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 한국전쟁, 왜 국제적 성격을 갖게 됐나 1 2012년 6월호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남북한 이슈
한국전쟁, 왜 국제적 성격을 갖게 됐나
소련과 중국은 한국전쟁 발발 과정에서 전쟁을 주도하거나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계획하고 실행한 김일성에게 심리적·물질적으로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에 전쟁 발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소련과 중국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사전에 승인하였고 이후 직·간접적으로 북한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북한군, 소련식으로 창설돼
한국전쟁 이전에 소련은 비행기 180대와 중형탱크 150대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공급하였다. 1945년 직후 1만여 명의 북한 청년들이 시베리아에서 군사·기술훈련을 받았으며, 그 중의 일부는 3년이나 소련에 머물면서 훈련을 받았다. 중국은 북한에 대하여 인적 지원을 하였다. 중국은 1949년 7월부터 1950년 전쟁발발 이전까지 중국 내전에 참여했던 5만~7만명의 조선인 부대를 북한으로 귀환시켰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민족주의 진영에서 조직한 ‘자위대’와 국내 공산진영의 ‘치안대’가 사회질서 유지와 치안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소련군정은 이를 무시하고 김일성의 입북과 때를 맞춰 ‘적위대’라고 하는 무장단체를 조직했다. 1945년 10월 21일에는 일체의 무장단체 해산령을 발표하고 2천명 규모의 병력으로 ‘치안대’를 다시 조직했으며, 1946년 1월에는 철도경비를 명분으로 일본제 99식 소총으로 무장된 ‘철도보안대’를 창설하여 군사력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소련군정 1년 후인 1946년 8월 15일에는 군사지휘기구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를 설치하고 소련군 장교들에게 고문관 역할을 담당케 함으로써 정규사단 편성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947년 5월에는 소련제 곡사포, 박격포, 대전차포, 기관총, 다연발총 등으로 무장한 3개 보병사단을 편성하고 소련식 계급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설선언과 함께 인민군총사령부를 편성하였다.
북한 조선인민군 창설의 주역은 중국공산당 산하에서 항일투쟁에 가담했던 빨치산 계열과 중국에서 활동하던 조선의용군 계열, 그리고 소련출신 계열 등 3가지 계통의 인물들이었다. 먼저, 빨치산 계열은 김일성, 최용건, 김책, 강건, 안길, 김일, 최현, 김광혁, 이영호, 유경수, 오진우, 최광, 박성철 등이다.
이들은 1936년 6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원회에서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중국공산당 유격대를 조직하고,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을 축출하기 위해 1940년까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인물들이다.
조선의용군 계열은 무정, 김웅, 이상조, 박효삼, 이권
무, 방호산, 박일우, 장평산, 김창만 등이다. 이들은 1942년 중국 산시성(山西省)에서 당시 중국 8로군 포병사령관이던 무정(武亭)과 함께 모택동의 지시에 따라 중국관내의 한인청년을 모아 조선의용군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해 오다가, 해방과 동시에 입북하여 인민군 창건에 가담했다.
소련출신 계열로는 최표덕, 이동화, 강미하일, 최홍극, 황호림, 최원, 최종학 그리고 소련거주 한인 2세로서 남일, 한일무, 박병률 등의 민간인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소련으로 이주해 간 한인들로 소련군에 입대하여 복무 중 북한으로 들어와 인민군 창건 당시에는 간부학교 교관, 소련군 통역관 민족보위성의 주요 참모부 등에서 활약했다.
북한, 6·25 이전 소련·중국과 군사협정 체결
1949년 3월 초 소련, 북한, 중국의 3국 수뇌들은 모스크바에서 3개의 협정, 즉 북·소 경제문화협정, 북·소 군사비밀협정, 북·중 상호방위협정을 체결했다. 먼저 북·소 경제문화협정은 1949년 3월 17일에 체결되었는데, 그 내용은 소련이 1950년까지 총 5억5천만달러의 경제원조를 북한에 제공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같은 날짜에 체결된 북·소 군사비밀협정은 소련 해군부대의 청진항 임시주둔협정, 북한 내 소련 무역대표부의 설립협정, 120명의 특별군사고문단 파견 등이 주요 골자이다.
한편 북·중 상호방위협정은 1949년 3월 18일 소련의 중재 아래 이루어졌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공동방위에 대한 공동행동을 약속하고 만주에서 병력과 무기를 북한에 제공하며, 북한은 만주에 있는 일본인 기술자 및 고용원, 그리고 일본군수품을 중국이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양해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중국군 소속 한인부대 2만~2만5천명을 북한에 출병시키기로 했다는 점과 북·중 공동방위 약속으로 타국이 북한을 공격해 왔을 때 중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김일성이 남한을 도발하면 중국군이 참전하겠다는 점을 사전에 약속한 대목이라고 하겠다(7월호에 계속).
정리/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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