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위대한 낭만주의자 2013년 9월호
영화리뷰 |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낭만주의자
주식수익 증가율 108%, 가계수익 평균 35% 증가… 이러한 꿈같은 경기 활황기가 있었다. 1922년의 미국 경기가 그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사회는 뭔가에 홀린 듯 폭발적인 경제 활황기를 맞이했었다. 하지만 1929년 월스트리트의 증권시장의 몰락을 시작으로 경제 대공황의 늪에 빠졌다. 1920년대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은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환경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의 시대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는 1920년대의 미국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기는 역설적으로 뛰어난 문학작품이 탄생한 ‘문학의 황금기’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윌리엄 포크너,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소설가들, 에즈라 파운드와 TS 엘리엇 같은 시인들, 그리고 유진 오닐 같은 극작가들의 활동으로 미국문학을 꽃피운 시기였다.
1920년대 美상류사회 민낯 꼬집어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원작이다. 랜덤 하우스는 20세기에 영어로 씌어 진 가장 위대한 소설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첫 번째로 꼽혔고 <위대한 개츠비>가 두 번째로 선정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미국사회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현대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이미 1974년에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로 제작되었다. 1974년작과 2013년작은 내용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1억3천만달러의 제작비, 2억원이 넘는 장신구, 명품 브룩스 브러더스와 프라다제 의상 등이 말해주듯 2013년에 제작된 <위대한 개츠비>는 당시 경제호황과 부유층들의 낭비와 사치, 환락 등을 사실감 있게 묘사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단적으로 말해 영상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다. 배역의 경우에도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필자는 아이돌 스타에서 완연한 ‘아저씨’ 배우로 변신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연기뿐 아니라 주인공인 개츠비의 약간은 어둡고 비밀스러우면서도 낭만적 이상을 추구하는 복합인물에 어울리는 페이스를 갖고 있다. 데이지역의 캐리 멀리건도 1974년의 미아 패로우보다 더 ‘사치스럽게’ 생겼다. 속칭 ‘된장녀’에 더 가까운 미모를 가졌다.
우리에게 ‘스파이더맨’으로 친숙한 토비 맥과이어는 개츠비의 이웃인 닉 캐러웨이로 나와 개츠비를 옆에서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을 독백으로 전달한다. 닉은 개츠비의 분신이고 개츠비는 작가 피츠제럴드의 아바타다. 잘 알려져 있듯이 원작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 인생의 축소판이다. 초년의 고생과 어렵게 얻은 명성과 부, 그리고 아내 젤더 세이어는 극중 데이지와 유사한 캐릭터다.
개츠비는 위대하지 않기에…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경제성장의 그늘에 공존하고 있던 미국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부패, 번쩍거리는 고급 승용차, 사치스런 파티, 환락과 쾌락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톰과 데이지는 그런 도덕적 혼란과 무질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반면 평민이었던 개츠비는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 밀주를 판매하고 훔친 채권을 불법으로 거래하거나 도박을 통하여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극중 개츠비는 대화중에 상대방을 ‘old sport’이라고 부른다. 사전적으로는 ‘자네’정도로 해석되지만 실제 이 용어는 약간 뒷골목 냄새가 나는 껄렁껄렁한 말투로 어감이 맞는 우리식 용어는 ‘형씨’쯤 된다. 개츠비의 평범하지 않은 삶을 은연중 보여준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는 이밖에도 수많은 은유가 삽입되어 있는데 관심있게 찾아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묘미다. 특히 극중 톰의 정부(情婦)가 차에 치여 죽는 그 길목에 큰 광고판에는 ‘에클버그의 눈’이 무심히 물욕에 찌든 도시 한복판을 바라보고 있는 설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위대한’이라는 형용사가 사용된 것에 대해 반어적이라는 견해가 많은데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실상 주인공인 개츠비는 옛 사랑을 그리며 잊지 못하는 한심한 범법자라는 측면에서 전혀 ‘위대’하지 않지만 혼탁한 물욕의 시대에 낭만적 이상주의를 끝까지 고집한다는 점에서는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물질주의자인 톰과 데이지 등보다 훨씬 인간다운 인물이다. 난세에 영웅을 기다리듯 물욕에 찌든 혼탁한 세상일수록 개츠비 같은 ‘위대한’ 낭만주의자의 존재가 더 그립지 않을까. 극중 닉이 말했듯이 말이다. “저 썩어빠진 인간들을 다 모아놓은 것보다 당신이 더 나아”.
서유석 /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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