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0월 1일 0

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 북한에도 왕따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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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교사의 생생이야기 10 | 북한에도 왕따가 있을까?
 
 
북한 청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평양거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청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평양거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는 왕따라는 질병이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사회 전반이 몸살을 앓는 것 같다. 오죽하면 왕따를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이 낯설지 않게 느껴질 정도이다. 어느 조직에나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들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현상이 사회적 병폐로까지 번진 것을 보며 치유가 가능할지 씁쓸함이 든다.

 북한에도 왕따가 있을까? 답변부터 하자면 ‘있다’이다. 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정도로 농도가 진하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는 왕따를 ‘몰려주기’, ‘모서리’ 등이라고 부른다.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필자가 있던 양강도에서는 한 곳으로 몰아간다는 뜻의 ‘몰려주기’라고 주로 불렀고, 최근에서는 ‘모서리’라는 용어를 더 사용하고 있다. 부르는 것이야 어떻든 한 쪽으로 혹은 구석진 곳에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끼리끼리 몰아간다는 의미이다. 물론 따돌림이 생기는 이유나 형태가 제각각인 것처럼 북한도 지역에 따라, 학교의 특성에 따라 변수가 많이 존재한다.

왕따? 아이들 사이의 문제일 뿐

 1970~80년대만 해도 ‘몰려주기’의 기본 형태는 불량학생들이 모범생들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북한의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패싸움이 하나의 남성성 과시 수단이자 추세였다 보니 이런 싸움에 끼지 않는 모범생 친구들이 주 타격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공부도 잘하면서 부모의 직위가 높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이 과격한 성격의 친구들과 패를 지어 어울리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전처럼 친구들을 때리는 것이 아닌, 숙제 대신하기, 가방 들어주기, 술·담배 심부름 시키기, 생활총화시간에 비판 못하기 등으로 괴롭히는 형태가 바뀌었다. 최근에는 경제적 사정으로 인한 신종 ‘몰려주기’도 생기고 있다. 즉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걷는 현금 혹은 현물을 제 때 내지 못해도 따돌림을 당하기 쉬운 것이다.

 교사로 재직 중일 때 일이다. 한 학생의 부모가 찾아와 아들의 학습장(필기 노트)이 없어진다며 몰려주기를 당하는 것 같다고 상담했다. 담임으로 이 일을 그냥 넘길 수 없어 아이들에게 이 문제를 이야기하고 학습장을 갖다 놓으면 용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학습장은 나타나지 않았고, 오히려 그 학부형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고자질했다며 아들의 교과서를 일부 찢었다고 했다. 다음날 의심이 가는 아이들을 일부 조사하고 모두의 앞에서 전했다. “선생님이 다 알고 있는데 기회를 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청년동맹에 제기하고 아버지의 직장 당위원회에 통보할 수 있다.” 아무리 삐딱한 일을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인가 보다. 충분한 전후사정을 통해 문제는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이러한 북한의 현상에 비해 남한의 왕따 문화를 처음 알았을 때, 아이들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했다.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때리고, 철저히 한 학생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물론 남과 북의 왕따는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사회적 문제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왕따, 오프라인에 한정 … 사회적 인식도 없어

 그 까닭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북한은 1학년 때 한번 학급이 정해지면 졸업할 때까지 함께 한 반이 돼야 한다. 그래서인지 괴롭히던 아이들도 자연스레 철이 들고 서로 풀어가는 것 같다. 또한 교사들도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하려 하지 않는다. 일을 확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 담임은 실력이 없는 교사로 평가되는 것이다. 자기 학급 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외부의 도움을 받는 능력이 부족하고 모자라는 교사라는 이미지로 낙인찍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이 학부모들 사이에도 확산된다면 교사에게 그 어떤 경제적 도움도 주지 않게 된다. 북한의 학교가 학부모의 경제적 재량에 큰 도움을 받는 구조임을 감안할 때, 학부모들의 입김이 대단히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돌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다르다. 그 학생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다. 현장의 교원들조차 학생의 내성적 성격, 낮은 성적, 조직생활에 참여 저조, 경제적 어려움 등을 원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더욱이 사회적으로 왕따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에 대해서는 아이들의 패거리문화, 끼리끼리의 문화에 대해서만 단속이 심할 뿐,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의 문제는 전혀 공론화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괴롭힘을 문제시하기보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패싸움, 한국 드라마 시청 등 외부 문물에 대한 호기심 같은 문제를 근절하는 것에 방점을 두기 때문이다. 이는 학창시절의 끼리끼리 문화가 방치되면 비사회주의를 조장하고 당과 수령을 반대하는 반혁명적 단체의 뿌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으로 휴대전화, 인터넷의 사용 여부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북한은 이제야 겨우 휴대전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그 값이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가지고 다닐 엄두도 못 낸다. 거기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사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처럼 SNS나 메신저 어플을 통해 아이들이 모이지 못한다.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공간이 오프라인에 한정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왕따의 모습도 우리와 다르게 표출되고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지도 않는 것 같다. 북한의 언론도 이를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북한의 언론은 당과 수령의 위대성과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며 대중을 교양하는 데에 사명감을 갖고 있어 이러한 행위가 언론에서 등장할 수 없으며 대중들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할 기회가 없다는 한계도 갖는다. 특히 학생 교양에서의 담론이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한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들은 극단적인 경우 전학을 가거나 가해 학생들이 학교를 관두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런 일이 거의 없다. 퇴학생이 없는 것은 북한식으로 생각해보면 공산주의 사상에 기초한 집단주의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이러한 사상에 기초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조직적으로 고쳐주려고 하지 문제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은 북한의 방식이 아닌 것이다.
 
 
정명호 / 전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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