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4월 1일

기획| 북·미관계 개선 모멘텀, 예상 못한 북한 변화 야기? 2012년 4월호

기획| 북·미 2·29합의 물거품?

북·미관계 개선 모멘텀, 예상 못한 북한 변화 야기?

지난 ‘2·29 북·미합의’를 설명하는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변수가 설명력을 얻는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에 작동하였던 북한과 미국 사이의 외교적 동력이 소진되지 않고 양국이 현 시점에까지 외교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과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불과 4개월 만에 제네바합의가 이뤄진 것처럼, 이번에도 북한 내 외교정책결정자들의 접근방식이 과거와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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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25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망원경으로 북측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2·29합의, 경제상황 개선 위한 김정은 체제 의지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두 사건 사이의 구체적인 원인은 제쳐두고 외교관계의 모양새만 보면 일정 부분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또 하나의 설명변수는 북한의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김정은 체제의 의지로 볼 수 있다. ‘사상 강국’과 ‘군사 강국’으로 과거 권력의 정당성이 충분히 확보되었다면, 김정은 리더십의 정당성은 경제상황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 이러한 변수와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상에서 밝힌 두 가지 설명변수 이외에도 최근의 2·29 북·미합의를 설명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더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상시적인 북·미관계의 악순환을 개선해보고자 하는 북한의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판단은 김정은 체제의 등장으로 오히려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재선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숨통을 다소 터줌으로써, 북한은 자국의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전략적 환경을 더욱 극대화하고자 계산했을 것으로 의심치 않는다. 사실 지난 4년간 국내외 경제상황의 어려움으로 오마바 행정부의 외교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집권 초기에 제시했던 “핵무기 없는 세상”과 “코펜하겐 기후변화선언” 등은 국제사회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기에는 좀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이었다.

더구나 작년 하반기부터는 이란 핵문제로 말미암아 자칫 예상치 못했던 외교적 난국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짐작컨대 작년 말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한 외교적 상황을 놓치지 않았고,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정권은 북한의 외교라는 포괄적인 게임의 차원에서 유사한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에서 2·29합의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극단적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은 비록 지금까지 많은 실패를 경험하였지만, 새롭게 등장한 김정은 체제가 어떤 형태로든 장기적으로는 변화의 모멘텀에 직면하게 될 것이므로, 차제에 외교 채널을 확보해 놓고 향후 발생할 변화의 모멘텀을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자는 입장을 보인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의 사람들은 소위 ‘북한외교의 데자뷰’를 얘기한다. 즉, 2·29합의는 지금까지 북한이 외부 세계와 약속한 수없이 많은 합의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우리의 대선과 미국의 대선이라는 호재를 통해 대외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국면을 확보하기 위한 반복적인 외교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한다.

물론 두 가지 주장 모두 맞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놓인 매우 험난한 한반도 평화의 긴 여정을 나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번 2·29합의가 어떤 점에서 과거와 다르고 또한 어떤 점에서 과거와 유사한지를 밝힘으로써, 이 시점에서 비록 실낱같지만 외교적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통미봉남(通美封南) 개의치 말아야

2·29합의에서 발견되는 과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북·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북한의 강한 외교적 의지이다. 그러한 의지의 이면에서 북한이 무엇을 계산하고 있을지를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북한은 스스로의 국가이익적 관점에서 자국의 독자적 생존능력을 극대화하고 핵보유능력을 대미협상과정에서 최대한 활용하여 북·미관계를 정상적인 외교관계로 만들어 수십 년째 지속되고 있는 대외관계의 고립에서 벗어나는 것을 희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지금 북한이 무엇을 계산하고 있건, 2·29합의를 통해 일단 북·미관계의 외교적 모멘텀이 형성된다면, 그러한 시작이 북·미 사이는 물론 북한과 국제사회 사이의 일반적인 외교관계로 발전하여 북한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게 만드는 전략에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이번 북·미합의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파기한 수많은 약속이 보인다는 ‘데자뷰’를 언급하고 있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견해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긴 여정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동일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2·29합의 후 불과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서 미사일 로켓인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는,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에도 우리는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주장은 명백히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고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군사미사일 발사 능력 제고를 위한 실험일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과거와는 달리 북한은 북·미 외교관계의 근본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 또한 분명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이 과정에서 우리는 소위 북한식 ‘통미봉남(通美封南)’에 개의치 말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라는 긴 호흡의 여정에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 있는 문제이지, 매 순간 국가 간 이해관계의 순도(純度)를 따지며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은 아니다.

지금과 같이 한미동맹이 단단할 때에는 더욱 문제 삼을 만한 사안은 아닐 것이다. 또한 대화와 협상의 모멘텀이 지속될 수 있도록 담대한 외교적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를 포함해서 상시적인 대화창구가 가동되어야, 즉 우리가 북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옵션을 확보하고 있어야만, 한반도 평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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