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3년 10월 1일 0

전영선의 NK 애니공작소 | “지칠 때까지 놀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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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때까지 놀 수는 없을까?”
 
 
 학교를 가던 나무인형이 늑대를 만났다. “안녕, 꼬마야? 지금 어딜 가는 길이니?” “학교에 가요.” “학교가 뭐하는 곳인데?” “학교는 착한 아이가 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에요. 하지만 정말 끔찍한 곳이죠. 매일매일 알지도 못할 어려운 것들만 가르치고! 모두들 날 바보취급하기만 한다고요!” “가기 싫은 모양이구나? 그런데 왜 가는 거야?” “……” “딱 하루만이야. 하루 정도는 싫은 일 말고 즐거운 일만 해도 되잖아? 그럼 너도 행복한 기분이 될 테고, 너희 아빠도 좋아하실 거야.” 결국 나무인형은 늑대의 꼬임에 넘어가 서커스 구경에 빠지고 광대가 되어 후회한다. 동화 <피노키오>의 한 장면으로 학교 공부가 하기 싫었던 피노키오가 잘못을 뉘우치고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내용이다.

 2009년 조선 4·26아동영화촬영소에서 제작된 <긴긴 일요일>은 마치 ‘북한판 피노키오’ 같다. 달수는 휴일을 앞두고 숙제를 하면서 유일 일과표를 짜고 있었다. 휴일이었지만 국어 숙제도 해야 했고, 수학 숙제도 해야 했다. 하지만 유희장에 가서 관성열차(롤러코스터)도 타고, 전자오락도 하고, 수영도 하고, 보트도 타고, 낚시도 하고,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도 보고 싶었다. 숙제 하고 놀기에는 일요일이 너무 짧았다. 달수는 일과표 가장 앞에 있던 숙제하는 시간을 맨 뒤로 돌리고 먼저 놀기로 했다. 달수는 달력을 보았다. 달력의 휴일은 너무 적었다. ‘일요일이 길어서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를 들으며 달수는 깜빡 잠이 들었다.

북한판 피노키오 <긴긴 일요일>

숙제하고 놀기에는 일요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달수는 토끼와 함께 1시간이 1년인 '긴긴 일요일'로 가게 된다. 자신이 노는 동안 훌륭한 박사가 된 친구들을 보며 꿈에서 깬 달수는 열심히 공부하겠다 다짐한다.  中

숙제하고 놀기에는 일요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달수는 토끼와 함께 1시간이 1년인 ‘긴긴 일요일’로 가게 된다. 자신이 노는 동안 훌륭한 박사가 된 친구들을 보며 꿈에서 깬 달수는 열심히 공부하겠다 다짐한다. <긴긴 일요일> 中

 달수의 시계에 있던 토끼가 꿈에 나타났다. 토끼는 ‘긴긴 일요일’에 가면 실컷 놀 수 있다고 했다. 달수는 토끼를 따라 시계 속으로 들어가 왕시계 할아버지를 만났다. 달수는 왕시계 할아버지에게 “일요일이 몇 십배나 되는 곳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할아버지는 “하루가 십 년인 긴긴 일요일에 데려다 주마. 긴긴 일요일은 하루가 너무나 길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너의 모습은 변함없을 거란다.”라고 했다.

 ‘긴긴 일요일’에 간 달수는 토끼와 함께 놀이기구도 타고, 게임도 하고, 수영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희장에서 놀기 시작한지 10시간쯤 되자 달수는 슬슬 지겨워졌다. 달수는 친구들 꽃순이, 해남이, 천둥이와 집에서 기르던 누렁이가 보고 싶었다. 토끼는 달수의 누렁이를 데려다 주었다. 강아지였던 누렁이는 큰 개가 되어 있었다. 일반 세계의 1년이 이곳의 1시간이니 10년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달수는 토끼에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한 뒤, 일반 세계로 나왔다.

 10년이 지났지만 학교는 그대로였다. 교실로 간 달수는 꽃순이를 깜짝 놀려 주었다. 그런데 꽃순이가 아니라 꽃순이의 여동생이었다. 언니는 실험실의 연구사가 되었다고 했다. 해남이와 천둥이의 동생들도 만났다. 해남이는 지질박사가 되었고, 천둥이는 전자공학 박사가 되었다고 했다. 친구들인줄 알았던 아이들은 모두 그 동생들이었고 정작 친구들은 학교에 없었다. 놀란 달수는 실험실로 찾아갔다. 포도농장 실험실에는 꽃순박사가 개발한 왕포도 시험전이 열리고 있었다. 꽃순이의 연구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해남이와 천둥이가 찾아왔다. 달수는 친구들을 보며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10년 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가 없었다. 달수는 왕시계 할아버지를 찾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왕시계 할아버지는 “놀음에 빠져서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되돌려 줄 수 있겠느냐”며 거절하였다.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애원하던 달수를 뒤로하고 왕시계 할아버지는 홀연히 사라졌다.

 놀란 달수가 꿈에서 깼다. 달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오늘 해야 할 숙제를 내일로 미루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2012년 9월 2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6차 회의가 열렸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시작된 김정은 체제 하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였던 만큼 이목이 집중된 대회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 체제 출범 이후 어떤 행보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여러 관측과 해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 대회에서 발표한 것은 뜻밖에도 정치나 경제문제가 아닌 교육제도 개혁이었다. 기존 11년제 의무 교육기간에서 소학교 교육기간을 1년 늘려 12년제 의무교육기간으로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혁명발전과 시대의 요구에 맞게 중등일반교육을 개선, 강화하고, 사회주의 교육제도를 더욱 발전시킨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되돌려 주겠느냐”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의 목표가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동의와 참여가 필요하다. <긴긴 일요일>은 2009년에 창작되었지만 2013년 1월에 방송되었다. <길을 잃은 깜장이>, <목이 긴 게사니>, <반달곰의 학습장> 등 비슷한 주제의 아동영화도 여러 편 나왔다. 모두 공부를 열심히 해서 국가가 필요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주제다. 이런 주제의 아동영화는 늘 있었던 주제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인재’인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긴긴 일요일>에서 달수가 10년 동안 놀고 있는 동안 친구들은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박사가 되어 있었다. 꽃분이는 크고 맛있는 왕포도 종자를 개발하는 박사가 되었고, 해남이와 천둥이는 지질학박사와 전자공학박사가 되었다. 모두 이공계 박사들이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농업분야, 지질분야, 과학기술분야이다. 이들이 곧 북한 체제가 어린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북한 교육의 미래상인 것이다.
 
 
전영선 /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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