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북·미, 우라늄농축시설 가동 중단 합의 이유는? 2012년 4월호
기획| 북·미 2·29합의 물거품?
북·미, 우라늄농축시설 가동 중단 합의 이유는?

글린 데이비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제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을 마친 후 호텔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회담내용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지난 2월 29일 밤 11시(한국시간) 동시에 발표한 3차 고위급회담 합의 발표문은 문장의 구성이나 배치가 서로 달랐다. 영문과 한글의 차이를 제외하곤 동일한 내용이었던 과거와 매우 다른 이례적인 일이었다. 혼돈의 3년을 헤맨 북한 핵문제의 현재 모습이 극적으로 담겨있고, 북한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 가운데 핵심이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관련된 내용이다. 미국은 국무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에서 “대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비핵화 이행 의지를 나타내기 위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과 우라늄 농축활동을 포함한 영변 핵활동에 대한 유예(moratorium)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성명은 또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 유예를 검증하고 모니터하며, 5메가와트 원자로와 관련시설의 불능조치를 확인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팀 복귀에도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의 핵심 내용임을 강조하려는 의지가 확연했다.
北, 재가동 대비 우라늄 농축시설 공회전 제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하는 형식을 통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조-미고위급회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결실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활동을 임시 중지하고 우라늄 농축활동 임시중지에 대한 IAEA의 감시를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내용을 발표 뒷부분에 배치했다. 특히 UEP를 ‘임시중지’했다는 것에 눈길이 쏠린다. 향후 상황에 따라 재가동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북한은 영변 UEP시설은 평화적 목적의 핵이용을 위한 것이라는 명문을 고수하면서, 이것이 증명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UEP시설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할 경우 향후 재가동 시 기술적 문제와 함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되기 때문에 연료를 주입하지 않는 ‘공회전’ 방식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양측은 이런 정도의 UEP 임시 가동중단에 왜 합의했을까. 결론적으로 양측의 전략적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시설은 지난 2010년 11월 미국의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영변 현지에서 살펴본 바 있다. 초현대식 제어시설까지 갖춘 것으로 확인돼 더욱 미국을 긴장하게 했다. 헤커 박사는 “북한이 원심분리기 2천개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라고 알려줬다.”고 전했다.
특히 미국이 놀란 것은 이 시설이 그 이전에는 전혀 파악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온 우라늄 농축시설을 짧은 시간에 영변에 옮겨 설치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른바 영변 외 다른 장소에 비밀 UEP시설이 있다는 애기다. 특히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HEU)의 경우 간단한 이동장비만 있으면 일반 상태에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이 왜 북한의 HEU 또는 우라늄 농축계획을 무서워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북한이 제조한 고농축우라늄이 중동의 특정국가나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의 수중에 들어갈 경우 이스라엘은 중대위기에 빠질 수 있다.
24만t 식량지원, 영변 UEP 사찰 관람료?
북·미 베이징 합의를 즈음해 만난 미국의 고위당국자는 필자에게 “우리는 반드시 북한 UEP의 실체를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은 24만t의 식량(영양) 지원을 영변 UEP시설을 시찰하기 위한 ‘관람료’ 정도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란의 핵문제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북한 핵문제를 가급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컸을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일단 북한의 UEP시설을 가동 중단시킨 상태에서 IAEA 사찰단으로 하여금 이 시설의 위험도를 현장에서 확인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급선무라고 보여진다.
북한의 속셈은 뭘까. 필자가 보기에는 미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카드를 총동원해 ‘최후의 담판’을 시도하는 게 아닌가 싶다. UEP의 무서움은 앞서 설명한대로 미국에게는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중대 사안으로 연결된다.
게다가 북한은 베이징 합의 이후의 상황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극구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하는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대륙까지 사정거리에 둘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의 개발은 바로 우라늄 핵무기와 이를 운반할 수단을 장착하거나 이를 시도하고 있음을 알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를 통해 노리는 것은 미국과의 전면적인 관계개선이다. 그 속내는 북한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리용호 외무성 부상의 입을 통해 드러났다. 베이징 합의 이후 북한의 고위 외교관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접촉한 리 부상은 미국 시라큐스대학 주최 세미나와 미국외교정책 전국위원회(NCAFP)와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주제발표 등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이뤄지면 핵문제는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전해줬다.
한국의 고위당국자는 이를 두고 “북한의 핵협상 전략이 크게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길게는 20년간, 짧게는 지난 2003년부터 가동된 6자회담을 운영해온 9년간의 핵협상을 평가해본 결과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사안을 놓고 논란이 쉽게 벌어지는 비핵화 문제를 먼저 다루지 말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임을 감안하면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기 전에 미리 수립해둔 대미 협상전략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1차 북·미 고위급회담에 나섰던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북·미 최고위급 회담’을 제안했다고 한국과 미국의 정부 당국자들이 필자에게 확인해준 바 있다.
결국 UEP의 실체를 확실히 파악하려는 미국과 그런 미국의 조바심과 국내정치 상황을 교묘히 이용해 ‘통큰 담판’을 하려는 북한의 치열한 기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UEP시설이 과연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가 향후 북·미 협상의 깊이와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우탁/ <연합뉴스> 워싱턴 특파원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