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 일본의 재무장·우경화·군사대국화 정당화 우려 2013년 11월호
포커스 | 일본의 재무장·우경화·군사대국화 정당화 우려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지난 10월 3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미·일 2+2 장관회담’을 통해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및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과 함께 2014년 말까지 ‘미·일 방위협력지침(이하 방위협력지침)’을 재개정하기로 합의했다. 미·일 간 방위협력지침은 1978년 11월 제정된 이후 1997년 9월 한 차례의 개정을 거친 바 있다(이를 흔히 新방위협력지침이라 한다). 당초 방위협력지침은 평시 및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시 양국 간 협력의 기본방향을 정한 것으로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6년 미·일 안보공동선언을 계기로 일본의 국력에 걸맞은 지역 내 기여를 방위협력지침에도 반영해야 한다는 미·일 양측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일본 본토만을 대상으로 한 기존의 협력 범위가 일본 주변 지역의 ‘유사사태’에 대비한 협력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아직 명확히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재개정에는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미·일 간 안보·군사협력과 자위대의 역할 확대 등이 반영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조어도 열도(일본명 센카쿠, 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의 해상 감시활동 강화를 위한 양국 협력 및 역할 분담, 사이버 공격에 대비한 공조, 우주공간의 이용 등 새로운 분야의 협력이 지침 속에 담길 가능성이 크다.
미·일, 1997년에 일본 안보역할 확대 합의
사실 미·일 간의 안보협력 강화와 미·일동맹체제 내 일본의 역할 확대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997년 新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미국은 일본의 안보상 역할이 단순한 일본방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미·일 간의 안보 결속이 그동안의 지속적인 추세였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반테러·반확산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대미 협력과 이에 대한 미국의 호응은 양국이 21세기에도 공동운명체로서의 관계를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양국은 정상회담 및 2+2 장관회의 등을 통해 세계 및 지역적 차원의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물론 일본의 하토야마 정부 시절 오키나와 기지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 간 미묘한 견해차와 불협화음이 존재했던 시기도 있지만, 미·일은 이러한 동맹조정의 과정을 비교적 무난하게 관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 내에서 이러한 추세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세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 첫째,미·일 간 방위협력 지침 재개정이 자칫 일본의 재무장, 우경화, 그리고 군사대국화를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집권 이후 연일 주변국을 자극하는 발언과 행태를 계속해 온 아베 신조 총리나 자민당 정권 각료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이러한 우려를 기우로만 치부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둘째, 미·일의 방위협력 강화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자신에 대한 포위(Hedging) 전략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최근 중·일이 조어도 등의 갈등현안을 놓고 끊임없이 각을 세워 온 현실을 고려할 때(실제로 미·일이 이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방위협력지침 재개정은 북한 변수와 함께 중국의 부상에 대한 공동대비의 측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결국 동아시아에서 미·중 갈등의 현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지역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한 편으로의 ‘줄서기’를 강요받게 될 위험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미·일 간 안보협력의 강화는 한·미동맹의 상대적인 위상하락이나, 독도 및 동해표기 등 한·일 갈등 사안에 있어 미국의 은근한 대일 지원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분명히 미·일 방위협력지침 재개정에는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우려 일변도로만 해석하거나 혹은 이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견해를 전달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더 큰 문제점을 양산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방위협력 지침은 미·일 양자 간의 사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일동맹의 강화를 무조건 백안시하는 접근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 네트워크 활용에 대한 미국의 구상을 반박하는 격이 되어 한·미동맹의 결속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혹은 인근지역 활동 등에 대한 극단적 시나리오를 부각하는 것 역시 동맹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파트너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깨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미·일동맹 강화, 무조건적 백안시 경계해야
오히려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미국이 우리에게 했던 ‘린치핀(linchpin)’ 등의 외교적 수사에 취해, 미·일 동맹의 활력을 경시하고, 미국에 대한 부담 없는 편승을 기대했던 것은 아닌가하고 자성해 보아야 한다. 2000년대 초반의 한·미동맹, 그리고 중후반의 미·일동맹의 조정과정에서 나타난 교훈은 21세기의 어떤 동맹도 파트너 간의 형평성 있는 거래관계 확립 없이는 파열음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21세기 전략동맹’을 외치면서 동맹 내 기여의 확대를 위한 자체의 능력을 얼마만큼 확장해 왔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주의(Pivot Asia)’가 전개되는 동안 그에 대해 한국이 얼마만큼 적절한 협력대상자로 비추어졌을까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자기의 노력은 등한시한 채, 타방 간의 관계 결속만을 질시와 우려로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결코 미래지향적 동맹을 달성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 적지 않은 갈등 현안에 휩싸여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과제인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재정립에도 관심을 쏟아 나가야 한다. 한·일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점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은 공통점도 많은 관계이다.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세력구도를 홀로 헤쳐 나가기에는 한·일 모두 한계가 있다. 양자가 다르다는 점만을 부각하기보다는 얼마나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가에 중심을 둔 접근이 지금부터라도 요구되는 때라 할 수 있다.
차두현 / 한국국제교류재단 교류협력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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