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2월 1일

박계리의 스케치北 | “사실주의 기법, 왜 서구에서 찾아!” 201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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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리의 스케치北 2

사실주의 기법、 왜 서구에서 찾아 조선화가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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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춤>, 종이에 수묵담채, 171×86cm, 1957

<수향산방(樹鄕山房)>은 김용준이 자신의 친구이자 후배인 화가 김환기(1913~1974)와 그의 부인을 그린 작품이다. 1944년 김용준은 자신이 10년 동안 살던 집을 후배인 화가 김환기 부부에게 넘겼다.

사진으로 풍경을 찍은 것처럼 구도를 잡는 서구 르네상스 그림들에서 흔히 보이는 선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대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전통적인 시선인 부감법을 사용하고 있다.

화면 안에 그려져 있는 나무, 기둥, 지붕들이 만지면 잡힐 것 같은 덩어리감을 표현하지 않고, 윤곽선을 중심으로 간략하고 담백하게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당과 나무, 괴석과 가옥의 사실감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키가 커서 학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환기와 이에 비해 작은 몸짓을 지닌 신여성 김향안의 특징 또한 담백하게 포착되어 있다. 김용준이 월북하기 전인 1944년에 서울에서 작업한 작품이다.

이후 김용준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다 월북하여 북한 최고의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교의 교수가 된다. 흔히 북한 최고의 대학은 김일성대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대학에는 미술대학이 없다.

북한의 초기 문예정책의 이론적 바탕은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창작방법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다. 이는 김일성이 미술가들에게 말한 담화문인 ‘우리의 미술을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미술로 발전시키자’로 집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김일성의 교시는, 스탈린이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이미 제기한 바 있었다. 문제는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미술을 만들자는 테제 자체에 대한 토론이 아니라, 이 테제를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야기되었다.

먼저 이 토대 위에서 구체적으로 자신의 전통 중 무엇을 계승하여 민족적 형식으로 삼을 것인가가 문제였다. 북한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수년에 걸쳐 미술계 내부의 치열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1단계 반사대주의이론 투쟁단계와 2단계 반복고주의이론 투쟁단계를 거치면서 1960년대 이후 정형화된 김일성주의 미술론의 양식적 특성이 완성된다. 이러한 ‘반사대주의 미술’ 논쟁의 핵심 당사자는 김용준과 이여성이었다. 북한의 본격적인 조선화 이론의 출발점이 김용준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사진 찍은 듯한 화면만 사실주의? 아니다!

김용준은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0년 월북하여 당시 평양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여성은 여운형의 오른팔로 활동하다 1948년경 월북하여 1957년 8월에는 김일성대학 역사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었다.

‘사실주의 전통은 우리 전통미술 안에서도 충분히 있어 왔다.’는 김용준의 주장과는 달리 이여성은, ‘서구의 사실주의 기법들을 참고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쟁에서 결국 김용준은 이여성을 민족허무주의와 사대종파주의자로 비판하면서 1차 논쟁에서 승리한다. 1960년에 이여성에게 가해진 비판의 요지는 역사의 왜곡과 사실주의 전통의 왜곡, 종파적 사상의 전파, 세 가지로 지적되었다.

쉽게 말하면 사진기로 ‘방금 찍은 것 같은’ 화면만이 사실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교실 안을 그릴 때 사진기처럼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은, 사진을 찍는 내 앞의 사람은 크게 진하게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은 작게 흐리게 그린다.

그러나 실은 저 뒤에 작게 그린 사람을 앞으로 불러서 맨 앞에 크게 그린 사람과 키를 대보면, 뒤에 앉았던 친구가 실제로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의 눈을 기준으로 하여 무조건 찍는 사람의 눈에 작게 보이면 작게 그리고, 크게 보이면 크게 그리는 것이 우리가 익숙한 사진기 속 화면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진을 찍는(그림을 그리는) 사람 위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일 뿐인 것은 아닐까? 실질적인 대상의 리얼리티를 무시하는 이런 그림만이 사실적인 그림일까? 무엇을 표현하는 것이 사실주의인가? 어떠한 형식이 대상의 리얼리티를 정확하게 화면 위에 옮겨내는 방법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은 사실주의 논쟁에서 핵심 의제일 수밖에 없다.

첫 논쟁에서 김용준이 이여성에 승리하면서, 전통회화에서 주체를 확립해야 할 당위와 근거는 확보하였다. <춤>은 이 시기 김용준의 대표작으로, 한삼자락의 윤곽선 강조로 도드라진 필선의 생동하는 기운과, 한 번의 붓질들로 형상화한 배경의 악기 표현에서 먹의 깊은 맛을 효과적으로 그려낸 역작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전통회화의 전통 속에서 현대조선화를 이룩해내자는 테제만이 합의된 상태이고, 아직 다양한 전통회화 양식 중 어디에 정통성을 부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박계리 이화여대박물관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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