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손자 앞에서 물구나무 선 할머니 2012년 4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손자 앞에서 물구나무 선 할머니
꽃피는 4월은 북한에서 매우 중요한 달이다. 꽃이 펴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김일성 생일인 4월 15일이 있기 때문이다. 4월 15일을 북한에서는 ‘태양절’로 기념하는데 이날만은 집집마다 ‘푸짐한’ 공급이 있다. 술 한 병에 쌀 공급도 하고 식용기름 공급도 하고 지방마다 다르긴 하지만 육류 공급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돼지고긴데 식구에 관계없이 세대당 딱 1kg씩이다. 무게는 같아도 차이는 있다.
동네 아줌마들은 명절고기를 타 왔다면 옆집, 앞집, 뒷집, 길 건너 집까지 기웃거리며 타온 고기를 살핀다. 다른 건 볼 염을 안 하고 돼지고기만을 살피는데 어떤 집에서 타온 고기를 보면 비계가 붙어 있어 환성을 지르고 어떤 집 것은 비계는 없이 별로 말라보여 얼굴을 찡그린다. 비계가 있다는 것은 살찐 고기임을 의미하는데 그런 고기를 보면 “에구 올해 이집은 대통 나겠소.”하고 부러워한다. 비쩍 마른 고기를 보면 “우린 정말 운이 없다니까.” 하며 주인이 구경 온 사람보고 서운해 한다.
“장군님 준 선물인데 누가 감히 손을 대?”
그럴 만도 하다. 고기는 대체로 국을 끓여 먹는데 벌겋게 고춧가루를 친 국물에 흰 비계가 둥둥 떠야 한 그릇 먹어도 먹은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은 둥그런 기름이 뜬 고깃국을 한 그릇 얼벌벌하게★ 먹어야 즐거워한다.
어쩌다 차례진 고기가 비계 하나 없이 기름기가 없으면 그것처럼 서운한 일은 없다. 일부 사람들은 내내 못 먹다가 비계를 몇 점 집어먹은 것이 그대로 설사가 되어 나가는 경우도 있는데 옆에서 속도 약하면서 비계는 왜 먹냐고 욕을 하면 “히, 그래도 고기보단 비계가 더 좋은걸, 더 먹었으면 좋겠다.” 하며 헤벌쭉거린다.
아이들은 고기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선물사탕과자 봉지다. 2·16(김정일 생일)이나 4·15(김일성 생일)에는 900g에서 1kg봉지로 선물사탕을 유치원에서 중학교 3학년생까지 주는데 집집마다 희비극이 벌어진다. 부모나 할아버지, 형이나 누나도 사탕과자를 보면 못 보던 것이라 군침이 넘어가는 것은 매한가진데 어린 것이 제가 받은 것이라면서 제 품에 끌어안고 도무지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미야, 심심해서 그냥 노느라 그런 건데…”
간혹 부모 말 잘 듣는 녀석들은 군소리 없이 골고루 분배해 나누어 먹는 집도 있지만 장난이 세차고 심술궂은 녀석들은 “장군님 준 선물인데 누가 감히 손을 대? 이건 내거야.” 하며 저 혼자 독차지하려 한다. 그쯤 되면 아무리 손위라 해도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가만있으면 못 얻어먹겠고 해서 슬슬 얼려본다. “업어줄까? 공책 사줄까?” 그래도 벽창호면 그 다음은 놀려도 본다. 도투★바위 심술보, 깍쟁이 등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다가 술 한 잔 걸친 아버지라는 사람이 냉큼 박하사탕 하나 입에 넣고 “이건 말이지, 싸해서 어린이가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니까 아버지용이거든 알았지?” 그러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그럼 박하사탕은 아버지 먹어.” 하며 내주는 녀석도 있지만 “아니야 거짓말이야.” 하며 몽땅 봉지 채 걷어안고 윗방으로 도망쳐 버린다.
어느 집에서는 명절이 지난 다음날 엄마가 장보러 나갔다가 잠깐 집에 들어왔더니 할머니가 손자 앞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었다. 70이 지난 할머니가 펴놓은 이불 위에 머리를 대고 벽에 다리를 거꾸로 올려 세우느라 무진 애를 쓴다.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손자가 사탕을 씹어 먹으니 그걸 보고 할머니가 군침을 넘겼는데 물구나무를 서면 한 알 준다고 해서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손자 녀석은 “할머니 조끔만 더, 조끔만 더, 와 섰다, 할머니 잘 하네, 자 사탕 한 알 더 줄게.” 하며 짝짝 손뼉을 치고 있었다.
너무 기가 막혀 엄마는 달려들어 아들의 귀뺨을 때렸는데 시어머니는 무안해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어미야 내 심심해서 그냥 노느라고 그런 건데 애는 왜 때리냐.” 하며 어색해 했다.
손자가 먹는 사탕이 얼마나 잡숫고 싶었으면, 그만큼 평시에는 흔하게 먹어볼 수 없는 것이 사탕과자다. 북한에 귀한 것이 사탕과자뿐이 아니지만 돌아보면 너무 부족하고 메마른 생활이다. 올해는 뭐 “김 주석 탄신일 100돌”이라니까 그 날 하루는 고기 맛도 보고 술잔도 기울여 보겠지만 언제가면 북한주민들도 마음 놓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삶의 즐거움을 느껴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이지명/ 계간<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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