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중계 | 북한 인권과 민주 그리고 지하교회 2013년 9월호
세미나중계 | 북한 인권과 민주 그리고 지하교회
평화문제연구소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은 지난 8월 29일 세종호텔 세종홀에서 ‘독일 통일의 2가지 기폭제 – 독일식 2+4 조약 그리고 인권과 민주센터, 지하교회’를 대주제로 2013 한·독워크숍을 개최했다. 먼저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의 개회사에 이어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서울대표의 인사말과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인내심, 북한 내부 변화, 무력불사용 환경 필요”
첫 번째 발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서 독일식 2+4 조약은 가능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독일 통일 당시 독일연방 내무부 차관으로 통일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에두아르트 린트너 전 차관이 맡았다. 다음은 에두아르트 전 차관의 발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2+4 조약’은 독일 통일 이전 당시의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 그리고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등 2차대전 4대 전승국들 간에 체결된 조약으로 공식 명칭은 ‘독일과 관련된 최종 처리에 관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정치적·법률적 측면에서 2차대전 이후 독일과 관련한 필수적인 평화규정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 전역에 전승국들의 발언권이 행사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본 조약은 오늘날 ‘외교의 걸작’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며, 2010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당시 협상과정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소련의 협조적인 태도가 돋보였는데 정치적 신뢰가 형성되는 데에 기여하였다.
독일은 인내심은 가지고 오랜 시간 동안 동·서독 간의 만남과 접촉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며, 상호방문과 만남의 기회를 확대해 나갔다. 이러한 방안은 한국에도 적절하게 활용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도적 지원을 바탕으로 경제, 사회, 문화 분야에서의 남북협력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 이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관계자들의 인내심과 북한 내부의 변화,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환경이 요구된다. 정치적 고려와 목표 달성을 위한 프로그램의 단계적 실행은 탄탄하고도 장기적인 안목의 정책이라 평가한다. 이에 2+4 조약은 독일 통일정책의 대미를 장식한 사건으로 외교 및 안보 정책의 결과들이 통일 한국을 위한 주요 참고로 작용할 수 있다.
두 번째 발표는 ‘교회, 동독 전환의 시발점이었나? – 북한을 위한 함의’를 주제로 구동독 정치범에 관한 개신교회위원회 위원장인 라이너 바그너 대표가 맡았다. 그는 15세 때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수감생활을 했으며, 현재 독일 공산당압제희생자연합회 대표로 북한인권, 지하교회 인권과 관련한 활동을 전개 중이다. 다음은 라이너 대표의 발제를 요약한 것이다.
구동독에서의 전환을 회고해보면 개신교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교회가 동독의 전환을 촉발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동독 공산당 독재의 종식을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교회의 주요 과제는 저항운동이 아니며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다. 기독교 신앙을 일깨우고 가꿔 나가는 것이 모든 시대에 있어서 교회가 행해야 하는 본분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러나 시기에 따라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지기도 한다.

① 주요 내빈들, 왼쪽부터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서울대표, 노재동 한국마사회 상임감사 ② 송영대 평화문제연구소 상임고문(전 통일부 차관)의 사회로 진행된 2013 한·독워크숍 ③ 1주제 발표를 한 에두아르트 린트너 전 독일연방 내무차관 ④ 2주제 발표를 한 라이너 바그너 독일 공산당압제희생자연합회 대표 ⑤ 한·독워크숍 전체회의 모습 Ⓒ연합뉴스
“동독 교회, 저항 위한 자유공간 제공”
기독교의 가르침은 자유를 희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독재 또는 무신론적 전제정치보다 기독교적 윤리에 부합한다. 기독교적 자유란 정치적 자유가 아닌 내면의 자유를 의미한다. 기독교신앙과 공산주의 이념은 서로 맞지 않는다. 맑스와 엥겔스는 저서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표현하였으며 레닌 또한 동일한 언급을 한 바 있다. 공산주의가 실현되면 종교는 고사(枯死)한다는 것이다.
1970년 무렵까지 동독의 대다수는 개신교도로 교회는 큰 영향력을 가졌다. 하지만 예배에 참석하거나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교회는 점차 영향력을 잃어갔다. 그 이유는 신도들의 신앙심 약화와 많은 교회 관계자들이 현실과 타협했던 점,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이념 주입 등 때문이었다. 이밖에 기독교도들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도 한 몫 했다. 교회는 일부 목사들을 통해 저항을 위한 자유로운 공간을 제공했다. 몇몇 목사들은 순교에 이르도록 저항하였으며, 교회가 주관하는 대규모 행사를 통해 국가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했다. 이러한 점에서 교회는 동독 전환에 이바지했다.
북한에는 완전히 국가에 예속된 교회조직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는 북한에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동유럽 국가들과 소련이 붕괴한 이후 국가에 예속된 교회들이 존재했던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북한에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소규모 단위로 지하에서 활동하는 신심 깊은 기독교인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가 북한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교회를 통한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고, 북한에서 탄압받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에두아르트 린트너 전 차관과 라이너 바그너 대표는 하루 전인 28일 통일부를 방문해 최근의 남북관계 현안인 개성공단·이산가족 실무회담과 북핵문제 등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리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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