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식량학자, 왜 영양실조로 죽었을까? 2012년 3월호
북리뷰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바빌로프>, 피터 프링글 지음
식량학자, 왜 영양실조로 죽었을까?
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영양실조로 사망’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바빌로프(1887~1943)는 기근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자 5대륙을 탐사한 소련 최고의 유전학자이자 육종학자다. 그는 과학에 대한 지론이 일치했던 레닌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당대 획기적인 국제종자은행을 건설해나갔다.
하지만 레닌과 달리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성과를 원했던 스탈린 치하에서는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감옥에서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바빌로프>는 학문적 신념과 정치적 후원의 조합에 따라 연구자의 운명이 얼마나 아이러니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사실 바빌로프의 운명은 리센코라는 젊은이와 뒤바뀐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는 획득형질이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보는 ‘라마르크학파’와 유전자가 변하지 않고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된다는 ‘멘델학파’가 논쟁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라마르크적 획득형질을 신봉하는 영농기술자 리센코의 육종실험이 성공했다. 스탈린은 지금 당장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회주의 농업을 지향했기 때문에 상아탑 속 학자들을 비난하며 리센코를 띄우기 시작했다. 리센코는 당의 공식적인 찬사를 받으며 ‘열성노동자’이자 ‘초고속 승진자’로 자리매김해 갔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1950년대 월북 과학자 리승기 박사가 김일성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비날론을 공업화한 것이다. 리승기의 비날론 연구욕은 ‘아편쟁이에게 아편’ 같다고 스스로 회고할 정도였다.
하지만 식민치하 일본은 물론 해방 이후 남한에서도 비날론을 공업화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한편 북한에서는 중·소 분쟁으로 인한 자립경제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조선인 개발자(인종)’, ‘무명옷 전통(인민)’, ‘원료의 자립성(자연)’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들어가면서 비날론 공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비날론이 ‘주체섬유’로 불리면서 리승기가 ‘노력영웅’이 된 것은 물론이다. 학문적 신념과 정치적 후원의 조합이 과학업적과 연구자의 운명을 좌우한 것이다.
<바빌로프>는 바빌로프의 개인적인 삶, 과학자로서의 연구 활동, 학문적 대결과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갈등을 조명했다. 기존의 과학역사서들이 리센코의 사변적 주장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바빌로프의 과학업적과 탐사여행, 개인역사까지 다루고 있다.
멘델의 유전법칙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과 정치적 승패, 18여 년간 180개 지역에 이르는 종자 찾기 여행, 성장과정과 결혼생활, 가족관계 등 한 남자의 생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특히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 소설적 작문을 통하여 지난한 탐험여행과 생존을 위해 씨름하는 개인을 재구성 해냈다. 유전학이나 육종학, 러시아 역사나 사회주의 과학사에 관심 있는 독자들은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물론 낯선 배경과 용어가 나올 때마다 주의를 환기시켜야 하겠지만 지평을 넓힌다는 점에서 기꺼운 수고가 될 것이다.
윤인주/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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