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북한, 식량난 단기해소 계기 마련…강성대국 체면은? 2012년 4월호
기획| 북·미 2·29합의 물거품?
북한, 식량난 단기해소 계기 마련…강성대국 체면은?
북한의 식량난은 1990년대 중후반 가장 심각했다. 그 후 북한은 식량생산부문에 대한 국내 자원의 집중 배분과 국제사회의 대규모 식량지원에 힘입어 식량위기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크게 감축됨에 따라 근년 들어 식량난이 재현될 위기에 처했다.
이 와중에 작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장기간 군림했던 절대 권력의 공백에서 북한이 혼란에 빠지고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다. 그러나 이 우려와 달리 북한은 내부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북·미 대화로 식량난을 단기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하고 있다.

로버트 킹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지난 3월 8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7~8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북한과의 식량(영양) 지원 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북한과의 토론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영양식 지원, 식량 전용 시비 불식시켜
김정일 사망 전 이미 시작된 북·미 대화는 사망 후 계속되어 지난 2월 29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제3차 북·미 고위급회담 합의 내용의 골자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중지, 핵·미사일 실험 유예 등 비핵화 사전 조치, 미국의 대북 영양식(식량) 지원 등이다. 이 합의사항 중 영양식 지원 부분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첫째는 ‘식량’이 아니라 ‘영양식’이라 명명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분배 모니터링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영양식 명명은 취약계층에 대한 프로그램 지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취약계층 실태 보고에 의하면,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여름철이 도래하기 전 취약지역의 취약계층부터 위기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취약지역은 함경남북도와 양강도, 자강도이며 취약계층은 어린이, 임산부, 노약자, 부양가족이 많은 가구 등 약 3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에 참여한 국제기구는 이들 취약계층에게 우선 영양식과 보건의료품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왔다. 이번 북·미 합의의 ‘영양식’ 지원은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인도적 측면을 강조함과 동시에 지원 식량의 전용 시비를 불식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지원물자의 모니터링 문제는 2·29합의 후 3월 7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영양식 지원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미 양측은 24만t 규모의 영양보조식품 전달 시기와 방법, 모니터링 방식 등에 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분배 투명성을 강조하면서 30∼50명의 모니터링 요원을 북한에 파견하겠다고 주장했으며, 북한은 기존의 모니터링 수준을 제시하면서 견해차를 보였다. 그러나 영양식 지원 회담의 미국측 대표였던 로버트 킹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회담 후 미국이 우려했던 모니터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언급함으로써 북한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모니터링 규모와 방식을 보장받았음을 시사했다.
이번에 합의된 지원 식량 분배 모니터링 방식과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8년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대강을 유추할 수 있다. 2008년 5월 미국은 1년간 50만t에 이르는 규모의 원조를 북한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40만t은 WFP를 통해, 나머지 10만t은 미국의 NGO컨소시엄을 통해 전달할 예정이었다. 당시 대북 식량지원은 ‘적절한 수령인에게 원조물품이 전달되는지 확인 할 수 있도록 하는 상당한 접근과 감시체계의 개선’에 관한 북·미 합의에 기초한 것이었다.
2008년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결정 직후, 북한과 WFP는 북한 내 WFP 및 미국 NGO컨소시엄 상주 요원의 수와 식량의 전달 상황에 대한 감시권한의 확대를 명시한 협약에 합의했다. 그것은 분배 모니터링 요원의 활동가능범위를 기존의 50개 군(郡)에서 156개 군(WFP 131개, NGO 25개)으로 확대하고, 상주요원의 수는 10명에서 총 75명으로 확대해 기아의 위험이 있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모니터링 요원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또한 그 협약은 감시요원의 권한 확대도 포함하고 있다. 이 협약에 따라 WFP는 620만명의 북한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60만t 이상의 긴급지원대책을 발표했으며, 미국의 NGO컨소시엄은 주로 북서부 2개 도(道)에 거주하는 90만명의 취약계층을 지원하기로 계획한 바 있다.
이러한 합의에 따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2008년 하반기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지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WFP를 통한 원조는 북·미 간 합의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견해 차이로 2008년 11월 중단되었다.
2009년 3월에는 NGO컨소시엄을 통해 이루어지던 식량지원도 중단되었다.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모니터링 보장에 대한 다툼 때문이었다. 2008년과 2009년에 걸쳐 미국은 당초 약속 물량의 34%인 16만9천t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을 뿐이다.
美, “北 위성발사 강행 시 식량지원 중단”
이와 같이 2008년의 대북 식량지원 협약 내용은 완전히 이행되지 않고 중단되었다. 그러나 당시 국제사회와 북한이 합의했던 분배 모니터링 보장은 최근 합의한 영양식 지원 모니터링 보장 수준을 가늠케 한다.
2008년의 식량지원 규모에 따른 모니터링 보장 수준을 최근 합의한 24만t 지원규모에 맞추어 적용한다면 접근가능지역 수와 감시인원의 규모를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북·미 양측은 모니터링을 둘러싼 2009년의 다툼을 재연하지 않기 위해 보다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논의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이 2·29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최근 북한은 4월 중순 김일성 생일에 맞추어 장거리로켓 발사 계획이 있음을 천명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 정례브리핑을 통해 로켓 발사와 식량 지원 여부를 연계시킬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바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 그리고 남한의 지원이 없더라도 중국의 식량지원으로 북한은 올해 식량난을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2년 강성대국의 체면을 살리는 식량공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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