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리얼 스토리 | “어서 검열관님부터 소비하십시오” 2012년 6월호
윗동네 리얼 스토리
“어서 검열관님부터 소비하십시오”
국경 나들이는 북한 주민에게 있어 장사 물건을 챙기는 기회다. 국경이 아닌 자국 안쪽 시장에서 유통되는 중국 물건은 국경보다 2~3배 정도 비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경 지역과 역, 열차 검열까지 무사히 통과해 주거지까지 오면 많은 이윤을 챙길 수 있다. 그런데 오는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지금 소비하는 중이니 합법”
함흥에 사는 주민 권씨는(지금은 한국에서 산다) 함경북도 회령에 처음 갔다가 중국산 담배 ‘말보로’ 열 보루를 샀다. 함흥 시장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원래 값의 세배는 받을 수 있다. 그 돈이면 쌀 10kg은 살 수 있으니까 해볼 만한 장사다. 국경지대를 벗어나 청진 이남을 달리는데 그만 덜컥 열차 내 검열에 걸렸다.
“전부 회수!” 검열관의 간단명료한 판결에 그만 억이 막힌★ 권씨는 멍하니 단속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은 검열관을 바라보며 “왜 회수냐”고 따지니까 그건 불법 장사이기 때문이라 했다. 권씨는 “그럼 우리나라에 합법 장사 물건이 따로 있냐”고 물었다. 검열관은 뭐 이런 질문이 다 있냐는 식으로 권씨를 아니꼽게 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대 피워 물고선 “따져 보면 그런 건 없지” 하고 능글거린다.
그런데 검열관이 뽑아 문 담배가 중국산 ‘말보로’다. 후- 하고 내뿜는 잿빛연기가 권 씨의 얼굴에 부딪쳐왔다. 권씨도 능글거리며 “그럼 이 연기는 합법입니까?” 하고 물었다. 검열관은 히죽 웃으며 “지금 소비하는 중이니 합법”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팔면 불법, 소비하면 합법이라는 것이다. 권씨도 미소를 지으며 그럼 나도 장사 목적이 아니고 소비하려 담배를 산 것이니 “전부 반납”하라고 요청했다.
검열관이 이죽거리며 그럼 소비한다는 것을 한 번 증명해 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열 보루나 되는 것을 소비하기 위해 샀다고 증명시킬 방법이 당장 떠오르지 않아 “좌우간 난 내가 피우기 위해 산 겁네다. 믿어 주시라요.” 하고 우겼다.
검열관은 “지금 같은 세월에 비싼 중국산 담배 열 보루를 제가 피우려고 샀다? 이봐? 그걸 내가 믿으라고?” 하면서 단호히 “전부 회수”하고 소리쳤다. 어서 나가라고 재촉까지 한다. 권씨는 그렇게 밀려날 수 없었다. 쌀 1kg도 아니고 10kg이나 되는 물건을 빼앗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법을 집행하는 보안관을 한 대 후려칠 수도 없는 일. 앞이 새카맣다.
그 때 단속받아 들어온 뒷사람이 권씨의 귀에 대고 “이 짜개바지야” 하며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얼핏 돌아보니 그 사람이 열 손가락 쭉 펴 보이며 집게손가락 하나를 딱 세운다. 그때서야 권씨는 ‘아하, 그런 거였구나’ 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열 보루에서 한 보루를 쭉 빼 검열관에게 밀어 놓고 나머지는 주섬주섬 거두어 안았다. 그러는데도 검열관은 이상할 정도로 웃기만 한다. 권씨는 검열관을 향해 “이거 절대 팔려고 산 것 아닙네다. 그러니 어서 검열관님부터 소비하십시오. 저도 객대에 나가 소비하겠습니다.” 하고 아홉 보루를 안고 단속실을 나왔다.
등 뒤에서 갑자기 인자해진 검열관이 목소리가 울렸다. “다음 검열에 걸리면 한 보루는 이미 소비했다고 말하시오”라고 한다. ‘저게 무슨 소리지?’ 하고 제 자리에 앉았는데 열 정거장 쯤 지나서 또 다른 검열관이 다가왔다. 증명서를 보고 그 다음 짐을 보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내려 벌렸다.
아니나 다를까, 검열관이 담배를 보고 “날 따라 오시오” 한다. 또 한 보루 빼앗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했다. 얼핏 생각되는 것이 있어 “저 이미 한 보루를 소비 했는뎁쇼” 하고 급히 말했다. 그러자 피뜩 얼굴 한 번 쳐다보고 나서 검열관은 “그래? 거짓말 아니지?” 했다. “아, 감히 어디 앞이라고 거짓말을, 확인해 보시라요” “음, 소비한다면야 장사물건은 아니지” 하고 다음 손님에게로 갔다.
“저 이미 한 보루를 소비 했는뎁쇼”
권씨의 입에서 안도의 숨이 나왔다. 속으로는 ‘장사란 이런 속사정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함흥에 무사히 도착해 시장에 나가 제값 받고 팔고 쌀도 샀다. 9kg 쌀자루를 메고 집으로 오며 세상은 참 요지경 속이라 개탄했다. 장사는 불법이지만 가는 것만 있으면 순식간에 합법으로 변한다. 권씨는 쌀자루를 다시 보며 혼자 허허 웃었다.
다음번엔 열 보루가 아닌 훨씬 많은 물건을 다양하게 가져와 보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 온 권씨는 주판알을 튕기며 들여올 품목과 원가, 그 다음 이윤을 계산했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따져 본 것은 다름 아닌 단속검열비였다. 반드시 내야 할 유통비였으니까 말이다.
이지명/ 계간 북녘마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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