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교권 추락과 교권 남발 2012년 6월호
탈북인 남한사회 정착기
교권 추락과 교권 남발
최근 학교폭력 문제가 계속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날로 심각해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갖가지 처방이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기본이 빠졌기 때문이다. 학생들 속에 제기되는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교사인데 교사의 교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기까지 하는 실정을 보면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는 폭력문제를 학교가 해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아무리 경찰의 역할을 높이고 예방교육, 인성교육을 강화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학생과 늘 함께 있는 교사의 역할을 빼놓으면 다 무용지물이다. 기본이 교사의 교권 강화인데 그것을 빼놓고 다른 대책을 아무리 내놓아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남쪽 교사, 학생에게 인권유린 당해
여러 기회에 학교 현장에 가보았다. 수업시간에 마음 놓고 잠자는 학생, 여교사를 장난처럼 생각하고 허튼 소리를 하는 학생, 심지어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앉아 있는 녀석도 있었다. 내가 교사라면 ‘나중엔 삼수갑산쪹에 가더라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 같다. 학생의 눈에 교사가 교육자가 아니라 재미나는 장난감으로 보이는 한 학교폭력 근절은 불가능하다.
폭력학생을 전학시키거나 정도에 따라 법으로 처리한다는 방안도 신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문제가 있는 학생을 전학시킨다고 뭐가 달라질까? 다른 학교에 가면 폭행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 동네 애들만 때리지 말고 저쪽 동네 애들이나 때려라.”라고 시키는 격이다. 공권력 역시 한계가 있다. 교사가 칼을 차고 교단에 서던 일제시기 무단통치 때라면 몰라도 공권력 대처는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경찰이 교실마다 지켜 앉아 종일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디까지나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것은 교사다. 교사의 교권보장이 우선이다.
지금은 교권이 추락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사가 학생에게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 교사의 인권은 인권이 아니고 학생인권만 인권인가. 학생이 교사를 우습게 알면 학생의 앞날이 어두워지고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게 된다. 예로부터 “아버지보다 스승님 대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고 “부모는 육체를 낳았지만 좋은 사람 되게 하는 것은 스승님의 덕”이라 했다. 유교적 관념이라 할 수도 있지만 교육자의 위치를 일깨우는 말이다.
북쪽 교사, 학생들 운명 쥔 정치권력
교권이 추락하고 학생인권만 강조되면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선진국이 되는 길인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저들만의 특허권처럼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학생인권을 말하는 데 열중하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다. 혹시 학생인권을 정략적인 수단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나친 학생인권 ‘소동’으로 학교폭력 문제의 첫 번째 해결사인 교사가 허수아비로 된 결과 오히려 피해학생이 늘고 있는 것이 학생인권이 신장된 증거인가?
진짜로 학생인권 문제가 심각한 것은 독재사회다. 지난날 군부정권 시기 학교를 다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시절엔 교사와 학생 사이가 ‘고양이 앞의 쥐 신세’였다고 한다.
지금 북한이 그렇다. 북한에서 교사는 선생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학생들의 운명을 쥐고 있는 정치권력이다. 학교에는 학생들의 정치조직을 책임진 ‘소년단 지도원’과 ‘김일성청년동맹 지도원’이 있고 학급 담임은 ‘소년단 분단지도원’ 혹은 ‘김일성청년동맹 초급위원회 지도원’이다. 그러므로 교사에게 잘못 보이면 조직생활 문건, 평정서 등에 나쁜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이 꼬리표는 다른 학교에 전학해도 따라가며 대학교 진학이나 군 입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사와 갈등을 빚어 군대 조차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가끔 있다. 교사는 학생의 운명에 직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최초의 권력자다. 문제가 많은 학생을 보안서(경찰)에서 체포하려는 경우에도 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가 아니면 교사가 막아낼 수 있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에게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부모님보다 더 믿음직한 보호자이기도 하다.
북한에서는 남한과 반대로 이러한 지나친 교권 남발이 학교폭력 사태를 빚어낸다. 선생님의 비호를 받는 폭력학생이 학급반장이 되면 같은 학생들을 마음대로 폭행한다. 규율을 어겨도 선생님이 직접 몽둥이를 들기보다 주먹이 센 학급반장을 통해 다스리는 것이 이모저모 좋기 때문이다. 북한도 교사의 폭행은 비판하기 때문에 교사들도 학생을 폭행했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남과 북, 양쪽이 다 문제다. 남쪽에선 교권추락이 학교폭력을 막지 못하고 북쪽에선 지나친 교권남발이 학교폭력을 조장한다. 교권이 서로 다른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모두 편향된 위치를 떠나 제자리로 돌아와 만나는 통일시대 교사들이 교실에 서는 날을 보고 싶다.
도명학/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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