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3월 1일 0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파도소리만 나지, 바다의 노래 들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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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33

“파도소리만 나지, 바다의 노래 들리지 않아”

 

남쪽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TV에서 그림 한 편 때문에 떠들썩하는 것을 보았다. 무슨 그림 가격이 수십억이나 되는데 어느 재벌가에서 불법 소지했다느니, 그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됐다느니 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이해도 가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그렇게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림의 제목이 <행복한 눈물>이었다. 그러나 정작 TV에 소개되는 그림을 보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눈에는 그림이 너무도 한심했다. 갓 그림을 배우는 유치원생이 그려도 그보다는 더 잘 그리겠는데 그런 것이 명작이라고 엄청난 가격에 거래된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나와 한 동네에서 온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북에서 재능 있는 화가였다. 미술가들은 그림 보는 눈이 좀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에게 <행복한 눈물>을 본 소감을 물어 보았다. 그 친구는 “나도 모르겠어. 그것도 그림이야? 내가 술에 취해 발가락에 붓을 끼워 그려도 그보다는 더 잘 그리겠다.”고 대답했다.

“그것도 그림이야?”

그는 북에서 공부할 때 “자본주의 나라에 추상파 미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임종이 가까운 부르주아 계급의 불안과 변태적 취향, 기형화된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근로대중의 문화적 수요와 모순된 반동적 미술 조류”라고 배웠다고 했다. 그리고 <행복한 눈물>이 추상파 미술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그림을 거액을 주고 사는 사람들은 더 이해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그는 북한을 떠날 때부터 남한에 가서 그림으로 성공할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 처음부터 찬 서리를 맞은 심정이었다. 그는 여러 그림 전시회들에도 드나들었고 미술을 가르치는 대학교들에도 가보았다. 나도 몇 번 함께 다녔다. 하지만 간 곳마다 실망이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해도 감상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좋은 그림 앞에 서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속의 주인공이 되어 명상에 잠길 때가 많다. 그런데 남한에 와서부터 그림을 감상하는 취미가 사라진 것 같다. 남한 그림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고 감동되지도 않았다. 자세히 보노라면 “두 손의 크기가 왜 다르지? 발이 왜 장딴지보다 길까? 얼룩무늬 속에 무슨 도깨비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는 생각 뿐, 싱겁기 짝이 없었다.

할 일 없는 사람이나 갈 곳이 그림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누가 그림 전시회에 가자면 가기 싫다. 가봐야 퀴즈 같고 도깨비 그림자 같은 그림을 이해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남한에서 나서 자란 사람들은 어떨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결과는 의외였다. 탈북자들만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남한에서만 살아온 사람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해하는 사람보다 이해 못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이상하다고 불편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려니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림을 왜 그리며, 그런 그림이 좋다고 수십억씩 돈을 퍼붓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감추었다가 경을 치르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림이 전문가들이나 아마추어들, 그리고 고액의 그림을 치부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가 싶다.

명작을 가르는 기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좋게 느껴지는 그림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그림이 오히려 더 명작이다. 그래도 그림에 대해 약간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전공은 아니지만 미술에 조예가 있는 교수님 한 분에게 부탁했다. 북한의 그림과 남한의 그림에 대해 비교하며 설명을 잘 해주었다. 그러나 들을 때뿐이었다. 처음 듣는 말이 많아 어림짐작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북한의 그림은 사진이나 다름없이 현실을 복사해내는 그림이라며 그런 그림을 남한에서는 ‘이발소 그림’ 정도로 부른다고 했다. ‘사진이 있는데 왜 그런 그림을 그리겠는가’라는 것인데, 발전한 현 시대에 와서 뒤떨어진 그림이라는 얘기였다.

남과 북 상반된 ‘이발소 그림’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북에는 사진기술이 없어 그런 그림을 그린단 말인가? 북한의 사진작가들도 지금은 다 디지털 기기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사진은 사진대로 ‘조선사진가동맹’ 주최로 수시로 작품공모를 한다. 북한의 그림은 얼핏 보면 사진 모방이고 잘 그려봐야 ‘이발소 그림’이겠지만 북한에도 이발소에 붙이는 그림은 따로 있다. 북한 그림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다. 그러면서도 한편의 그림에 부피 두꺼운 장편소설이 주는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압축되기도 한다.

인물화는 그만두고라도 바다 풍경을 그린 그림만 비교해 봐도 남북의 것이 다르다. 붓질을 한 수법은 비슷한데 북한 것은 ‘바다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남한 그림은 그냥 ‘파도소리’만 내는 것 같다. 북한에선 ‘파도소리’만 들리는 그림이 ‘이발소 그림’이다. 인간의 손으로 바다가 노래를 부르게 하는 재주가 더 좋은지, 아니면 파도 소리만 나게 하는 재주가 더 좋은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장차 국토가 통일되더라도 남북의 미술 통일이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도명학/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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