 공민증(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마음대로 전국 어디나 갈 수 있었던 시절은 끝이 났다. 여행증명서 제도는 불필요한 유동을 없애고 사람들을 한층 더 조직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증명서를 떼려면 해당 조직과 직장에 사유를 내야 하는데 그 사유가 타당성이 없으면 단박 거절당한다. 여행증 없이는 열차표도 사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움직인다 해도 국도 이곳저곳에 보안단속 초소가 있어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그 자리에서 체포당하고 경우에 따라 벌금을 내거나 노동교양소에 보내진다.
“또 죽이면 되지” … “다 써 먹었어”
여행증명서가 가장 빨리 나오는 경우는 본인 결혼식이나 친인척 사망이다. 사망 같은 경우는 접수만 시키면 시, 군 행정위원회 2부에서 당일로 증명서를 발급하는데 각 동, 리 위원회와 기관 기업소 기요실(기관문서를 관리하는 부서) 직원인 기요원이 읍 거리에 위치한 2부에 매일 해당 직원들의 증명서 발급과 관련해 출퇴근 하다시피 한다.
여행이나 개인 용무로 타지에 가려 할 때에는 직장인인 경우 일 년에 한 번 받는 휴가(보름)기간뿐이다. 이런 경우 증명서가 며칠 늦을 수도 있기 때문에 휴가 신청을 해 놓고도 계속 일하다가 여행증명서가 나와 손에 쥔 다음에야 정식 휴가에 들어간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일에 부딪히게 마련이다. 가령 젊은 사람인 경우엔 고향 처녀와 맞선을 본다던가, 외국에서 친척이 온다던가, 이러저러한 일로 직장을 이탈할 일이 많은데 이럴 때 직장의 승인을 받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는 것이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손 털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증명서를 발급 받을 구실을 찾는다. 가장 좋은 구실은 바로 ‘사망’이다. 처음엔 “삼촌이 죽었소.”하고 다음엔 “사촌형이 죽었소, 고모가 돌아갔소.” 이렇게 친척들부터 하나하나 들먹이다가 더 이상 족보에 거들만한 사람이 없으면 다음은 직계 가족이다. 형, 누나, 동생,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사망했다는 전보를 치게 만든다.
“뭐야, 할아버지가 둘이야?” … “뭘 그러세요”
전보만 있으면 인정이 되니까 증명서는 당일로 발급이 된다. 문제는 그 이후다. 꼭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도무지 증명서를 낼 구실이 없다. 앉아 한숨만 풀풀 쉬는데 옆에서 친구라는 녀석이 “뭘 그리 심중해서 그래, 또 죽이면 되지.” 한다. 그러면 “이젠 죽일만한 사람도 없어, 다 써 먹었거든.”, “자식 별걱정을, 2부 사람들 그걸 다 기억하고 있겠어? 취급하는 사람이 하루에도 몇 백 명이야, 문제는 기요원인데 잘 구워삶아 봐.”
하지만 2부 사람들도 만만치는 않다. “이 사람 저번에 할아버지 사망으로 증명서를 발급했는데. 뭐야, 할아버지가 둘이야?” 그런다고 물러 설 기요원이 아니다. “이러이러해서 저번 것은 오류였고 이번이 정말입니다. 아, 뭘 그러세요.”하고 살갑게 굴며 슬그머니 주머니에 무얼 넣어준다.
기관기업소에서 기요원은 대체로 학력 있고 예쁜 처녀를 선정하는데 석 달 정도면 남자인 담당2부 직원을 떡 주무르듯 한다. 능수능란한 처세술을 겸비하지 못한 기요원을 만나면 진짜 사망이라 하더라도 제때에 증명서를 발급 받지 못해 장례가 끝난 다음에야 기신기신 찾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금은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인해 규정 절차가 아예 무시당한지 오래다. 여행증명서 자체가 상품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여행지에 따라 그 값이 정해져 있는데 도에서 도로 옮겨가는 데는 얼마, 군과 군 사이는 그보다 싸고, 가장 비싼 것이 평양인데 그에 못지않게 높은 값을 부르는 곳이 바로 국경지역이다.
평양은 ‘장군님’ 신변과 관련해 지방 사람들은 출입 시 따로 승인 번호를 받아야 하고 국경은 통제구역이어서 증명서 없이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탈북기도로 몰릴 수 있기에 비싸지만 모두 증명서를 지참한다. 이제는 발급이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에 의해 그 발급이 선정된다.
설사 여행증명서 없이 길거리나 열차 같은 장소에서 단속자를 만났을 때 버젓이 증명서를 꺼내는 것처럼 5천원 지폐 한 장 내밀면 대다수 통과된다. 이제 북한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도 삶이 피폐해져 모든 것이 돈에 의해 흐지부지되니 말이다.
이지명/ 계간<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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