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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전쟁·평화 | 동아시아 질서변화…폭력·비평화요소 제거 기회 삼자 2012년 3월호

인간·전쟁·평화 2

동아시아 질서변화…폭력·비평화요소 제거 기회 삼자

 

평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전쟁의 원인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따라서 다양한 국제분쟁 이론들은 인간, 사회, 국가, 국제체계 등의 수준을 분석단위로 전쟁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노력해왔다.

이들 중 국제체계의 성격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국가의 성격이 국제분쟁의 중요한 원인이기는 하지만,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상태만큼 개인과 국가의 행위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상태가 어떻게 전쟁의 원인으로서 작용하게 되는가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현실주의자들이 말하는 국제체계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는 주권국가와 주권국가들로 구성된 기구이다. 물론 다국적기업, 초국적 이익집단과 영향력이 있는 개인 등과 같은 비국가적 행위자들도 있다. 이러한 주요 행위자들 간의 상호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국제법적 규범을 형성할 수 있는 규칙적인 행위패턴을 형성한다.

그리고 국제체계는 외부환경과 구별하는 경계를 지니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체계는 유럽의 강대국 정치체계이며 비유럽 세계를 외부환경으로 구분했었으나, 이러한 구분은 국제체계가 비유럽 세계를 포함하는 현대에 와서는 이론적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독일 모험주의 부채질했던 영·프·러

국제체계는 다양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국제체계 구조의 가장 근원적인 특성은 무정부적 상태라고 표현되는, 명령을 내리고 집행할 수 있는 권위적 정치조직의 부재이다. 즉 국제체계의 무정부 상태는 질서는 있으되 명령을 내리는 사람 또는 조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국제체계에는 어느 정도의 계층과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국가를 비롯한 구성단위들의 군사적, 경제적 능력의 차이는 국제체계에서 주요 행위자들의 정치적·경제적 지위를 대변해주며, 이러한 힘의 분포에 따라 단극·양극·다극체제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국제체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국제체계의 무정부적 특징은 강대국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상대적 힘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개별국가의 독자적인 군사력과 경제력 자체보다는 다른 경쟁국과의 비교에 따른 상대적 지위가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각 국가들은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들을 불신하게 되고, 상호협력보다는 갈등을 더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 국가들의 상호경쟁과 경계의 심화과정 속에서 맞이하게 된 비극적인 전쟁이다. 독일의 반복적인 공격과 체코와 폴란드 병합에도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이를 자국의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른 국가들에게 방어의 의무를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독일의 군사주의에 대응할 독자적인 능력의 부재와 국가들 간의 불신과 상호협력의 부재는 독일의 모험주의를 더욱 부채질하였다고 볼 수 있다. 탈냉전 후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 이란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등도 지역에서의 힘의 우위를 선점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냉전시기에는 무정부적 국제질서가 오히려 세계전쟁 등과 같은 대규모 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Long Peace’라고 대변되는 이 기간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가 형성되었으며, 유럽에서 동서대립의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이 기간에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 1974년 사이프러스에서의 그리스와 터키의 충돌은 있었지만, 이 당시 많은 분석들은 소련이 서방국가들을 공격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발표하였다.

미·소의 핵무기는 상대방에 대한 직접적 위협을 가하는 것에 대한 비용을 증가시켰으며, 특히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출현은 선제공격에 대한 2차 핵보복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핵억지에 의한 평화가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탈냉전 이후 무정부 상태의 국제질서가 어떻게 재편되어 왔는가에 대해 분명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견해에 따라서 미국의 군사력과 소프트파워에 의한 단극체제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양극체제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특징은 단일한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자로서의 국가라는 개념이 더 이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라 하겠다. 인종 간 이해관계의 충돌, 자원을 둘러싼 다국적 기업과 국가 간 이해관계의 충돌, 국제기구와 국가 간의 대립 등 무정부적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들이 변하고 있으며, 충돌하는 이해관계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것에서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변해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냉전 이후 내전의 빈번한 발생과 국제테러리즘의 확산, 국제경제 위기 등을 국제사회의 무정부적 특성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갈등의 원인과 성격, 갈등의 주체에 대한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분단구조, 폭력과 억압수단으로 사용돼

한반도에서도 열강들의 패권추구에 의한 전쟁을 경험하기도 하였으며,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소련의 견제 속에서 대규모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Long Peace’를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전쟁, 한국전쟁 등은 각국이 힘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무정부적 국제질서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안정적 지역질서는 힘의 균형이 변화하는 시기에 발생하였다.

현재 중국의 부상과 미국과 러시아의 아시아로의 회귀 선언, 북한의 체제변화, 그리고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등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질서 변화의 중요한 단면들이다. 따라서 비극적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지역질서의 변화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신중한 외교와 대처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지난 60여 년간 고착된 남북분단 상태는 무력충돌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평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지만, 분단구조는 국내정치만이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폭력과 억압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현재의 동아시아 질서변화를 한반도에서 다층적 폭력과 비평화의 요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게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송영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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