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북한 핵폐기 전 평화체제 논의 시작될 수 있어 2012년 4월호
기획| 북·미 2·29합의 물거품?
북한 핵폐기 전 평화체제 논의 시작될 수 있어
북한이 ‘광명성 3호’의 발사계획을 발표하였다. 발사시기를 4월 중순으로 잡은 것으로 보아,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의도는 그들이 공언한 2012년 강성대국 입국의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사실 4월 15일을 전후하여 북한이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를 실시할 수도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북한은 4월에 시험발사할 광명성 3호는 미사일이 아니라 평화적 목적의 우주발사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사일과 장거리 로켓이 사실상 동일한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가 북한의 발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월 29일의 북·미 간 합의는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2월 29일에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합의했으며, 그 사이에 북·미 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과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마도 미국은 우라늄 농축시설의 존재를 확인한 2010년 헤커 박사의 방북 이후 북한의 핵능력을 검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양지원 24만t이라는 관람료를 지불하고서라도 사찰을 통해 북한의 핵능력 수준을 확인하고자하는 것이 미국의 진정한 의도라면, 북한으로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초청해서 핵능력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미국이 먼저 2·29합의를 무효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2·29합의의 핵심은 북한이 우라늄농축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고 IAEA 사찰단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이 식량(영양)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합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재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금창리 사건의 경우와 같이 한 번의 사찰을 위한 것으로 그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29합의는 향후 북·미 합의의 방향을 예측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세심하게 그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 정전협정 인정
2·29합의에서 눈길을 끄는 내용의 하나는 정전협정에 대한 언급이다. 정전협정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발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북한은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정전협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이 된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반면에 미국은 평화협정을 언급하지 않은 채, ‘1953년의 정전협정을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초석으로 인식’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자신들의 핵개발 이유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의 가시적인 조치로서 정전협정을 대체할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갑자기 정전협정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전협정에 대한 북한의 인식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91년 군사정전위원회 UN사측 수석대표에 한국측 장성이 임명되자 북한은 정전협정에 명기된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독위원회의 기능 축소를 시도한 바 있다. 즉, 북한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한국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정전협정의 체결 당시 한국이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의 당사자로서 한국의 대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이번 합의에서 북한이 정전협정을 언급한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북한의 입장에서 ‘평화보장이란 철저히 조국통일을 위한 전제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즉 북한에게 평화체제란 통일을 추구하기 위한 전제조건과 관련이 있는 것이며, 이는 결국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주한미군 철수, 북한체제에 대한 수용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 정전협정이 한반도 평화·안정 초석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북아시아에 평화질서(평화체제)가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평화협정이란 평화체제와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평화협정은 평화체제 수립의 하위요소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따라서 평화협정만으로 평화체제가 수립될 수는 없다. 남북한과 주변국들 사이에 신뢰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한이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집착하는 것은 위에 언급한 평화협정의 정치적 활용성에 대한 북한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북한의 신뢰할만한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에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 수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2·29합의나 과거 6자회담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북핵 폐기 과정에서 평화협정 혹은 평화체제와 관련된 국제적 논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핵폐기가 매우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문제라는 점에서 핵폐기의 과정이 한반도에서의 평화 질서를 수립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는 것과 평화 질서가 강화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과정이다. 따라서 하나가 완결된 다음에 다음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폐기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화체제 수립 논의가 진행될 수도 있다면, 한반도 상황이 평화적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안정적 관리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평화체제 수립과 관련하여 평화협정과 같은 북한에 대한 제도적 보장의 문제는 제도적 조치가 되돌리기 어려운(불가역성) 반면, 북한의 핵활동은 언제든지 빠르게 다시 악화될 수 있다(가역성)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즉, 불가역적 조치와 가역적 조치의 비대칭성이 극복되지 않는 한 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 수립이 동시에 진행되기 어려운 구조를 극복하여야 한다. 또한 평화체제의 수립은 남북 간의 합의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 협의 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관리 등에 대한 종합적·전략적 관심이 필수적이다.
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동북아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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