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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화유산 톡톡! 10 | 北고분벽화 발굴, 남한 대신 中·日 학계가 메워 2013년 11월호

북한 문화유산 톡톡! 10 | 고구려 벽화고분

北고분벽화 발굴, 남한 대신 中·日 학계가 메워

1. 남포시 강서구역 덕홍동, 사냥풍습 고분벽화 2. 남포시 강서구역 약수리, 사냥풍습 고분벽화

1. 남포시 강서구역 덕홍동, 사냥풍습 고분벽화
2. 남포시 강서구역 약수리, 사냥풍습 고분벽화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주몽(朱蒙)에 의해 건국되어 만주지역부터 한반도 중부지역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지배한 고대국가로 700여 년의 기간 동안 우리민족의 맏형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이었던 고구려는 중원의 세력으로부터 만주 일대와 한반도를 지켜내며 독창적이고 진취적인 문화를 발전시켰고, 강력한 국력과 우수한 문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유산을 남겨 오늘날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특히 다양한 고구려의 문화유산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벽화고분으로 현재까지도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으며 지난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구려 벽화고분은 약 120기로 북한에 위치하는 것이 80기, 중국에 위치하는 것이 38기이다. 이 중 평양 일대에 위치한 벽화고분 10기에 대해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남북공동실태조사와 보존사업이 진행되어 세계유산인 고구려 벽화고분의 보존을 위한 남북의 하나된 뜻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고대사회의 타임캡슐

벽화고분은 봉분 내부에 위치하는 석실의 벽면과 천장에 벽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제작당시의 사회상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어 문헌기록만으로는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정보를 알려주는 고대사회의 타임캡슐이라 할 수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2년 강서군수 일행이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에 들어가 벽화를 실견하면서부터이다. 이후 1907년에는 프랑스 학자인 샤반느가 산연화총을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하였으며 연이어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서도 조사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중국의 무순, 환인, 집안과 북한의 평양, 황해도 안악군 등에서 확인되는데 약 4~7세기의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축조되었으며 시기 변화에 따른 각기 다른 형식의 벽화고분이 만들어졌다. 특히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63기의 고구려 고분 중 벽화고분은 16기이며 이후 추가적인 발견을 통해 현재까지 약 80여 기의 벽화고분이 확인되고 있다.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그려진 내용으로 볼 때 생활풍속·장식무늬·사신도 3가지 유형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이는 벽화의 제작시기 변화와도 관련된 것으로 초기의 생활풍속 중심으로 그려지던 벽화가 점차 사신도 중심으로 변화해 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고분벽화는 회벽화일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벽면의 박락이 진행되어 채색이 벗겨지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도굴 등으로 외부공기가 유입되어 석실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경우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현재 대부분의 벽화고분은 밀폐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실제 중국 집안에 위치하는 오회분 4호묘와 5호묘의 경우 관광을 위해 개방된 상태인데 일반에 공개된 이후 벽화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북한의 약수리 벽화고분에 대해 유네스코 차원의 보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관련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보존사업도 수차례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남북 간의 공동보존사업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한이 빠진 빈 자리를 중국과 일본의 학계와 연구자들이 메우고 있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편치만은 않다.

남포시 강서구역 수산리, 여자의 옷차림 벽화

남포시 강서구역 수산리, 여자의 옷차림 벽화

지난 2009년에서 2011년 사이 평양지역에서 2기의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는데 북한의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가 각각 일본, 중국 조사단과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일본측과 함께 조사한 유적은 평양시에 위치한 동산동 벽화고분으로 낙랑구역의 아파트 공사 중에 발견되었으며 벽화를 비롯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국측과 함께 조사한 유적은 평안남도 용강군에 위치한 옥도리 벽화고분으로 역시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북중·북일 공동조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중국과 일본의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관심은 현재의 한·중·일이 모두 동아시아 고대국가에서부터 출발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고구려와 인접했던 고대 국가 묘제와의 비교연구뿐 아니라 심양 등지의 고구려 고분조사·연구의 연장선으로 볼 때 이번의 발굴조사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은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평양지역 고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한 바 있어 평양지역의 고구려 고분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이다. 특히 1972년 나라현 다카마쓰 고분(高松塚古墳)에서 그간 일본열도에서는 발견된 바 없는 인물도·사신도 등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됨에 따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고구려 벽화고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앞의 북·중, 북·일 2건의 공동조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대 이래로 다양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한·중·일 3국의 경우 과거의 역사가 현재 시점과 결부되어 논의되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도 목격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항상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각기 다른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땅의 문화유산을 위해 어떠한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한번쯤 되짚어 볼 일이다.

박성진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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