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0월 1일

만나고 싶었어요 | “북한 내부소식 실시간으로 입수하고 있죠”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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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어요 |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북한 내부소식 실시간으로 입수하고 있죠”

ITV_201310_54Q. 그간의 소감?

A. NK지식인연대가 결성된 때로부터 5년이 훌쩍 지났네요. 지난 5년간 ‘먼저 온 통일인’, ‘미래의 통일역군’으로의 사명에 충실하여 민간 통일운동에 열심히 매진해 왔습니다.

제 생애 처음이지만 북한 출신 지식인들의 자립적 의지와 노력으로 사단법인을 조직해봤고요. 조직의 목표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와 능력을 모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봤죠.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실천적인 경험과 노하우들을 쌓게 되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밑천이고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Q. NK지식인연대와 함께하기 전까지?

A. 2003년에 북한을 탈출했어요. 몇 달 지나 2004년도 대한민국에 입국했죠. 북한에 있을 때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함흥공산대학에서 교수로 일했어요. 평양김책공업종합대학 컴퓨터공학부를 졸업하고 1984년 이후로 함흥컴퓨터기술대학에서 컴퓨터공학 교수로 일한 뒤부터 함흥공산대학 등 대학교수로만 19년을 활동했죠. 2000년 이후로 북한 사회에 남한의 영화, 음반, 도서가 급속하게 유포되고 대북 라디오 편성이 확장되기 시작했거든요. 그 시절을 보내면서 남한 사회에 대한 동경과 함께 북한 사회에 대해 불만과 비판이 생겼죠. 그러던 중 남한 영화 몇 편 보았다가 당국으로부터 사상검토와 추궁을 당했고요. 소위 ‘혁명화’를 거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해 극도로 염증을 가지게 되었어요. 결국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북하게 됐죠. 한국에 온 이후 여러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과목 강사로 일했고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정부 출원의 재단법인 북한이탈주민후원회 과장으로 일하면서 탈북자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을 돕는 사업을 하게 되었던 겁니다.

Q. NK지식인연대는 어떻게 조직되었는지?

A. 아마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탈북자 정착을 돌보는 사업을 맡으면서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3년 동안 이 업무를 하면서 남한에 온 대다수의 탈북자들이 부적응을 겪지만, 지식인들의 경우에는 취업이 어렵거나 생활안정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참여와 역할에 대한 기대가 박탈되는 것에 더 큰 실망을 느끼는 것을 발견했죠. 그리하여 탈북자 출신 지식인들 스스로의 조직을 만들어 통일사업과 탈북자 정착지원을 위한 사회적인 활동을 함께 진행해 나가보자는 뜻이 모아진 거죠. 즉 북한 출신 지식인들이 각자의 능력과 경험은 일천하지만 한 곳에 모여 함께 글을 읽고 지식의 폭을 넓히며 민간 통일운동을 하다보면 각자의 사회적 참여와 기여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통일 이후에도 북한을 발전시키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음이 생겼죠. 통일 한국을 위한 사회적 기여를 원하는 탈북 지식인들의 메카를 만들어 보자는 거죠.

그래서 2008년 6월 18일 경기도 포천의 산정호수에서 78명의 탈북 지식인들이 모여 NK지식인연대 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가지게 되었고요. 정관과 비전, 활동목표와 원칙들을 채택했고 창립대회 준비를 한 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죠. 같은 해 10월 24일 북한대학원대학교 정산홀에서 NK지식인연대 창립대회를 가지고 첫 기념학술세미나를 개최했어요. 설립 이후 5년간 NK지식인연대는 “실천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배우고, 그 발전에 이바지 한다.”는 원칙과 “북한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자!”는 슬로건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Q. NK지식인연대 사업 프로그램?

