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9월 1일 0

윗동네 리얼 스토리 | 시장님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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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 리얼 스토리 31 | 시장님 납시오~
 
 
 서울에 있는 ‘이북5도위원회’와 같은 기관이 북한에도 있다. 서울시장을 비롯해 각 지역 도지사, 군수, 심지어 면장까지 빠짐없이 임명되어 있는데, 한때 그리 임명된 사람들의 자긍심이 대단했다. 식량기근과 함께 지금에 와서 정부의 무관심으로 모든 게 유명무실해졌지만 임명된 일부 사람들의 가슴 속 자긍심은 지금도 여실히 살아있다.

 예전에 살던 도시에 박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대전 출신으로 6·25 때 의용군으로 북에 들어 온 사람이다. 1970년대에 이미 북한 정부로부터 대전시장의 직책을 하사 받았고 그로 인해 제강소 사무원으로 근무했지만 이 사람은 늘 행동이나 언행에서 높은 간부, 즉 대전시장의 체모를 유지하려 각별한 주의를 돌렸다.

“어험~ 나 대전시장이야!”

 술좌석에도 약속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근엄한 표정으로 출석했고 현직보다는 대전시장이라는 직함으로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북한에서는 무슨 모임이 있으면 간부들은 늘 마지막 즈음에 ‘컹컹’ 기침을 하며 등장한다. 그래야 위신이 서는 것으로 안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것은 경망한 아래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인식이 박혔기 때문이다.

 박 씨는 사람 만날 때면 말끝마다 자기가 대전시장임을 강조했고, 그래서 한 때는 일부 사람들의 존경과 선호를 받기도 했다. 이런 박 씨에게 시련이 찾아 온 것은 북한이 각종 공급을 끊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움직이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때건만 이 사람은 대전시장의 체모를 지키느라 퇴직을 했어도 그냥 집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당 정책 학습만 한다.

 그러다 보니 집안 꼴은 말이 아니었고 본인도 더덕더덕 기운 옷을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직함이 사람을 내세워 줄 때는 이미 지나갔다는 소리다. 어느 집에서 무얼 먹고 어떤 옷을 입는가에 따라 사람 품격도 결정될 만큼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박 씨는 대전시장이라는 직함만 있으면 옛날 양반쯤 되는 것 같이 생각되었는지 가난기가 찰찰 흐르는 외모를 갖고도 폼만 잡았다.

 그래서 박 씨가 거리에 나서면 일부 익살스러운 사람들이 정면으로 마주오며 “시장님 납셨습니까?” 하고 비아냥조로 얼러준다. 그럴 때마다 박 씨는 환한 미소를 얼굴에 담고 ‘어험, 어험’ 건기침을 떼며 점잖게 악수를 청한다. 걷는 것도 틀림없이 옛 고을 원님의 팔자걸음이다. 그가 지나간 다음 깍듯이 인사를 올린 이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는다. 빈정거림도 거침없다.

 “진짜 시장 같네.”, “착각이 도를 넘으면 다 저렇게 바보가 되는가?”, “주제도 모르고… 참 가만, 저 영감이 진짜 통일되면 대전시장에 부임될까?”, “야 이놈아, 조금 있으면 묘지 신세 질 텐데 시장은 무슨 얼어 죽을, 그리고 남조선이 얼마나 발전했다고 저 놈의 ‘죽그릇’ 인생이 시장 노릇 한다는 거야!”, “정말 박 영감이 시장이 된다면 대전 사람들 어떻게 생각할까? 환영할까? 아님 우리처럼 빈정거릴까?”
 
 이러한 참으로 듣기 딱한 뒷소리가 이어진다. 그래도 박 씨는 한 모양 한 본새다. 옛날에 양반은 배고파도 배고프단 소릴 말고, 비가 와도 뛰지 말며, 더워도 갓을 벗지 말아야 한다는 체면위주에서 한 치도 벗어날 줄 모른다.

“범은 굶어 죽을지언정 풀은 안 먹는다 했거늘”

 박 씨는 물론 그 자손들도 밖에만 나가면 그렇게 누더기 시장, 강영실(강한영양실조) 시장, 헝겊막대기 시장 집 아들이란 놀림을 듣는다. 북한 말로 헝겊막대기란 말은 속없는 빈 허수아비를 가리킨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건 아내다. 이젠 좀 자중하고 또래 영감들처럼 담배 묶음이라도 장에 나가 팔라고 아내가 말하면 박 씨는 두 눈 감고 염불 외듯 중얼거린다. “어허, 괘씸할지고! 범은 굶어 죽을지언정 풀은 먹지 않는다 했거늘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인고,”

 아무튼 그 사람은 그렇게 부여된 대전시장 체면을 끝까지 지켰다. 그러다가 2003년 여름 그렇게 갈망하던 대전시장에 부임도 못해보고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을 때 박 씨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분명한 건 저승에서라도 고향인 대전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지명 /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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