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5년 11월 1일 1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 불이야! 그 다음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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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76

불이야! 그 다음엔?

 

남북한은 화재발생 시 대응수준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세계적으로 몇 번째쯤 되는지 모르겠지만 남한의 화재대응 시스템은 대단한 것 같다. 소방관들의 신속한 대응도 감탄할 정도다. 곳곳에 소방서들이 잘 배치되어 있고 소방차들도 항시 대기상태다. 119 신고체계도 잘 되어 있고 감시장비들도 많다. 지하철이나 건물 등 모든 곳에 화재경보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고 비상계단과 소화기도 잘 구비되어 있다. 집집마다 화재 감지센서가 붙어 있고 호텔과 모텔 등 숙박업소에는 화재발생 시 탈출할 수 있는 구명용 밧줄과 램프도 갖추어져 있다. 영화관에서도 영화 시작 전에 비상 시 탈출할 수 있는 약도와 행동요령을 안내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산불 감시용 헬기도 날아다닌다. 사고방지와 대응에 특별히 관심을 돌리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남한 화재대응 시스템과 신속성, 감탄할 정도

 

남한에 정착하고나서 불이 난 곳을 몇 번 본 적 있다. 그런데 거기엔 꼭 소방차들이 보였다. 소방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를 본 기억이 없는데, 그만큼 소방기관의 대응이 신속한 것 같다.

북한에 살 때 보았던 화재 장소는 열 번 중 아홉 번이 소방차가 없이 사람만 갈팡질팡 뛰어다는 모습이었다. 대개 소방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불길을 쉽게 잡기 어렵게 되었을 쯤이 아니면 아예 다 타버리거나 사람들의 힘으로 불을 끄고 난 후였다.

북한에서 살았던 북·중 국경도시 혜산은 도청 소재지임에도 소방기관이 제 역할을 못했다. 불이 나면 인력으로 불을 끄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행히 인구밀도가 높아 삽시에 많은 군중이 물통과 흙모래를 들고 모여들어 불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한밤 중에 비어 있는 공공건물에 불이 나면 조기대응을 못해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접근할 수 없었다. 도립극장도 한밤중에 난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는데 소방차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도립극장에서 시 보안서 소방대까지 거리는 소방차가 달리면 5분 거리에 불과했다. 시 보안서 소방대 소방차들 중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것이 몇 대 안 되었다. 그마저 시동이 신속하게 걸리지 않고 소방장비들이 변변치 못해 화재신고를 받고도 꾸물거리다 때를 놓쳐버렸다.

혜산에서 화재가 나면 압록강 건너 중국 창바이현에서 보인다. 만약 북한 측 힘으로 화재 진화가 어렵다고 짐작되면 지원을 통보하고 중국 소방차들이 건너오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겨울이면 압록강이 두껍게 얼어붙기 때문에 그 위로 신속히 건너왔다. 중국 소방차들이 건너와 화재진화에 들어갔을 쯤에도 북한 소방차가 도착하지 못할 정도였고 도착해도 소방장비가 나빠 쩔쩔 매며 돌아갔다. 그것이 망신스러워 북한 측은 중국 측 지원 제의를 가급적이면 거절했다. 도립극장이 불 탈 때도 중국 소방차들이 압록강교 절반까지 들어서 입국 승인을 기다렸지만 허가해주지 않아 철수한 적도 있었다.

북한은 화재의 원인규명도 어설프다. 방화범을 붙잡지 못했거나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으면 대개 전기사고로 규명해 어물쩍 넘어가 버린다. 때로는 남한 정보기관의 공작에 의한 간첩들의 소행으로 규명해 화재사고마저 체제결속에 이용한다. 화재 발생 시 소방차가 동원되면 벌금이 부과된다. 건물이나 기관 기업소에 화재가 나면 상황에 따라선 책임자가 감방 신세를 진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의 치적 관련 연구실이나 사적지, 전적지가 불타면 더 엄중하게 처벌된다. 부서 단위 사무실이나 현장은 화기책임자를 정하고 있는데 난방시설, 전기설비 관리를 소홀히 해 불이 나면 책임을 지도록 한다. 그래서 될수록 자체역량으로 불을 끈다.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소방차를 괜히 불렀다가 벌금을 내거나 감옥살이를 할 것이 걱정되어서다. 하지만 화재규모가 큰 경우에 소방차를 부르지 않으면 책임이 가중된다.

 

불났을 때 구해내지 못하면 곤란한 것?

 

화재 발생 시 인명구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와 치적 자료들이 최우선이다. 만약 인명이나 재산은 구했는데 우상화 시설과 자료를 구해내지 못하면 그 뒷처리가 아주 복잡해진다.

북한의 소방기관은 시, 군, 구역 단위의 보안서(경찰서) 소속 소방대와 큰 기업소가 가진 자체 소방대가 있다. 보안서 소속 소방대 소방관은 보안원(경찰)이다. 기업소 소방대원은 직원 신분이지만 기업소의 당·행정조직과 기업소 담당 보안소(파출소, 지구대 정도 단위)의 이중 관리를 받는다. 기업소 소방대 실태는 기업소 사정에 의해 다르다. 열악한 기업소는 소방차에 넣을 기름도 없을 정도다.

이렇듯 북한의 소방 실태는 남한에 비교할 형편이 못 된다. 남한은 화재로 인명피해가 생길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화재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또 화재 진화 과정에 소방관이 희생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 소방관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아직 구석구석에 미흡한 측면이 남아있다는 것을 말한다. 북한의 소방 시스템 현실에 비춰보면 먼 나라 이야기다.

 

 

도명학 / 자유통일문화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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