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푸에블로호는 왜 전승기념관으로 갔나? 2013년 9월호
독자기고 | 푸에블로호는 왜 전승기념관으로 갔나?
지난 해 11월 말 대동강에서 사라졌던 푸에블로호가 새로 개관한 북한 전승기념관에서 공식적으로 다시 공개되었다. 북한이 주장하는 전승절 60주년에 맞춰서다. 지난 8월 7일에는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이 한밤중에 푸에블로호를 참관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올해 14번이나 기념관 공사현장을 현지지도 했다고 덧붙였다. 일국의 지도자로서 대단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푸에블로호를 전승기념관으로 옮긴 것일까? 그리고 김정은은 왜 푸에블로호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푸에블로호 사건이 북한의 대미인식을 변화시킨 중대한 사건이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외견상으로는 군함의 나포, 억류, 그리고 석방이라는 다소 간단해 보이는 사건이지만, 푸에블로호 사건은 북·미관계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푸에블로호, 미국에 대한 계속된 승리?
푸에블로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비록 협상의 목적이었겠지만,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정부 간 양자회담’을 29차례나 개최하였다. 또 영해 침범인정과 사과, 그리고 향후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문서도 북한에 건내주었다. 북한은 이 문서를 미국의 사죄문이라고 주장하며 정전협정에 이은 제2의 항복문서라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에 있어 푸에블로호 사건은 6·25전쟁에 이어 ‘계속된 승리’이자 대미 승리의 상징으로 간주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푸에블로호에 대한 북한의 ‘승리의 기억’은 20여 년이 지나 사건을 다시 불러내었다. 그 주역은 김정일이었다. 김정일은 1992년 <대결>이라는 제목의 반미영화를 통해 푸에블로호를 불러왔다. 그리고 1995년에는 원산항에서 푸에블로호를 전 세계에 공개하였다. 1998년에는 원산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1866년 미국 제너럴셔먼호가 격침되었다는 평양의 대동강으로 옮기기까지 하였다.
김정일은 왜 잊혀져가던 푸에블로호를 다시 불러온 것일까? 그것은 김정일이 북한의 새 지도자로 등장하는 1990년대 초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는 김일성의 사망, 소련 및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던 시기로 북한체제도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푸에블로호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푸에블로호가 ‘선물’로 포장되어 미국으로 돌아간다?
하비케이에 따르면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현존하는 질서를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것으로 납득시켜 순종과 동의를 얻으려 할 때, 설득의 수단으로 기억이 이용된다고 했다. 김정일에게 기억의 매개체로써 대미 승리의 상징인 푸에블로호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할 대단히 효과적인 소재였던 것이다. 푸에블로호를 통해 적과 친구를 명확히 구분 짓고, 인민들에게 반미의식을 고취시켜 내부 단결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이 푸에블로호를 전승기념관으로 옮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이 주장하는 전승 60주년을 빛내는 것이다. 북한은 작년 9월부터 전승기념관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대미 승리의 상징들을 모으고 있다고 하였다. 푸에블로호가 바로 전승 60주년에 걸맞는 상징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둘째, 북한 인민을 대상으로 반미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점이다. 푸에블로호를 통해 오늘날 북한에 닥친 어려움이 지도자의 문제라기보다 6·25전쟁이나 푸에블로호 사건 때와 같이 이른바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고 선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김정은의 주장처럼 전승기념관은 ‘반미교양의 거점’이 되는 것이다. 셋째, 푸에블로호를 뉴스거리로 부각시켜 전 세계, 특히 미국의 시선을 끌려고 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의 학습효과가 작동하고 있다. 즉 미국의 관심을 이끌어 내었을 때에는 어김없이 협상이 성사되고 대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미국은 푸에블로호 사건의 교훈을 잊지 말라”며 엄포를 놓지만 그것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그 속에는 미국도 푸에블로호를 조속히 반환받음으로써 ‘1968년의 악몽’을 잊고자 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실제로 미국 정치인들은 매년 푸에블로호 반환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고, 미 해군은 푸에블로호를 작전 중인 함정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가 러·일전쟁 당시 인천 앞바다에 침몰한 군함 바랴크호의 깃발을 찾아오기 위해 지금도 그렇게 애쓰고 있지 않는가? 이 점에서 푸에블로호는 핵실험 만큼이나 미국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유용한 물건이 아닐까?
이제 이 글의 질문에 답을 정리해 보자. 푸에블로호는 왜 전승기념관으로 갔는가? 그 해답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벤치마킹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1995년 원산항에서 푸에블로호를 공개했던 김정일처럼 2013년 김정은도 푸에블로호를 이용해 자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의 결정은 현재까지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 효과가 지속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푸에블로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의 북·미관계를 지켜봐야 할 듯하다. 물론 당분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북·미관계가 좋아진다면 푸에블로호는 ‘선물’로 포장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북·미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로써 푸에블로호에 관심을 가져보자.
이신재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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