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의 창으로 북녘을 보다 上 | 외화벌이, 북한체제 양날의 칼 2013년 11월호
현지취재 | 단둥의 창으로 북녘을 보다 上
외화벌이, 북한체제 양날의 칼
북한이 최근 해외에서 거주하는 외교관 등 공관 간부 자녀들의 귀국명령을 철회했다는 소식이 일본 <산케이신문>을 통해 전해졌다. 지난달 외교관과 무역 일꾼 자녀 1명씩만 남기고 전부 귀국하도록 했지만, 지난 9월말~10월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자녀 귀국명령이 철회되었다. 또한 이미 북한에 소환된 자녀들도 ‘자비(自費)’로 다시 해외로 출국할 수 있다는 통보도 내렸다. 신문은 “북한 당국의 이 같은 번복 조치는 귀국 지시에 대해 많은 대상자가 반발했기 때문”으로 해석하며 “북한 최고 지도자의 지시가 국내외의 반발로 인해 번복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은 2007년에도 한 차례 해외 주재원 자녀들 전원 귀국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에도 강한 반발로 유야무야된 사례가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김정은으로의 세습과정은 국제사회의 우려와는 다르게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북한체제의 공고함을 다시 되새기게 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의 선군정치에 의한 카리스마식 리더십에 비해 ‘인민생활의 질적 향상’과 ‘김일성 시대로의 회귀’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김정은 체제의 변화는 해외주재 외교관들을 중심으로 이탈적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北, 해외주재 외교관 이탈적 행위 통제 못해
해외 주재 외교관과 공관의 역할은 국가를 대표하여 자국의 이익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외교적 활동을 담당하는 것이다. 상대국과 외교교섭을 하기도 하고, 그 나라의 사정과 다양한 정보를 본국에 보고하여 양국 간 우호협력 관계가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한의 외교관은 이러한 활동 외에도 체제유지비를 조달하는 명령을 오랫동안 수행해오고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북한에서 외국어에 능통한 ‘외교관’은 당 고위직의 자제에게는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직업이다. 이는 해외공관에게 주어지는 무거운 임무를 비롯해 강화된 감시와 통제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외교부 재외공관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아프리카 46개국, 아주지역 26개국, 미주지역 24개국 등 2013년 현재 162개국과 수교를 맺고 있다. 북한의 외교관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과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이외에도 체제유지를 위한 ‘충성자금 조달’ 임무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일괄적으로 배분된 ‘해외공관의 충성자금’은 1980년대 러시아 벌목노동자를 필두로 중국, 베트남 지역에 북한식당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충성자금은 해외공관에 의해 조달되는 방법, 북경이나 단둥·훈춘과 같은 국경지역에서 성행하는 공연과 연계된 북한식당 운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외화벌이 사업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충성자금의 조달뿐만 아니라, 김정일의 선물정치에 사용된 와인과 술, 캐비어 등과 같은 외국산 사치품 조달 및 위조화폐 제작과 유통을 전담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이러한 해외공관의 역할에 의지하면서도 그들의 사상적 이탈 행위도 통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해외공관의 외화벌이 담당자들은 충성자금 조달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가족의 안위와 더 나은 생활을 위한 선택의 갈등에 놓이게 된다.
외화벌이 담당자들의 딜레마
1990년대 구소련을 중심으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및 체제전환과정과 한·중수교를 지켜보면서, 북한은 오랫동안 지켜온 스탈린식 공산주의를 버리고 ‘우리식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고난의 행군’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일련의 시간들을 통해서 김정일은 ‘자신의 북한’을 지키기 위해 선군정치라는 고립을 선택하게 된다. 주변국과의 교류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국익을 해외공관의 충성자금의 임무로 대체함으로써 북한의 외화벌이사업은 다각화되었다. 러시아 벌목사업, 북한식당 운영을 기점으로 한 위조지폐 제작과 유통, 마약 제조 및 총기 판매 등 무역회사를 통한 비공식 경제활동에 의한 지하경제의 규모는 철저히 당의 명령에 의해 조직되고 움직여왔다. 이와 같이 외화벌이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는 4만6천여 명으로 우리나라 외교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거대하게 움직이는 외화벌이사업은 북한체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에서 체제를 약화시키는 변수로 변하고 있다. 충성자금원인 외교관의 잇따른 망명과 증언은 북한체제의 치부를 들어내는 동시에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체제유지에 순기능을 담당하던 조직의 배신은 다른 조직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체제 약화요인’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이는 공식경제가 무너지고 계획경제와 실질경제와의 벌어진 괴리가 비공식경제에서 암묵적으로 용인된 부패를 통한 ‘초기자본주의 경제형태’로 진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범위가 카지노 사업까지 이어져 방법론의 다양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김정은은 북한체제의 양날의 칼인 ‘외화벌이사업’을 장악해야만 할아버지 김일성에서 아버지 김정일이 물려준 북한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구소련 붕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고르바초프처럼, 김정은이 획기적으로 변화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체제유지에 대한 외화벌이사업의 순기능이 적정선(Optimal Point)을 넘긴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근영 / 중앙대 민족통일연구소 개발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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