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전쟁·평화 | 전쟁과 최고결정권자의 신념, 오해, 스트레스 2012년 4월호
인간·전쟁·평화
전쟁과 최고결정권자의 신념, 오해, 스트레스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반 대중의 영향보다는 지도자와 그의 참모진의 영향이 훨씬 크다. 특히 최고결정권자의 성격, 신념 혹은 세계관 등은 비일상적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위기 상황에서 정보가 너무 적거나 혹은 너무 많을 경우, 최고결정권자가 외교 분야와 관련한 경험이 적거나 훈련이 덜 된 경우, 그리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상황에서 전쟁 결정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외에도 상대방에 대해 최고결정권자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건강악화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도 전쟁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할 때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북한의 남침을 1930년대와 1940년대 서유럽에서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을 두고 평가하였다. 그들은 히틀러가 조금씩 유럽을 침공해갈 때 유럽의 각국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원인이라는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즉 트루먼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게 한국전쟁은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첫 번째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트루먼 대통령의 회고록에 의하면, 북한의 남침은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같은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적 행위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적인 행위에 대해 적절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는 신념체계가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히틀러 유럽침공 기억과 한국전쟁 참전
트루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조지 부시 시니어 대통령의 제1차 이라크 전쟁의 결정도 부시 대통령의 역사인식에 기초한 신념체계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부시 대통령도 제2차 세계대전의 참가자로서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을 히틀러의 유럽 점령과 연결시켰다. 따라서 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였으며,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은 용인할 수 없다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후세인의 성공은 다른 아랍국가의 점령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후세인의 공격적인 행위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물론 후세인은 히틀러도 아니며 이라크는 독일과 동일시 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신념체계와 참모들의 세계관이 직접적으로 전쟁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정책결정자의 신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도 혹은 군사적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도 전쟁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생과정은 이처럼 상대에 대한 과대평가의 영향에 대한 고전적 사례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개인적인 메모에 의하면 독일의 황제는 영국이 자신과 독일의 함대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영국의 진정한 의도와는 관계없이 독일 황제가 영국에 의한 위협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비밀리에 프랑스 혹은 러시아와 영국의 함대를 괴멸시키기 위한 동맹을 맺고자 하게 된 것이다. 루즈벨트는 독일과 영국의 뿌리 깊은 불신과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두 민족을 전쟁으로 내몰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평가하였다.
반면 상대방의 위협에 대한 과소평가도 과대평가와 함께 전쟁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1990년부터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때 후세인 대통령은 이라크의 부채 탕감과 원유생산량 축소에 대한 쿠웨이트의 소극적인 정책으로부터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 영국,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중동에서 이라크가 지역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정책을 펼칠 것에 대해서도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의 대부분 국가의 최고지도자들은 이라크에 의한 위협의 정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충격으로 다가 온 것이다. 즉, 이라크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위협요인들에 대하여 과대평가를 하였지만, 주변국의 지도자들은 이라크의 위협을 과소평가하였기 때문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전쟁 연구들에 의하면 최고권력자의 병력과 치료행위가 이들의 심리적 상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이들의 건강악화와 이에 따른 약품 처방 및 치료행위가 이들의 인지능력 및 세계관, 정책결정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알코올 중독은 보다 위험을 감수하고 주변의 위험요소들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의 음주문제가 그의 체첸 공격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와 비슷하게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에서도 영국의 앤써니 에덴 수상은 약물치료로 인하여 감정통제와 자신감에 대한 심각한 손상을 입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따라서 평상시와 달리 이 시기에 에덴 수상은 소수의 자문가에 의존하면서 비밀스러운 의사결정과정을 보였다.
남북, 의사결정체제에 대한 상호이해 높여야
20세기의 전쟁을 지도자의 합리적인 선택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기도 하지만, 앞서 논의한 바대로 지도자의 신념, 세계관, 상대방에 대한 오해, 심리적 불안정 등과 같은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요인에 의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한국전쟁 이후 60년 넘게 남과 북이 대치하면서 적 이미지를 구축해 온 한반도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우선, 상대 정치권력자의 신념체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남북한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을 넘어 상대방의 의도와 능력에 대한 오해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상대 지도자의 갑작스러운 건강악화와 이에 따른 심리적 불안정이 극단적인 결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의사결정체제에 대한 이해와 정보 수집을 강화해야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는 외부환경의 조건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의지와 인식의 전환에 따라서도 발생하기도 하고 유지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송영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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