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 김정은, 빨치산과 엘리트 사이의 줄타기 2012년 6월호
해외칼럼
김정은, 빨치산과 엘리트 사이의 줄타기
북한이 김일성의 100회 생일(태양절)을 맞은 지난 4월 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성대하게 거행하며,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국민들 앞에 데뷔하였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논평 없이 보도한 이 행사사진에는 역대 최대 열병식답게 34종 880대의 무기와 장비가 동원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으로 추정되는 신형 장거리미사일이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유훈을 받들기 위해 약속한 강성대국 진입의 날을 앞두고, 김정은은 4월 13일 인공위성 궤도진입 실패로 구겨진 체면을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암시하는 무기로 시위함으로써 북한의 주민들과 노회(老獪)한 빨치산들의 자긍심을 높였다.
김정은은 빨치산과 김씨 왕가 측근에 의해 옹립되었지만 어린 시절 바깥세상을 경험하였으므로 북한의 엘리트층과 함께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김일성 부자의 유훈을 지킨다며 권력과 부를 배분받고 있는 빨치산들과 나라를 살려야 하는 의무를 느끼는 엘리트층, 이 두 세력 사이를 줄타기 해야만 하는 김정은은 피곤하고도 위험한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가 만약 인민들 편에 서겠다며 경제개혁을 시도할 때 북한은 격동의 시기를 맞게 될 것이며, 그것이 통일의 기회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북한 경제는 중국, 러시아, 베트남에서 보듯이 국가 간 보편적 협력관계와 시장경제체제의 도입 없이는 회생이 불가능하다. 빨치산들이 믿는 것같이 중국의 동지애적 원조만으로는 김정은이 말하는 ‘산업혁명’은 불가능하고, 김정은과 엘리트들의 믿음으로 짐작되는 ‘이론이나 과학적 계산에 근거한’ 경제재건책이 필요하다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은 구시대적 혁명사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김일성의 동지인 빨치산들이 유훈정치로 그 정권을 유지한 김정일 통치의 한계였으며, 결국 그의 집권기간 17년을 실패로 허송세월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북한의 엘리트들이나 김정은이 모를 리 없으며, 노회한 빨치산 집단은 김정은의 이런 속마음이 그들에게 치명적이란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두 보이지 않은 집단적 대립이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개혁정책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실때문에 지난 4월 11일 당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을 제1당서기로 추대하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린 최고 유일적 직위인 당총비서나 국방위원장직을 승계하지 못한 것이다. 김정은이 김일성을 연상하도록 연출하며, 20분간의 대중연설에서 계속 원고를 읽어 내린 것이 이런 한계를 드러낸 것 같다.
이러한 김정은의 세습작업 와중에서 그가 얼마나 빨리 수구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경제정책을 펼 수 있을지, 그를 도와서 경제개혁을 펼 엘리트 세력이 각 부문에서 자리를 잡고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상황 하에서 이번 장거리미사일 발사 실패나 시위성 군사 퍼레이드는 미국이 경고하였듯이 북한을 당분간 더욱 고립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여 자체혁명의 기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림관헌/ 시카고 한인회 상임고문, 환태평양 문화재단 이사장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로그인 해야 합니다.




댓글 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