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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어떤 경우에도 선군정책 약화되지 않아” 2013년 9월호

포커스 | 제11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

북, “어떤 경우에도 선군정책 약화되지 않아”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11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서 필자의 발표모습 Ⓒ연합뉴스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제11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에서 필자의 발표모습 Ⓒ연합뉴스

지난 8월 22~23일 국제고려학회가 중국 광저우에서 ‘제11차 코리아학 국제학술토론회’를 개최했다. 남북한을 비롯한 10여 개 국가에서 한국학·조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100여 명이 참가했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이 토론회에서 논문을 발표해왔는데 이번에는 북한 학자들이 9명밖에 참가하지 않아 조금 허전한 감이 있었다. 참가 목적 가운데 하나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녘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2일 오전 모든 참가자들이 모인 가운데 4명의 기조강연이 있었다. 국제고려학회장 도널드 베이커 브리티시콜럼비아대학교 역사학 교수, 중국지회장 서영빈 대외경제무역대학 문학 교수, 남한지회장 황상익 서울대학교 의학 교수, 북한지회장을 대신한 공명성 조선사회과학원 역사학 박사가 기조강연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보건의료 실태 식민지근대화론 허실 보여줘

이 가운데 ‘보건의료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조선민중들의 삶’을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와 실을 보여준 황상익 교수의 발표가 인상적이었다. 또 ‘거문고의 시원과 연혁’에 관해 발표한 공명성 박사는 30대부터 조선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실장을 맡았던 40대 학자로, 그와의 만남 자체가 반가웠다. 아마 우리나라 국호 연구로는 1인자일 듯한데, 필자가 5~6년 전 ‘조선’과 ‘한국’이라는 국호에 관한 글을 쓸 때 그의 논문을 몇 편 읽고 인용한 적이 있어서다.

22일 오후부터 분과별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정치학 분과 첫 회의엔 담당 발표나 사회가 없어 정치학 분과와 경제학 분과를 오가며 평양에서 온 학자들의 발표를 듣기도 했다. 북녘 발표자 9명은 모두 조선사회과학원 소속이었는데, 순수한 학자는 6~7명으로 보였다. 정치학 분과에서는 신광선 선생이 ‘선군정책 계승’에 관해 발표했는데, 학술논문이라기보다 흡사 <노동신문> 기사 같았다.

김일성이 군사 중시의 독창적 선군사상을 창시하고 혁명 군대를 창건한 데 이어, 김정일이 선군의 원리를 정식화하고 선군정치에 관한 사상 이론을 밝혀주었으며, 김정은이 정력적인 선군 영도로 인민군대를 무적필승의 최정예 강군으로 끊임없이 강화해나가고 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북녘 경제가 어렵기 때문에 이젠 선군보다 선경을 더 강조한다든지, 경제와 국방의 병진 노선에 따라 선군을 덜 강조하는 정책을 펼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에 “어떤 경우에도 선군정책이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남북의 학자들이 분과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의 학자들이 분과 회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아시아도 인권 협력 통해 공동체 만들자”

경제학 분과에서는 심승건 선생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에 관한 논문과 강철민 선생의 ‘새세기 산업혁명’에 관한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심 선생은 아쉽게도 불참했다. 그가 미리 보낸 글을 보면, 경제와 국방 병진의 핵심 내용은 핵무기를 정밀화하고 소형화함으로써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갖추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건설에 자금과 노력을 총집중하여 비약적 발전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강 선생의 발표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부터 경제난을 맞아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전략적 사업으로 채택한 것이 CNC(컴퓨터 수치제어) 공업화였는데 이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김정은이 2012년 내세운 ‘일심단결 + 불패군력 + 새세기 산업혁명 = 사회주의 강성국가’라는 등식은 정치사상 강국과 군사강국에 이어 경제강국만 건설하면 세계적 강국의 지위에 올라설 수 있다는 뜻이란다.

정치학 분과 둘째 회의에서는 미·중관계의 변화에 대한 필자의 발표와 동아시아 공동체에 관한 백태웅 하와이대학교 교수의 발표 등이 있었다. 백 교수는 1980년대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2000년대에 미국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변호사와 박사의 자격을 얻고 이젠 필자가 1990년대에 공부했던 하와이대학교 법학 교수로 변신했다. 그는 동아시아에서의 인권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는 논문을 발표했다.

23일 오전에 열린 정치학 분과 셋째 회의에서는 필자가 사회를 맡았다. 하와이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송창주 뉴질랜드 오클랜드대학교 교수가 한국인 이주민(Korean Diaspora)에 관한 정책에 대해 열정적으로 발표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치학 분과 회의는 23일 오전에 모두 끝나 오후엔 철학·종교 분과 회의에 들어갔다. 전하철 조선사회과학원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소장의 ‘동학의 인간평등 사상’에 관한 논문 발표를 듣기 위해서였다. 필자가 바로 9일 전 ‘동학혁명 또는 갑오농민전쟁이 남쪽에서는 전라(북)도 북녘에서는 황해(남)도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역사·문화적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지역 사이의 교류를 추진해보자’는 내용의 논문을 전주에서 발표했던 터라 몹시 반가웠다.

평양에서 출판된 역사책이나 철학책을 보면 갑오농민전쟁과 그 지도자 전봉준은 언제나 매우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동학은 1980년대까지 다소 부정적 평가를 받다가 1990년대부터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온 경향이 있다. 종교에 대한 북한의 인식 변화 때문일 텐데, 그 배경이나 이유에 관해 북한 학자의 의견을 직접 듣고 싶어 토론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끝난 뒤에도 그에게 집요하게 물었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우리는 23일 오후 분과 회의를 끝내고 모두 모여 일정을 마무리하고, 24일에는 광저우에 있는 황포군관학교 유적지 등을 돌아본 뒤 2년 뒤 오스트리아 빈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이재봉 / 원광대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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