A. 우선 계간지 <북녁마을>과 뉴스레터를 발간하고 있어요. <북녘마을>은 탈북자 전문가 필진을 확보하고 있고요. 북한 생활 탐방에 대한 소재가 주 내용이죠. 북한 실상에 대해 널리 알리는 게 목적이에요. 뉴스레터도 주 1회 발간하여 현재 3천개 기관과 개인에게 e-mail로 발송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 개선활동도 진행하고 있어요. 『북한인권법』을 발의한 국회의원들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해 제정 필요성을 알리는 활동을 함께 하고 있고요. 탈북자 단체들의 공통 의견서를 청와대와 각 정당, 통일부와 국가인원위원회에 제출했죠. 또 탈북자와 남한 전문가들의 공동 학술연구 세미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있어요. 남북과학기술자 전문가 워크숍, 북한 과학기술연구 세미나를 포함해 남북 간 교륙협력이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자문과 함께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 역시 우리의 자랑이죠.

또한 북한 내부에서 활약하는 현지통신원을 육성하고 있고요. 그들의 활동을 장려하여 북한 내부소식을 실시간적으로 입수하는 데 노력하고 있어요. 기존 북한 4개 지역에서 활동했던 현지통신원을 올해 5월까지 7개 지역, 9명으로 증강하는 데 성공했고요. 중국에서도 옌지 지역에 1개 거점을 새로 조직하여 중국을 경유하는 정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죠. 이외에도 하루에 2시간씩 인터넷 생방송인 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탈북자들이 남한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인터넷 생방송이라 독특하고 생동감 있죠. 북한의 변화상을 제때에 알려주고 바른 통일관을 확산시키는 것이 목적이에요. 남북 출신을 가리지 않고 미디어, 사회학, 홍보, 심리전, 사회심리학 분야의 전문가, 교수들로 구성된 ‘대북뉴미디어연구센터’를 조직했어요. 정기적 자문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의식개혁을 위해 어떤 콘텐츠들이 필요하며, 이것을 어떤 내용으로 만들고, 어떻게 유입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정기적으로 작성하고 있고요. 인터넷 방송국과 대북뉴미디어연구센터와의 협력을 통해 완성도가 높은 대북 뉴미디어들을 격월간으로 발간하고 북한에 유입되도록 하고 있죠.

Q.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

A.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에 관한 첫 소식을 국제사회에 처음으로 알렸던 때가 생각이 나네요. 또 2011년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처음으로 확정하였을 때 ‘그전까지 문외한들이라 생각하던 북한정보센터 직원들이 이렇게 발 빠른 대북 실상 메신저로 발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정말 큰 뿌듯함을 느끼게 되었죠.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NK지식인연대 주최로 열린 ‘제2회 월례 북한 실상정보 브리핑’에서 탈북자 이설희 씨가 최근 북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3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NK지식인연대 주최로 열린 ‘제2회 월례 북한 실상정보 브리핑’에서 탈북자 이설희 씨가 최근 북한 실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Q. 가장 힘들었던 순간?

A. 지난 5년간 NK지식인연대를 이끌어오면서 사실은 성과보다 부족함과 시행착오가 더 많았어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방과 후 위탁형 학교를 번듯하게 꾸려놓고도 학교에 대한 책임과 관리를 소홀히 하다보니 학교운영을 맡겨준 임원이 NK지식인연대가 세운 학교를 본인 개인 사업으로 만들려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되었던 적이 있죠. 그 때가 솔직히 힘들었어요. 그래도 무슨 일을 하든지 법과 원칙에 근거하여 필요한 책임과 권한과 의무를 분명히 하고, 투명한 관리체계를 세우는 것이 조직운영의 제일 중요한 과정임을 통감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교훈으로 삼을 수 있었죠.

Q. 비전과 향후 계획?

A. 대북관계, 통일문제를 위한 학술연구뿐만 아니라, 대북정보서비스, 북한 내 정보자유화를 이룩할 수 있는 행동단체로서의 능력을 빠른 기간 내에 함양하려고 해요. 동시에 남한에 정착해 있는 탈북 지식인들과 탈북 대학생들을 상호 연계하여 북한 변혁의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인력준비 사업도 착실하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정한 조직운영을 위한 재정자립 능력을 갖추는 것이죠. 지금까지 국내외 각종 프로그램 공모에만 의존해 예산문제를 풀어왔지만 매우 불안하고, 해마다 프로그램 공모 내용과 지원액수에 따라서 연대의 활동이 들쭉날쭉이에요. 올해부터는 회원들의 회비와 사회적 후원을 적극적으로 받으며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영리사업을 통해 운영예산 조달과 안전성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이동훈 / 본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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