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2월 1일

영화리뷰| “전란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 몫” 2012년 2월호

영화리뷰|  “전란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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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국내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는 단연 〈최종병기 활(War of the Arrows, 2011)〉이다. 영화 〈신기전(2008)〉과 유사하게 고전적 무기를 소품으로 등장시켰는데 〈신기전〉이 관객동원에서 별 재미를 못 봤지만 〈최종병기 활〉은 74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 사극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소품인 ‘활’을 전면에 등장시켰고 활 대 활 결투를 긴장감 있게 풀어나갔다.

사실 그 동안 국내 사극 드라마에서 고주몽이나 이성계 등 ‘신궁’으로 알려진 인물들을 그려내는 과정에서조차 제대로 된 활극 영상을 구현해 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교과서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쏜다 하여 동이(東夷)라 불리지 않았던가?

영화 〈최종병기 활〉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활’의 액션을 제대로 보여줬다. 일본영화에 사무라이가 등장하여 검술을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우리 영화에서 ‘활’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게 끌렸다. 피 속에 흐르는 민족적 로망은 속일 수 없었나 보다.

동이(東夷) 민족적 로망 속일 수 없다?

솔직히 영화 <최종병기 활>의 제목을 보고 고개가 갸웃해졌다. 일본만화 <최종병기 그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본문화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들었다. 왜 이런 작명을 했을까? 하지만 제목이 ‘허접’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은 제법 뭉클하다. 우연히 들른 뒷골목 허름한 국밥집에서 진미를 맛보게 되었을 때의 기쁨이랄까.

또 하나, 이 영화는 나라(지도자)와 백성(국민)의 관계를 되씹어보게 만든다. 영화에서 임금이나 조정의 모습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저절로 유추될 뿐이다. 시작 장면에서 드러난 공권력의 무자비한 장면과 외부의 적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이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이것은 어쩌면 배반의 역사에 매몰된 피해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실정의 결과로 나온 전란의 책임과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 몫이었다. 실정에 대해 책임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때는 1636년 병자호란 직전. 인조반정을 통해 광해군이 폐위되고 조정 관료들 사이에서 피 갈음이 한창이다. 관군들이 들이닥치고 ‘역적’이라는 이름으로 한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한다.

그 난리 중에 어린 남매가 빠져나와 변방에 있는 부친의 친구 집으로 도망간다. 그곳에서 오빠인 남이(박해일)는 여동생 자인(문채원)을 데리고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한량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곧 병자호란이 시작된다.

병자호란은 당시 조선 지도층의 무능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조반정 이전까지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보여준 실리외교는 당시 조선의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의 공신들은 성리학적 ‘의리’의 관점에서 명나라를 배신하고 청나라와 손잡을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 국제정치적 ‘의리’는 대국에 대한 사대적 개념에서는 통용되었으나 백성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던 반쪽짜리 ‘의리’였다.

평소 한량으로 술에 취해 살던 남이는 깊숙이 간직해 오던 아버지의 유품인 ‘활’을 꺼내들고 여동생 자인을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든다. 활에는 ‘전추태산(前推泰山), 발여호미(發如虎尾)’가 새겨져 있다. 국궁의 ‘집궁 8원칙(執弓八原則)’에서 따온 글귀다. 앞 손은 태산을 밀듯 하고 시위를 당기는 손은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하라는 말씀이다.

청의 명장 쥬신타(류승용)와의 마지막 대결장면에서 남이의 피가 이 명문(銘文)에 뚝뚝 떨어진다.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나 쥬신타의 목을 꿰뚫었다. 쥬신타는 자신의 패배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남이를 쳐다보며 숨을 거두고 남은 세 사람은 압록강을 건너 고향땅을 향한다. 동시에 올라오는 엔딩멘트.

태산을 밀듯 …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나라는 포로 송환에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소수만이 알아서 도망쳤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울컥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확인결과 당시 조정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청나라에 송환의 대가로 은전을 지불하고 일부 백성들을 데려왔다.

정작 흥분해야 할 부분은 환향녀(還鄕女)라는, 속칭 ‘화냥년’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당시 사회의 분위기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끌려갔음에도 돌아온 사람에 대해 관용적이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 건강한 사회라면 실정한 조정에 공분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이렇듯 영화 〈최종병기 활〉은 활 대 활 결투의 재미를 안겨주는 동시에 제법 무거운 주제도 던져주고 있다. 조선 최고의 궁사임에도 이름 없는 한량으로 살았을 역적의 자식 남이. 이 시대에도 어디든 자질을 갖추고 있으나 사회적 편견이나 구조적 벽에 막혀 술로 세월을 달래는 제2, 제3의 남이는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서유석/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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