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전쟁·평화 | 규범적 국제질서…한반도 평화 그리고 신뢰 2012년 6월호
인간·전쟁·평화
규범적 국제질서…한반도 평화 그리고 신뢰
평화에서 전쟁으로의 전환은 돌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해당사자들이 만들어내는 행동결정의 선택, 주변환경에 대한 인식, 순차적 결정들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적 정치과정 속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주요 요소들의 상호작용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며, 요인들의 결합방식에 따라 전쟁이 발생하더라도 다른 형태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
즉 평화 상태에서 전쟁이 발생하기 전에 이미 여러 가지 요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군사적 분쟁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며 이후 이해당사자들의 상호 인식 및 대응방식에 따라 군사적 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갈등상황이 해소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왜 규범적 국제질서에 관심을 가져야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정치는 무정부상태에서 단일행위자로서의 국가들 간의 이익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국가들은 항상 전쟁을 준비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경험은 국제규범이 강력한 국제질서와 연결될 때 국가이익의 충돌이 군사적 긴장상태로 혹은 군사적 긴장상태에서 전쟁으로 악화될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여주고 있음을 보여 준다.
국가이익의 충돌은 국제정치에서 아주 일반적인 현상들이지만 모든 충돌이 무력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한 당사국이 무력을 이용하기 전에 해결되기도 한다. 첫 번째 이유는 국제규범이 어떤 행동에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분쟁 당사국이 그러한 행동에 반하여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1960년대 국제사회의 탈식민지화의 물결은 민족자결원칙이라는 국제규범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식민국가의 독립을 승인하는 것이 강대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 경우에도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국제규범이 식민국가의 평화적 독립을 강력하게 지지하였기 때문에 강대국이 무력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규범적 국제질서인가?
국가이익의 충돌은 국제사회의 많은 국가들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둘러싸고 다자주의원칙에 따라 중재를 통해서 해결되기도 한다. 1907년의 헤이그 제2차 평화회의는 분쟁해결을 위해 강제적인 중재를 실행할 국제법정을 설치하는 데 실패하였지만, 분쟁이 보다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국제규범을 형성하고 전쟁보다 자발적인 중재에 의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주었다.
특히 제3자에 의한 중재는 분쟁 당사국 간의 불신과 오해를 덜어 주며, 갈등악화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주며, 불필요한 논쟁을 줄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의 중재에 대한 국제규범은 국가이익의 갈등을 정의, 의무,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재구성함으로써 국가 간 발생하는 이익의 충돌을 승리 혹은 쟁취해야하는 대상이라기보다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양자 간의 규범들도 평화 상태에서 무력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한다. 양국의 지도자들이 비슷한 문화와 체제에서 사회화과정을 경험한다면 이들은 비슷한 세계관을 가질 가능성이 높으며, 양국 간 충돌하는 국가이익을 제로섬 게임의 틀로 이해하기 보다는 상호신뢰 속에서 협상 혹은 타협에 의해 해결하고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이러한 경우 양국관계가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어 평화적 분쟁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경험에 기초하여 민주평화론은 양국의 지도자들이 상대 국가의 민주적 절차들을 존중하고 무력분쟁에 의한 갈등의 해결을 추구하지 않게 되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상대의 의도와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양자 간에 형성된 국제규범의 영향은 감소하게 된다.
무력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도 하고, 세대를 넘어 지속되기도 하며, 혹은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국제규범이 상대를 부정 혹은 비난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1870년의 프랑코/프러시안 전쟁은 프러시아가 레오폴트 왕자를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을 대신하여 왕좌에 앉히려는 노력이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의 사전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외국의 왕권계승에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규범의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면서 무력분쟁이 전쟁으로 이어진 사례이다.
프랑스가 오랫동안 누려온 유럽의 군사적 강자로서의 지위에 프러시아가 도전하는 세력전이가 발생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해 이용되어진 국제규범은 양국 간 전쟁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반면, 국제규범이 선한 권력, 협력, 우호적 절차적 관계 등을 강조하면서 해당국가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는 전쟁의 발생을 줄여 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험한 국제적 갈등을 다룬 많은 협약들은 해당 협약에 사인한 국가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를 두고 있다.
모든 국제정치의 행위들은 상대가 약속한 의무들을 수행할 의지, 그리고 약속에 대한 신빙성과 상대방에 대한 신뢰성 등과 같은 행위자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영향을 받는다. 즉 국제규범이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도화 과정에서 상호불신을 최소화하고 신뢰를 향상시킬 수 있는 단계적 협상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남북, 경쟁과 불신에서 벗어나야
그동안 우리사회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정전협정체제, 6자회담과 UN 등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주의적 대북한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였고,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등 양자적 대북한 접근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왜 한반도의 긴장과 협력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가? 왜 이러한 다자주의든 양자주의든 규범적 체제들이 한반도의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성취하는 데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는가?
누구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다만 과거의 규범적 접근을 반성해 볼 때,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점은 한반도에서의 국제규범은 상대에 대한 존중보다는 경쟁논리, 약속의 이행보다는 약속의 선언, 상호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신뢰보다는 불신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한반도에서 국제규범이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자주의 접근이든 남북한 양자주의적 접근이든 남북한이 상호 비난과 제재를 위한 논의보다 협의사항의 점진적 이행을 위한 신뢰에 기초한 협상과정이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경쟁과 불신으로 점철된 남북관계에도 신뢰와 약속이라는 평화의 씨앗이 하루빨리 싹틔우기를 기대해 본다.
송영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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