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보기 2012년 6월 1일

영화리뷰 | 인류멸망에 대한 세 가지 주제…사과, 로봇 그리고 혜성 2012년 6월호

영화리뷰

<인류멸망보고서>인류멸망에 대한 세 가지 주제…사과, 로봇 그리고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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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부제에도 나와 있듯이 ‘멸망의 3가지 징후’에 대해 말하고 있다. 1편은 <멋진 신세계>, 2편은 <천상의 피조물>, 3편은 <해피 버스데이>다. 각각 독립적인 주제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필자는 처음에 영화의 형식을 보고 제시카 알바와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한 영화 <씬 시티(Sin City(2005)>가 떠올랐다. 그래서 내심 기대했지만 3가지의 멸망 징후가 <씬 시티>에서처럼 상호 연계되어 동일한 장소에서 우연적으로 스쳐지나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이 3가지의 에피소드는 상호 독립적이다. 선악과(사과)와 기독교, 인공지능 로봇과 불교, 혜성의 지구 충돌이라는 독립된 주제를 ‘인류멸망’이라는 다소 암울한 미래와 연결 짓고 있다.

이 영화는 특이한 편성과 소재의 채택에도 불구하고 흥행하지는 못했다. 감상평을 보면 영화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 관객에게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가 생소하기도 하려니와 각 에피소드에서 선정한 핵심주제와 메시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험성이 너무 강하다고 할까?

피조물인 인간, 신의 영역을 넘보다!

필자가 눈을 부릅뜨고 집중해서 봤지만 쥐어짜면서 풀어야하는 복잡한 플롯도 없었고, 전달하는 메시지가 강렬하지도 못했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멋진 신세계>다. 이른바 기독교의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아담의 사과와 호러물의 주인공 좀비, 그리고 광우병 사태 등의 이야기를 조합했다.

가족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은 주인공 석우(류승범 분)가 집안의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하고 이 과정에 갑자기 등장한 ‘썩은 사과’로 인해 인류가 좀비화되기 시작된다. 버린 사과가 음식물 처리장에서 공정을 거쳐 가축사료로 만들어지고 그 사료를 소가 먹고 썩은 사과에 오염된 고기를 사람들이 먹고 좀비화 된다는 이야기다. 류승범의 좀비연기는 칭찬해 줄만하지만 그 외의 이야기 전개는 뭔가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첫 번째 재앙이 아담의 사과로 시작되었다면 두 번째 <천상의 피조물>은 사찰에서 진행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인류의 멸망과 관련되었다기 보다는 다분히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와 <아이 로봇(2004)>에서 건드리고 있는 인간과 인간의 피조물인 휴머노이드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에 관한 것이다.

<천상의 피조물>은 <아이 로봇>에 더 가깝다. 영화에서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사람수준 이상의 인지와 지각을 갖고 스스로 알아가는 로봇의 능력이 인류에 대한 도전으로 그려진다. 기존의 영화에서는 복제인간인 휴머노이드가 사람인가 아닌가의 문제라던지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담겨져 있다.

<천상의 피조물>에서도 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깨달음’이라고 하는 초과학적·초인간적 영역에 들어선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로봇의 깨달음을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해체를 결정한다. 여기서 이 영화의 대표적 선전문구인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란 말이 로봇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깨달음을 얻은 로봇은 인간 손에 의한 해체보다는 스스로 좌탈의 길을 선택한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로봇이 득도한 고승의 자태를 보여주었다. <천상의 피조물>은 앞서 언급한 휴머노이드 영화에서 다루지 못했던 로봇의 깨달음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하지만 인간과 로봇의 인식론과 존재론적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과정을 많이 생략한 채 급하게 결론으로 연결시키면서 관객에게 조금 더 성찰하며 따라올 시간을 주지 못했다.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마지막 에피소드는 <해피 버스데이>다. 지구종말론 중 하나인 혜성충돌론에서 소재를 따왔다. 이야기의 전개는 만화적이다. 아빠의 8번 당구공을 부셔버린 초등학생 민서(진지희 분)가 정체불명의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 당구공을 주문하고 2년 후 당구공 모양의 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한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지하 방공호로 대피하고 7년 후 다시 태어난 지구에서 햇볕을 맛본다. 이 에피소드 역시 어렵다기 보다는 지구종말론에서 따온 소재를 너무 가볍게 처리한 듯한 인상이다. 말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언뜻 와 닿지 않았다. 플롯이 어렵다기보다는 엉성하다는 느낌이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 대한 전반적인 평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종말론’이란 주제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만하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천상의 피조물>은 플롯을 좀 더 치밀하게 짜서 다시 제작한다면 해외에서도 상당한 호평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멋진 말이다.

서유석/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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